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잃어가는 버킷리스트

2019.05.20 05:56

곽창선 조회 수:3

빛을 잃어가는 버킷리스트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지난 2월 북미정상회담이 열린 하노이는 세계인의 이목을 집중시키기에 충분했다. 만면에 웃음을 띤 트럼프와 김정은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면서 두 손을 다정히 잡은 모습에서 평화가 담보될  수 있겠다는 기대감 때문이었다. 이 역사적인 장면을 지켜보는 국민 모두의 가슴에 감회가 넘치는 순간이었다.

 

 같은 민족이 서로 다른 이념으로 탄생된 남과 북은 70년 세월이 흐르면서 산천山川, 언어, 문화, 생활방식에 이질감이 생겨 속히 풀어야 할 숙제가 통일이라는 사실을 누구나 공감하고 있다. 그 동안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당국자 간 협상을 통해 수차례 약속했지만 크고 작은 도발만 있었을 뿐, 한 발도 앞으로 나가지 못하니 누구를 탓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지난해 북한 김정은의 신년사를 시작으로, 남북정상회담에 이어 북미정상회담까지 일사천리로 열리며, 급기야 남북정상이 백두산 천지에서 평화를 선언하는 역사적 이벤트를 연출하는 쾌거를 이루기도 했었다. 평창동계올림픽이 북한이 참가한 가운데 개최되었고, 평화적 군사합의로 DMZGP 일부를 철거하여 상호 왕래할 수 있는 통로가 열렸으며, 열차가 북한땅을 밟는 등 과거와 확연히 다른 일련의 조치가 취해지면서, 가시적인 평화정착의 기반을 다지는 계기가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을 구체화하고자 남북의 정상과 북미정상들이 차례로 만나며 상호 의견을 주고받는 딜(deal)을 성사 시키려 묘안 찾기에 전념해 왔다.  

 

 그 동안 진행된 남북의 협상과정을 돌아보면 북한은 공산주의 협상의 비책秘策인 벼랑끝 전술과 살라미전법을 병행 협상에 임해왔다. 협약 문은 모호한 문법이나 문구로 해석을 달리할 수 있어 그들이 바라는 요구가 충족되지 않으면 약속이 파기될 함정에 빠질 수 있어 항상 긴장의 끈을 놓을 수 없었다.

 2월 하노이회담에서는 미국이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비핵화(Perpect, CVD )의 구체적 시행을 전재로 하게 되였고 북한은 체제유지와 유엔제재의 전면 해제를 요구하면서 절충점을 찾지 못하다가 미국의 일방적 결렬선언으로 끝을 맺고 말았다. TV에 비치는 회담 분위기에 기대했던 나는 회담장을 먼저 박차고 나오는 어두운 트럼프의 얼굴을 보며 TV를 꺼버리고 말았다.

 

 그 뒤 냉각기가 지속되며 북한매체의 험한 말이 오가더니 급기야, 5월초 북한이 동해상으로 미상의 발사체를 쏘아 올렸다는 어이없는 뉴스가 전해졌다. 9일에는 다시 의심할 수 없는 미사일을 쏘아 올리면서 우리 사회는 큰 충격에 휩싸였다. 얼마 전까지 통큰 모습으로 다가 온 저들이 잠시를 못 참고 도발을 감행하는 모습에서 그들의 진면목을 보는 듯해서 실망스러웠다. 우리 사회에는 이번 도발에 관해 서로 다른 해석을 낳으며 국론이 분열되고 있다. 평화는커녕 어두운 그림자를 낳는 갈등으로 치닫고 있으니, 그들이 바라는 결과를 낳지 않을까 염려스럽다. 그동안 협상을 기대하며 지켜보던 실향민들의 한은 누가 위로할 수 있을까? 내가 바라던 생애 마지막 여행의 꿈은 빛을 되찾을 수 있을까? 나의 기대마저도 멀어져 가는 현실이 두렵다.

