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네 한 바퀴(2)

2019.05.20 17:11

김창임 조회 수: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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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한바퀴 (2)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그 당시는 쟁기로 논을 파헤치면 나는 오리 밥을 주워 먹으려고 뒤를 따라다녔다. 아주 맛이 좋았었다. 그래서인지 내가 회충약을 먹으면 회충이 대변에 섞여 나온 적도 있다. 모를 심는 날은 샛거리를 잘 만들어 지나가는 사람에게 식사를 제공해 주었다. 모를 심는 날은 나도 거머리를 물려가며 식구들과 같이 열심히 심었다. 다행히 무서운 뱀은 없었다. 벼를 수확할 때는 우리 큰오빠가 탈곡하면 나는 옆에서 볏단을 풀어 조금씩 떼어드렸다. 큰오와 나는 그 많은 먼지를 둘러쓰며 탈곡을 열심히 했었다. 대제마을 앞에 있는 논은 남의 논인데 남의 시제를 지내는 음식을 해주기로 하고 다섯 마지기를 우리가 지을 수 있었다. 그 논의 벼를 베어 놓으면 어느 날은 비에 흠뻑 젖었고, 또다시 뒤집어 놓으면 또 비가 심술을 부렸다. 총 일곱 번을 뒤집어 놓아야 말릴 수 있었다. 일곱 번째는 짜증이 났지만, 아버지가 어려워 아무 말도 못 한 채 시킨대로 할 수밖에 없었다. 제일 하기 싫은 일은 보리베기였다. 날씨도 더운 데다 보리가 익으면 열매가 벼처럼 부드럽지 않아서 힘들었다. 우리 집은 밭이 없어서 남의 산을 얻어서 삽으로 파헤쳐서 그곳에 고추를 심어서 김장하려고 하면, 쥐란 놈이 밤에 몰래 쪼아 먹었다. 우리 어머니가 속이 상해서 쥐약을 해 놓으면 그 쥐가 거의 없어진 듯해서 시원하다고 했다. 어머니가 붉은 고추를 따자고 하시기에 도와드렸다. 올라가는 길목에 갈참나무가 한 그루 있었는데 그 나무에 올라가 매미를 잡아서 날려주기도 했다. 어느 날은 큰올케가 고구마 밭에 가서 잡초를 뽑자고 하기에 풀을 뽑는데 아주 더운 여름이어서 땀으로 목욕을 하면서 잡초를 뽑았다. 또 보리를 심기 위해 쟁기로 흙을 파헤쳐 놓으면 나는 건장한 일꾼들 여섯 명과 나까지 일곱 명이 한 줄씩 흙을 부수어 보리 심기 좋도록 만들었다. 힘들었지만 나는 인내심이 좋아 그 일을 다 마친 뒤에야 집으로 와서 식사할 수 있었다. 그 일을 했다고 하면 내 사촌 남동생 효수는 누나가 일을 한 모습을 한 번도 보지 않았다고 하기에 어처구니가 없어서 “효수 동생! 그러면 내가 일을 할 적에 동네 사람에게 오늘 내가 일을 한다고 사람들에게 다 해 놓고 일을 해야 했겠니?” 그랬더니 아무리 누나가 말해도 못 믿겠단다. 나는 말없이 일하고 말없이 공부하고 그래서 그 모든 것들을 모르는가 보다 생각해보니 나는 이웃집에 놀러 갈 시간도 없어서 작은댁이지만 심부름만 갔었지, 그냥 놀러 간 기억이 없다. 그만큼 나는 돌아다니는 성격이 아니었다. 아무리 일이 많아도 그냥 놔두고 이웃집에 놀러 다니고 그랬어야 여러 가지 정보도 얻어서 내가 사는데 훨씬 더 나은 삶이었을지도 모르는 일인데….
