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날의 진객들

2019.06.02 06:49

최상섭 조회 수:3

         그림입니다.

봄날의 진객(珍客)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최 상 섭

 

 

 

 

  봄을 알리는 진객이라면 단연 입술이 예쁜 광대나물과 가을밤의 은하수가 내려온 듯 보라색 그 예쁜 꽃을 수 천 개, 수 만 개를 피우고 미소 짓는 봄까치꽃, 그리고 수수하다 못해 촌스럽기까지 한 장구채나물을 들 수 있다혹한의 겨울도 잊고 3월의 따스한 햇살아래 반갑게 손을 흔드는 이 풀꽃들이 피면, 나는 마치 멀리 떠나간 친구가 돌아온 듯한 반가움에 어쩔 줄 모르고 마냥 들길을 걸으며 이 꽃들과 기쁨의 수인사를 한다. 그러나 이 꽃들도 잠시 머물다 가는 나그네 삶이다. 3-4월이 지나면 시나브로 소리 없이 자취를 감춘다. 떠나간다는 인사도 없이 헤어지고 나면, 마냥 삼백예순 날을 기다려야 하는 그리움을 알기나 하는지….

 

  5월은 장미의 계절이오, 수국과 라일락이 향기와 예쁨을 뽐내는 풋풋한 19살 아가씨 모습이다. 목련꽃이 지고나면 들길의 아카시꽃이 수줍은 듯 파란 부채 속에서 어제의 추억을 부른다. 산야는 온통 진초록 색으로 변하여 갓 결혼한 신부의 초록색 치마색깔이다. 어디 그 뿐인가? 봄날을 찬양하는 초원의 신사 꾀꼬리와 후투티가 날아와 반가움의 인사를 하며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한다. 질풍노도와 같이 밀려오는 계절의 변화 앞에 내 마음도 괜히 들떠서 가만히 앉아 있을 수가 없어 갈대숲 우거진 호수길을 걸으며 한 시절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회상한다.

 

  이러한 내 마음을 달리기라도 하려는 듯 꾀꼬리와 후투티의 상면은 반가움 그 자체보다 내게는 남다른 의미를 부여한다. 한 때 새들을 좋아해서 앵글에 담으려는 심사로 사방팔방을 찾아 나섰던 역마살 때문이다. 조류학자의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새가 노래를 하는 것은 짝을 찾아 구애하는 소리요, 자신의 위치를 알리는 신호라는데 왜 우리는 새가 운다가 말하는지 모르겠다.

 

  그 새들 중 꾀꼬리(Black-Naped Oriole)5월이면 내가 근무하는 근무처 뒤의 울창한 미루나무와 아카시나무 숲이 우거진 뒤뜰로 날아와 노래를 부른다. -꼬르 꾀-꼬르 하고 참으로 화음이 고운 노래를 부르나 삶이 바빠서인지 귀담아 듣는 이도 이 소리가 꾀꼬리 노래 소리인지를 아는 이도 별로 없는 것 같다. 반가움에 조심조심 곁으로 다가가 HP를 들고 한 컷 찍어두려고 하면 금방 온 길로 줄행랑을 친다.

  노랜 색 예쁜 옷을 입은 이 새는 날개와 이마에 남색의 줄무늬가 있다. 아열대 지방에서 연중 머무는 텃새이나 우리나라에는 5월에 날아와 번식하고 9월에 떠나가는 철새다. 주로 아카시나무, 참나무 등 활엽수에서 생활하며 곤충을 주식으로 생식한다. 특이한 것은 땅에 내려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는 점이다. 우리가 잘못 알고 있는 상식은 이 새는 남의 둥지에 알을 낳고 다른 새가 부화한다고 배운 잘못된 상식이다. 이 새는 수평으로 뻗은 나뭇가지 사이에 풀뿌리를 물어다 놓고 거미줄로 엮어 밥그릇 모양의 집을 만든다. 3-4개의 알을 낳고 18-20일이 포란기간이다.

  이제 꾀꼬리는 나의 친근한 동반자가 되었는데, 어쩌다 노래 소리를 들을 수 없으면 왠지 허전하다. 고운 그녀의 음성을 듣는 듯 내게는 기쁨을 전하는 수호천사가 되었다. 그러나 이 새는 경계심이 뛰어나 가까이 할 수 없는 먼 곳의 그리운 임과 같은 새다.

 

  아뿔사! 이렇게 반가울 수가 있을까? 참으로 귀하고 예쁜 후투티(Eurasian Hoopoe)새가 교정으로 날아왔다. 아침 일찍 출근하는 나는 언제나 교정을 돌며 산책을 하는데 잡초가 우거진 풀밭에서 푸드득 후투티 한 쌍이 날아갔다. 너무도 아름답고 예쁜 또 다른 봄날의 진객 앞에 부끄럼 없이 팔을 벌려 반갑다고, 사랑한다고 큰소리로 외쳤다. 그러고 나니 괜히 쑥스러워 주위를 살폈다.

 

  꾀꼬리와 거의 흡사한 시기에 날아와 비슷한 생활을 하는 이 새는 알을 부화할 집을 짓지 않는 게 특징이고, 꾀꼬리와는 달리 보리밭이나 과수원 등 우리들 생활 주변에서 서식한다. 그러면서 이 새도 철저하게 사람을 경계한다. 머리와 깃털이 인디언의 장식처럼 펼쳐져 있어 인디언 추장처럼 보이는 새다. 머리 꼭대기의 장식을 접었다 폈다 할 수 있으며 몸은 28cm 정도로 철새 중 가장 뛰어나게 예쁜 새다.

 

             그림입니다.

  나는 다음 날 건물의 유리창이 있는 복도에 의자를 가져다 놓고 앉아 30여 분을 기다렸으나 후투티는 날아오지 않았다. 그러기를 3-4, 이번에는 아예 앵글에 다리를 설치하고 망원렌즈로 위치를 맞춘 뒤 이 진객을 환영(?)할 준비를 했다.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 후투티 한 쌍이 날아왔다. 첫사랑의 여인을 만날 때처럼 가슴이 두 근반 세 근반 뛰었다. 앵글의 위치를 잡으려는 순간 옆길의 자동차 지나가는 소리에 후투티는 내 속사정도 모르고 또 먼 곳으로  줄행랑을 쳤다. 언제 다시 날아온다는 기약도 없이. 예쁜 모습으로 보면 곁에 두고 날마다 보고싶지만 하늘만한 새이나 나만의 짝사랑인 걸 어찌하랴.

 

  그보다 나는 이제 이별의 순간을 걱정한다. 말없이 떠나가는 이 철새들의 뒤에 황량하고 삭막한 사색의 계절이 찾아오면 왠지 마음을 잡지 못하고 외로움이 엄습해 와 방랑벽속에서 혼자 울어야 한다. 시절이 주는 찬란한 슬픔일 것이다.

 

  그러나 내일 일은 내일로 미루고 오늘은 꾀꼬리 노래 소리며 후투티의 비행을 보며 내 삶의 황혼녘을 아름답게 수 놓고 싶다. 먼 길을 떠나 돌아오지 않는 친구를 기다리는 심정으로….          

                                           (2019. 5.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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