 

  연좌제 문제로 첫 직장 진출이 좌절되면서 심한 갈등으로 방황하던 중 좌판을 찾아가 사주팔자를 부탁하니 역마살이 끼어 40이 넘어야 자리를 잡을 것이란 예언이 씨가 된 듯 40이 넘어 안정을 찾았으니 그것도 팔자인가 싶었다. 일찍 안정을 찾은 벗들 속에서 초라한 내 입지를 후회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갈지자 인생항로를 걷다가 약해진 건강을 추스르며 분수를 깨우치기 시작하니 황금기를 지나 종착역에 이르고 말았다. 이제 와서 누구를 원망하랴?  늦게나마 수필의 길에 접어들면서 마지막 혼을 태워 조촐한 기록이라도 남기겠다는 작은 바람과, 통일의 열기에 편승하여 열차로 한반도를 지나 유럽 여행을 다녀오려는 계획을 내 생의 버킷리스트로 삼게 되었다. 그래서 지난 수필제목으로 나의 버킷리스트라 명명하기도 했었다. 나의 이러한 계획을 보고 기뻐하는 아내는 마치 맑게 피어 오른 목련꽃을 닮아 보였다. 여행에 필요한 큰 케리어 등 필요한 물품 리스트를 만들어 여행 떠날 준비에 바쁘다. 이렇게 간절히 바라며 기다리는데, 미사일을 쏘아 올렸다니 세상사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얼마 전 강화도에서 건너편 송악산을 망연히 바라보시던 할아버지가 독백처럼 "저기가 내 고향이야, 아마 올해는 가볼 것 같이." 하시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하다. 지금쯤 그 할아버지도 미사일 소식을 알고 계실까? 혹 충격에 몸져 눕지나 않았는지 궁금하다. 내 마음에 충격이 이렇게 큰데 할아버지야 오죽하랴? 닭이 울면 새벽이 오는 법, 얼마 뒤에는 우리의 소원도 이루어 질 것이라 믿는다.

 내 꿈을 이룰 때가 언제일지 모르지만 항상 건강한 몸을 가꾸며 기다려야겠다. 꿈은 이루어진다고 하지 않던가? 언젠가 빛을 잃어 던 내 꿈에도 서광이 비치리라 기대한다.

                                                                           (2019. 5. 20.)

 

★성경에 가장 잘 알려진 야곱이 형과의 팥죽협상, 그리고 아버지와 장자상속을 요구한 작은 협상(small,deal)과 외삼촌 라반과의 염소와 양의 큰 협상(Big,deal) 등 대표적인 예에서 딜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가 있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87 봉준호의 '기생충' 탐구 여정 유지나 2019.05.27 6
686 엄마가 좋아요 한성덕 2019.05.26 11
685 사발통문 김길남 2019.05.25 6
684 살맛 나는 세상 홍성조 2019.05.25 3
683 감기, 그 독한 녀석 이진숙 2019.05.24 3
682 동유럽 7개국 여행기 이종희 2019.05.24 11
681 행촌수필 35호 격려사 김학 2019.05.24 2
680 청풍명월의 고장 정남숙 2019.05.24 2
679 새벽배송 홍성조 2019.05.23 3
678 풍습의 변화 홍성조 2019.05.23 2
677 민들레 꽃핀 최연수 2019.05.23 3
676 박경리문학관을 찾아서 최은우 2019.05.22 6
675 괴불나물꽃 백승훈 2019.05.21 11
674 동네 한 바퀴(2) 김창임 2019.05.20 3
673 동네 한 바퀴 김창임 2019.05.20 6
672 착한 고민 홍성조 2019.05.20 3
671 동유럽 야경의 백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이종희 2019.05.20 3
» 빛을 잃어가는 버킷리스트 곽창선 2019.05.20 3
669 정지용문학관을 찾아서 최은우 2019.05.19 6
668 오늘만 같아라 한일신 2019.05.1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