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

2019.05.20 16:35

김창임 조회 수:6

img76.gif

동네 한 바퀴 (1)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다 같이 돌자 동네 한 바퀴, 아침 일찍 일어나 동네 한 바퀴, 우리 보고 나팔꽃 인사합니다. 우리도 인사하며 동네 한 바퀴.

〈동네 한 바퀴〉란 동요가 귓전에 맴돈다. 미사를 드리려고 성당에 가려는 순간, 남동생에게서 우리 부부랑 점심을 같이 하잔다. 장성 홍길동 테마파크 옆에 있는 곶간밥상으로 가 큰올케, 작은올케 내외랑 기쁜 마음으로 식사를 마쳤다. 동생이 퇴직한 뒤 살 집터를 구경하고 난 뒤 고향인 서삼면 금계리 신평마을로 발길을 돌렸다. 우리 마을은 큰올케가 마을을 지키고 있어 낯설지가 않았다. 2년 전 큰 올케가 집을 새로 지어 옛날 내가 살았던 집은 과거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도로 옆에 있던 사랑채와 문간, 그리고 외양간, 변소도 없어졌다. 사랑채는 이 서방네가 살았고, 외양간에는 우리 농사를 책임지던 큰일꾼인 소가 편안하게 앉아 쉬던 곳이었는데 아쉽다. 저녁에 우리가 놀고 있으면 이 서방 부인이 방에 군불을 지피며 시래기를 만들려고 솥에 무청을 가득 넣고 끓였다. 그러면서 그 위에 실같이 가는 고구마를 삶아 우리 방에 한 양푼 갖다 주면 얼마나 맛있게 먹었던지 그 때가 잊히지 않는다. 길가로 나가 주변을 살펴보니 많은 것이 예전과는 달라졌다.
도로변에 서있던 아까시나무는 편백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평소 내가 빨래하던 도랑이 하수구로 정비되었다. 그 도랑물은 도로 건너 들판을 가로질러 영산강의 상류인 황룡강으로 흘러간다. 빨래터 위로 비닐 터널을 만들어 시원한 그늘을 만들어주니 무더운 날이나 비가 오는 날에도 편안히 빨래를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린 그 시절에 저런 환경이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그 당시는 지나다니는 행인들도 많았고 차가 지나가면 먼지가 뿌옇게 일어나 참으로 힘들었다. 마을앞 벌판 논도 우리가 다니던 사랫길은 없어지고 바둑판처럼 경지정리가 잘되어 있어서 자전거나 경운기가 다니기 편리하게 되어 있었다.
봄이 되면 나는 친구 광순이랑 논둑에서 쑥, 쑥부쟁이, 자운영을 캐곤 했었다. 광순이는 쑥을 캐더라도 양은 적지만 꼼꼼하게 캤지만, 나는 거칠지만 많은 양을 캐 우리 둘째고모로부터 아주 많이 캤다며 칭찬을 받곤 했었다. 또 동네에서 3km가량 떨어진 냇가에 가서 다슬기를 잡고, 붕어나 쏘가리도 잡았다. 한 번은 쏘가리를 잡다가 손에 상처를 입어 혼줄이 나기도 했다. 때론 남자애들이 잡아주기도 했었다. 냇가 바로 옆에는 집 한 채가 있었는데 정읍아저씨가 살고 계셨다. 나의 아저씨뻘 되는 그 분은 장영실처럼 과학에 대한 관심이 아주 많았다. 그분은 냇물을 이용해 전기를 일으켜 우리 동네에 전기를 보내주니 읍내를 제외하고는 제일 먼저 전깃불을 쓸 수 있었다. 호롱불을 켜지 않아도 방이 훤하니 너무 좋았다. 호롱불 밑에서 공부하다 졸면서 이마 쪽의 머리를 태워 가위로 타다 남은 머리카락을 자르고 학교에 간 적이 있었는데, 전기가 들어온 뒤부터 머리를 태우는 일은 없었다. 그런데 그 집 둘째아들이 홍수가 나 냇물이 불어난 냇가에서 놀다가 그만 익사하는 사고를 겪었다. 참으로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그분들은 돌아가시고 지금은 그 집에 무당이 살고 있었다. 그 시절, 우리 동네에서 면소재지로 가는 언덕 위에는 교회가 있었다. 바로 그 옆에 살던 이명수 씨는 젊은 아내가 발을 헛디뎌서 농수로에 빠졌었다. 그는 물에 빠져 떠내려가는 아내를 구하려고 한없이 따라가다 너무 지쳐버렸단다. 그래서 정신을 차리고 자기라도 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되돌아와 목놓아 울었다는 이야기를 들었던 기억이 엊그제 같다. 그 뒤에 그분은 재혼을 했는지 궁금하다. 우리 집 바로 이웃에 숙모님이 살고 계셨다. 숙모님은 고향을 지키며 사시다가 숙부님이 돌아가신 뒤 장성 남창기도원 옆 요양원에 계신다고 들었다. 내가 고향에 갈 적에 들리면 크 게 아파서 누워 계시기에 숙부님보다 빨리 돌아가실 줄 알았는데, 지금까지 살고 계신다니 사람의 목숨은 하느님만이 아시는가 보다. 찾아가서 뵙지 못하여 죄송한 마음이다.
