정지용문학관을 찾아서

2019.05.19 12:34

최은우 조회 수:6

정지용문학관을 찾아서

 신아문예대학 금요수필반 최은우

 

 

 

 

 

  문학기행을 앞둔 문우들의 가슴을 태우며 내리던 비는 신기하게도 관광버스 출발을 앞두고 뚝 그쳤다. 문학기행을 축하해주듯 비가 온 뒤 더욱 깨끗한 자연과 산뜻한 공기는 우리의 마음을 기대에 부풀게 했다. 버스가 시내를 벗어나 교외로 달리자 상큼한 아카시아꽃 향기와 쌀튀밥처럽 부풀어 오른 새하얀 이팝나무 향기가 코끝을 유혹했다.

 

  정지용문학관에 도착하기까지 50여 분을 버스 안에서 문우들이 각자 자기소개와 장기자랑까지 곁들였다. 시낭송과 노래와 구수한 입담을 들으며 달리는 차창밖으로 보이는 도로변에는 하얀 이팝나무의 향연이 펼쳐지고, 연초록으로 물든 산에는 아카시꽃이 수를 놓았다.

 

  정지용 생가는 1988년 정지용의 해금조치가 있은 뒤 ‘지용회'의 노력으로 1996년에 원형 그대로 복원되었다. 정지용생가의 사립문을 들어서니 왼쪽으로 동그란 우물과 키 작은 굴뚝, 우물 옆 담장 밑에 장독대가 있고, 그 옆으로 본채가 사랑채와 마주보고 서 있었다. 12칸 초가의 본채에는 ‘질화로에 재가 식어지면 뷔인 밭에 밤바람 소리 말을 달리고’ ‘흐릿한 불빛에 돌아앉아 도란도란거리는 곳’의 ‘향수'의 시어에 나오듯 방안에 있는 소품 질화로와 마루에 있는 등잔이 ‘향수'를 다시금 생각하게 했다. 또한 방안에 놓인 가구는 아버지의 생업이 농업이 아닌 한약방이었음을 알려주었다. 시선 가는 곳마다 정지용의 시를 걸어놓아 정지용에 대한 향수를 느끼게 했다. 사랑채 옆에 있는 또 다른 사립문으로 나서니 바로 옆에 물레방아가 돌고 있고, 인공으로 만들어 놓은 실개천을 건너니 바로 문학관으로 이어졌다.

 

  정지용문학관에 들어서니 우측으로 미남형이고 귀티 나는 정지용 밀랍인형이 긴의자에 앉아 있어서 우리는 정지용 시인과 함께 기념촬영을 했다. 문학전시실 안에는 지용연보, 지용의 삶과 문학, 지용문학지도, 시ㆍ산문집 초간본 전시 등 다양한 공간을 마련하고 있어 테마별로 정지용의 문학을 접할 수 있었다. 또한 시낭송을 할 수 있도록 음향시설을 마련한 공간도 있었다. 정지용 시인의 삶과 문학의 영상이 상영되는 '영상실'과 문학동아리 활동공간인 '문학교실'도 있었다.  

 

  우리 근대 시사에서 하나의 큰 봉우리인 정지용은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며 초등학교를 졸업했다. 홍수로 집안 살림이 다 떠내려가고 중학교에 입학할 수 없게 되자 집을 떠나 서울로 올라가 휘문고등보통학교의 도움으로 중등과정을 이수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학교의 강단에 선다는 약속으로 일본 교토[京都]에 있는 도시샤대학[同志社大學]에 진학하여 영문학을 전공했다. 귀국 후 모교인 휘문고등보통학교 교사로 8년을 근무하다가 8·15광복과 함께 이화여자대학교 문학부 교수로 옮겨 문학 강의와 라틴어를 강의하는 한편, 천주교재단에서 창간한 경향신문사의 주간을 역임하기도 했다.

 

  하지만, 무슨 까닭인지 일에서 손을 떼고 녹번리(현재 은평구 녹번동)의 초당에서 은거했다. 그러던 어느 날 지인을 만나러 나갔다가 행방불명이 된다. 그래서 6·25 때 납북된 뒤 행적이 묘연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래서 아들이 아버지를 찾으러 이북에 들어갔다가 남북분단으로 못 나오고 북한에 살고 있다. 그런데 최근 평양에서 발간된 「통일신보」(1993.4.24., 5.1., 5.7.)에서 가족과 지인들의 증언을 인용해 정지용이 19509월경 경기도 동두천 부근에서 미군폭격으로 사망했다는 사실을 보도하기도 했다. 정지용의 행적에 대한 갖가지 추측과 오해로 유작의 간행이나 논의조차 금기시 되었다가 1988년도 납·월북작가의 작품에 대한 해금조치로 작품집의 출판과 문학사적 논의가 가능하게 되었다.