어느 날은 큰올케와 김상숙, 그리고 사촌동생까지 ‘배치’라는 마을까지 가서 고구마 줄거리를 한 포대씩 뜯어다 말려서 제사나 명절 때 나물을 해 먹었다. 내가 부러운 집은 다라실 아주머니댁이었다. 그집 딸이 김효순인데 졸업 이후에 만난 적이 없다. 그분은 오일장에 나가서 여러 가지 곡식을 팔고 계셨다. 그 집 앞에 도랑물이 조그만 동산을 돌아서 흘러가도록 만들어 놓아서 행인들이 지나가도, 차가 지나가도 아무 문제가 없이 빨래도 하고 그릇도 씻을 수 있어서 너무 부러웠다. 그리고 조그만 동산을 바라보면서 일을 하니 얼마나 운치가 있는가? 나는 일감을 가지고 가서 그곳에서 일한 적도 있다. 그 옆쪽 김관수도 내 동창 김방수도 마찬가지다. 서울로 간 뒤 본 적이 없다. 전화라도 하고 싶은데 전화도 알 길이 없다. 우리 집 바로 옆은 무실아주머니댁인데 그 아주머니가 정이 많아서 허리가 굽어 기역자이면서 수수를 빻아다가 수수부꾸미를 하면, 나만 부엌으로 데려다가 주어서 그 맛은 지금까지 잊을 수가 없다. 그리고 제삿날이었다고 한 상을 잘 차려주면 우리 가족 모두가 너무 잘 먹었다. 그 집 큰아들 내외는 일찍 세상을 뜨고 작은아들은 나와 동창이어서 엊그제 전화도 했다.
우리 뒷집에는 오산아주머니가 살았는데 아예 울타리도 없이 서로 사이좋게 살았다. 하루는 그 집 잿간에서 불이 나는 바람에 불을 보고 너무 놀라서 바로 앞에 물이 있다는 사실조차 몰랐었다. 막상 불이 나면 긴장되어 정신을 잃어버린 적도 있었다. 그 집 시누이가 결혼하는 날 비가 아주 세차게 왔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이혼을 했다고 한다. 그 집 뒤에는 고무신을 오일장마다 파는 이장아저씨가 사셨다. 그분이 내 이름을 지어주었다고 한다. 그분이나 우리 아버지나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분들이어서 이름을 그렇게 촌스럽게 지어주었다. 이름이 그래서인지 평소에는 나와 같은 이름이 없다가도 병원에 가면 세 명 정도가 있었다. 서울 혜화동 가정의원에서도 세 명이 있었고, 정읍 고려병원에도 세 명이 있다고 한다. 아마 이름에 문제가 있어서 내가 건강치 못하나 보다. 그 아저씨 아드님이 지능이 좋아 서울 S대를 졸업했단다. 선자샘 바로 옆에 사는 김미순은 내 일 년 후배인데 중고등학교시절 등교할 적에 꼭 같이 다니면서 수다를 떨었던 후배다. 지금도 전화를 해서 우리 고향 소식을 자주 듣는다. 우리 마을에서 또 멋스럽게 집을 지어놓고 사시는 분이 있는데 사형제 중 막내아들이다. 설밑아저씨는 여유가 있어 보였다. 큰 집은 가난하게 살지만, 그분 집은 아주 여유롭게 살았다. 방이 많고 깔끔하고 멋지게 단장하였으며 바로 옆에는 포도과수원이 있고, 꽃도 사 계절을 피어서 꽃과 과일나무라고는 한그루도 없는 나로서는 얼마나 부러웠는지 모른다. 그 앞에 골짜기 물에서 빨래를 하다가 그 집을 내다보면 김희중 아저씨가 공부를 열심히 하고 있었다. 그 아저씨는 그 숙부 덕분에 육군사관학교를 가서 별 세 개까지 달아서 중장이 되어서 우리 울산김씨 문중에 큰 명예를 안겨주었다. 그 대부님 둘째 아들은 아버지의 급한 성격에 맞추어 사느라 오래 살지 못하고 일찍 세상을 떴다. 그러더니 그 대부님도 술을 많이 마시고 홍수가 난 날 발을 헛디뎌 50대 무렵 일찍 소천하셨다. 그 대모님은 아주 침착하시어 그 남편의 비위를 다 맞추고 살았단다.
자연은 끊임없이 소리를 생산해내고 있다. 새소리, 바람소리, 물소리, 빗소리, 파도소리, 등 그 자연의 소리는 언제 들어도 좋다. 그 소리는 평화와 안위를 준다. 하지만 사람소리, 자동차소리, 기계소리 등 인위적으로 파생된 소리는 거부감을 준다. 어두운 마음을 치료하기 위해선 시냇물소리를 들어야 하고, 깊은 상처를 다독이기 위해선 소슬한 댓바 소리를 들어야 한다. 나는 시원한 바람을 쐬면서 동네 한 바퀴를 돌고 추억을 떠올렸다.
(2019. 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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