우리 동네에서 제일 부자인 동암아저씨 댁은 그 시절에도 이층 양옥집이어서 나도 집 구경을 하러 간 적이 있었다. 방이 여러 개가 있고, 방마다 깔끔하게 꾸며져 있어서 보기 좋았다. 서재에는 책이 많이 구비되어 있었고 수도가 있어서 너무 부러웠다. 과일나무도 많았는데 밤을 따면 세 포대를 딴다고 하여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가정부도 둘이나 되었고 논도 만여 평정도 되는 부농이었다. 자가용이 있었고, 아들은 물론 딸도 서울이나 광주에 나가 교육을 받고 있었다. 마치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데 그 집 셋째아들이 고등학교 다니다 세상을 뜨는 불행한 일이 있었다. 지금은 그렇게 좋았던 집도 지킬 사람이 없어서 다른 사람에게 팔았다고 한다. 우리 동네는 논농사를 짓는데 걱정하지 않을 만큼 물이 풍부하여 농사가 잘되지만, 집안에 우물을 파면 수질이 나쁜 물이 나와 집마다 물을 길어 와야 했다. 특히 여름에‘선자샘물’이 시원하고 좋아 동네 어귀까지 가서 길어다 마셨다. 보통 때는 조금 가까운 도동아주머니 댁의 물을 이용했다. 우물가에 있는 앵두나무가 있어 그 열매를 따먹고 싶은 마음을 참느라 혼이 났다. 지금은 선자샘만 남아있는데 그 물은 수질이 좋아 동네 많은 집에서 끌어다가 사용한단다. 숙부님 말씀에 따르면 동네가 되기 전에 이곳에 큰 연못이 있었는데 그 위에 동네가 만들어져서 비만 오면 집마다 흙탕물로 고생을 한다고 했다. 그렇게 습한 지역이라서 우리 어머니는 산후통이 생겨 평생 고생을 하셨다. 어린 시절, 하도 밤이 먹고 싶어 아침 일찍 일어나 노영이네 집 옆 밤나무 밑으로 달려가 보면, 그 주인이 다 주웠는지 보이는 것이라곤 빈껍데기뿐이고 알밤은 하나도 주울 수가 없어서 얼마나 안타깝고 허망했는지 모른다. 절골아주머니는 젊은 나이에 아들 하나를 낳고 과부가 되었다. 오빠뻘 되는 그 아들은 재수 끝에 서울대에 들어갔다. 그 오빠는 살림이 넉넉하지 못해서인지 나들이를 할 적에는 한쪽에 는 여자들이 신었던 검정 고무신, 다른 쪽 신발은 흰색 고무신을 신고 다니며 용모에는 신경을 쓰지 않고 오직 학업에만 몰두하던 기억이 난다. 그렇게 노력한 결과 서울에서 대학교수를 한 뒤 퇴임했다고 한다.
우리 동네에서 한옥으로 제일 크게 지어진 집이 해남댁네 집이었는데, 그 형님은 광주에 나가서 살기 때문에 지금은 그 좋은 집에 낯모르는 사람이 와서 살고 있다. 고향을 지키는 집은 우리 큰올케, 하청 아주머니, 김판중 씨, 모암댁 등 몇 집 밖에 없다. 세월이 너무도 많이 흘러가 버렸다. 읍내를 나가려면 이용하던 나룻배는 오간데 없고 지금은 다리가 크고 튼튼하게 지어져 아무리 큰 차라도 다닐 수 있다.
중고등학교 시절 나는 아무리 비가 많이 오는 날도 위험을 무릅쓰고 그 나룻배를 타고 학교에 다녔었다. 뙈기밭에는 고구마가 심겨져서 그걸 캐먹고 싶은 적도 있었다. 대제 앞에 주막집이 있었는데 그 주막집도 이젠 없어져 버렸다. 동네 모정에서 나는 소나무에 올라가서 장수풍뎅이도 잡고 모정을 청소 하기도 했는데 모정은 지금도 그대로 남아있다. 금평에 살던 우리 동창 영철이에 따르면 우리 아버지는 금평 모정에 자주 가시어 쉬셨다고 한다. 왜 그곳에 자주 가셨는지 궁금할 뿐이다. 모정에서 한여름 무더위가 심한 대낮에 남자들이 더위를 피하고 피로를 풀려고 그곳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그러나 여자들은 그 곳에 얼씬도 못했다. 여자들은 자기 집에서 더위를 쫓으며 쉬다가 더위가 수그러지면 들에 나가 일을 하곤 했었다. 요사이는 모정을 이용하기보다 동네마다 마을회관이 갖추어져 있어서 그곳에서 여러 가지 놀이도 하고, 식사도 하며, 대화도 나누면서 즐겁게 지낸단다.
(2019. 5. 13.)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687 봉준호의 '기생충' 탐구 여정 유지나 2019.05.27 6
686 엄마가 좋아요 한성덕 2019.05.26 11
685 사발통문 김길남 2019.05.25 6
684 살맛 나는 세상 홍성조 2019.05.25 3
683 감기, 그 독한 녀석 이진숙 2019.05.24 3
682 동유럽 7개국 여행기 이종희 2019.05.24 11
681 행촌수필 35호 격려사 김학 2019.05.24 2
680 청풍명월의 고장 정남숙 2019.05.24 2
679 새벽배송 홍성조 2019.05.23 3
678 풍습의 변화 홍성조 2019.05.23 2
677 민들레 꽃핀 최연수 2019.05.23 3
676 박경리문학관을 찾아서 최은우 2019.05.22 6
675 괴불나물꽃 백승훈 2019.05.21 11
674 동네 한 바퀴(2) 김창임 2019.05.20 3
» 동네 한 바퀴 김창임 2019.05.20 6
672 착한 고민 홍성조 2019.05.20 3
671 동유럽 야경의 백미,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 이종희 2019.05.20 3
670 빛을 잃어가는 버킷리스트 곽창선 2019.05.20 3
669 정지용문학관을 찾아서 최은우 2019.05.19 6
668 오늘만 같아라 한일신 2019.05.19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