 

  ‘향수’는 정지용이 일본 유학길에 자신이 뛰놀던 유년의 고향을 그리워하며 쓴 시로 일제강점기의 비극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시다. 평화롭고 한가한 추억 속의 고향 마을의 정경을 한 폭의 풍경화처럼 생생하게 그려낸 그의 대표작이다. 우리의 가슴에 새겨진 옛고향의 정경을 그대로 담아낸 정지용의 시 ‘향수'는 지용추모회 때  이동원, 박인수의 노래로 다시 태어나 더욱 사랑을 받게 되었다.

 

  점심시간까지는 30분 정도 여유가 있어 근처에 있다는 육영수 생가를 찾아가 둘러보았다. 육영수 생가를 찾아 나서는 길이 향수 100리길 초입이었다. 향수 100리길은 금강이 굽이치는 대청호반의 아름다운 강변과 한국 현대시의 선구자 정지용 시인이 태어난 향수의 고장 옥천의 시문학을 함께 즐기며 여유와 느림이 있는 시골풍경과 정겨움을 느끼며 달릴 수 있는 자전거길이다. 정지용 생가에서 출발하여 육영수 생가, 교동저수지, 장계관광지를 거쳐 안남면으로 해서 금강을 따라 금강자전거길을 거쳐 옥천으로 되돌아와 정지용 생가로 돌아오는 약 50Km의 자전거길을 말한다.

 

  정지용 생가 바로 옆 길가에는 향수 100리길 출발 지점 안내판이 있다. 마을을 통과하는 향수길을 걷다보면 왼쪽으로 예쁘게 꽃단장을 한 카페가 있어 길 가던 나그네의 눈길을 멈추게 한다. 시간이 있다면 예쁜 앞마당을 가로질러 카페 안으로 들어가 차 한 잔 마시는 여유를 갖고 싶었다. 사거리를 지나 더 걸어가면 오른쪽에 데크길이 나오고 데크에는 정지용의 시를 쓴 액자들이 걸려있다. 또한, 도종환의 흔들리며 피는 꽃, 나옹선사의 청산은 나를 보고, 유치환의 깃발, 윤동주의 서시, 방정환의 귀뚜라미 등 유명한 시가 나열되어 있어 낯익은 시어들을 하나하나 읽으며 걸어가는 재미가 있다. 정겨운 정자도 보이고, 그 옆에 마을의 수호수인 수령 400년이 넘는 느티나무가 있다. 조금 더 걸어가니 육영수 여사의 생가가 나왔다.

 

  원래 세 정승이 살던 집을 육영수 아버지가 사들였다고 한다. 조선 후기 전형적인 충청도 양반가의 저택으로 99칸 집이었다는 이야기처럼 건물 13동과 부대시설이 있다. 대문을 들어서니 담 밑에 조그마한 정원이 있고, 바로 앞에 있는 사랑채에 육영수 여사의 사진이 걸려 있었다. 오른쪽으로 청포와 수련이 피어 있는 연못도 꽤 넓었고, 연못 뒤로는 연당사랑이 있어 이곳에서 풍류를 즐겼다고 한다. 위채가 있고, 안채에는 육영수 여사가 쓰던 작은 방이 있다. 안채 뒤뜰에는 박정희 대통령과 육영수 여사의 지난 과거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안채를 돌아나가면 너비 1.5m, 높이 2.4m의 큰 뒤주 2개가 나란히 서 있고 옆에는 큰 연자방아도 있다. 아래채가 있고, 앞에는 4대의 차를 주차할 수 있는 큰 차고가 있다. 육영수 여사의 아버지는 자동차에 관심이 많아 자동차가 많지 않던 그 시절에 이미 외제차를 소유했다고 하니, 얼마나 잘 살았는지 알 수 있었다.

 

  다시 향수 100리길을 되돌아 나와 옥천 한정식집 아리랑으로 갔다. 고풍스런 한옥으로 입구에서는 연못이 시원하게 분수를 뿜어내고, 마당에는 오래된 소나무가 멋진 자태를 뽐내며 손님을 맞았다. 음식 맛은 우리 고장 전주에 비해 단맛이 덜해서 좋긴 했으나 역시 음식 맛은 전주를 따라오지 못했다. 점심을 마치고 우리는 다시 관광버스에 올라 강원도 원주에 있는 박경리 문학관으로 향했다.

 

                                                   (2019. 5.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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