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7개국 여행기(6)

2019.06.02 09:40

이종희 조회 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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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의 문화가 공존하는 체코

-동유럽 7개국 여행기(6)-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4월 25일, 오스트리아 비엔나를 떠난 버스는 체코의 체스키 프롬노프Cesky Crumlov를 향해 달렸다. 고속도로에는 화물차들이 꼬리를 물고 달리는 것으로 보아 공업이 발달된 나라임을 알 수 있었다. 체코지역도 초원과 노란 유채꽃, 그리고 태양광 시설과 풍력발전기가 버스를 타고 가는 동안 자주 시야에 들어왔다.

두어 시간쯤 달렸을까? 버스는 어김없이 휴게소에 들렸다. 유럽은 어느 나라를 가나 운전기사의 안전운행을 위해 규정을 엄격히 지키고 있었다. 운행시간 제한이 없는 우리나라와 비교되는 문화였다. 휴게소에서 쉴 때마다 화장실을 찾는데 50센트를 지불했다. 그래도 서유럽여행 때 1유로보다는 나았다. 그런데 동유럽은 휴게소에서 산 물건 값을 치를 때 화장실을 이용한 영수증을 제출하면 공제해주어 그나마 다행이었다. 어디를 가든 깨끗한 화장실을 무료로 사용할 수 있고 물도 마음대로 먹을 수 있는 우리나라가 그리웠다.

체코의 역사도 복잡하다. 슬라브족(族)은 5~7세기에 현재의 체코와 슬로바키아 지역으로 이주하여 정착했다. 체크슬라브족(族)은 보헤미아와 모라비아 지방에, 슬로바크슬라브족(族)은 슬로바키아 지역에 각각 정착했다. 이 두 종족은 A.D. 833년 일종의 연방국인 대(大)모라비아왕국을 세웠다. 모라비아왕국은 번창하여 그 판도가 보헤미아로부터 슬로바키아를 거쳐 헝가리 서부, 폴란드에 이르렀다.

이후, 헝가리의 지배-보헤미아 왕국-프르셰미슬 왕조-룩셈부르크 지배-신성로마제국-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독일-오스트리아 헝가리 속령-체코슬로바키아 독립-나치군의 침공-소련과 동맹-독일의 2차 대전 패망과 구 소련에 의한 공산화-1968 자유화 운동 ‘프라하의 봄’-1969 체코슬로바키아 사회주의연방공화국-1989 체코슬로바키아 연방공화국-1990 민주정부 수립- 1993년 1월 1일 체코와 슬로바키아 공화국으로 분리되어 오늘에 이른 복잡한 역사를 가진 나라다.

체코가 자랑하는 곳 중의 하나이자 유네스코가 1992년 마을 전체를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한 체스키 프롬노프에 도착했다. 강이 마을 전체를 휘감아 도는 형상이 안동 하회마을 같았다. 중세의 작은 도시로 300여 가구가 살고 있고, 짤츠부르크에서 생산된 소금을 프라하로 가져가는 중간 지점이다. 도둑에게 빼앗기게 되자 이를 지켜주고 세금을 받기 시작하여 마을이 커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성과 성탑, 망토 다리와 정원, 어디에서 셔터를 눌러도 고풍스런 작품사진이 나올 정도로 아기자기했다.

이곳에서 점심을 먹고 3시간여를 달려 낭만과 예술이 공존하는 프라하로 이동했다. 2005년 9월부터 SBS 주말드라마로 방송되었던 ‘프라하의 연인’ 배경이었던 도시, 구 도시 시가지가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체코의 수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나치와 맞붙지 않고 일찍 항복해 직접적인 전쟁과 폭격의 피해를 모면할 수 있었다. 그 덕에 천년의 멋과 중세의 모습을 간직한 낭만의 도시이자 동유럽 최대 관광지로 자리 잡은 도시다. 전쟁이 끝나고 프라하로 돌아온 당시 대통령인 베네시가 측근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아름답지 않소? 중부 유럽에서 파괴되지 않은 유일한 도시요. 이것은 다 내 덕분이오.”

자신의 항복을 정당화한 말이지만, 10세기부터 14,5세기 보헤미아가 전성기를 누렸던 때의 유산, 그리고 근현대사의 유산까지 천 년 넘는 세월의 흐름을 고스란히 담고 있지 않은가. 프라하에는 아르 누보, 바로크, 르네상스, 큐비즘, 고딕, 신고전주의 건축물들이 어우러져 있으니,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연간 1억여 명의 관광객을 불러들일 수 있다. 이 대목에서 갑자기 임진왜란 때 백성과 수도인 한양을 버리고 의주로 피난을 떠난 선조가 떠올랐다. 국제정세를 직시하고 왜구의 침략을 사전에 대비했더라면 수많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존할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해가 지니 불빛이 하나 둘 켜지면서 볼타바 강을 가로지르는 카를교에서 바라보는 프라하의 야경이 장관이었다.
다음 날 아침, 프라하를 대표하는 성 비투스 성당에 들렀다. 높이 33m의 성당 안에는 화려한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는데, 대부분 아르누보 예술가의 작품이다. 구시청사 앞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었다. 그 사람들의 시선은 벽에 설치된 시계였다. 매시 정각이 되면 칼렌다륨 오른쪽의 해골 모형의 악마가 종을 치면 12사도들이 2개의 창을 통해 천천히 나타났다가 고개를 흔들며 사라진다고 한다. 우리도 기다렸다가 악마와 12사도의 동작을 눈여겨봤다. 악마와 사도의 동작이 끝나면 시계 위쪽의 황금색 닭이 나와 울면서 시간을 나타내는 벨이 울렸다. 사소한 것 같지만, 여행객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명소가 되었다.

이번에는 프라하의 명물, 일명 클래식카라고도 불리는 엔틱카를 탑승했다. 엔텍카는 고전적인 자동차로 1960년대 이전의 차다. 줄지어 서 있는 빨강, 검정색 자동차 중 빨강색 엔틱카에 인천 부부와 함께 탔다. 더운 날씨에 구시가지 골목을 누비니 시원하기 그지없었다. 1시간여 동안,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된 도시의 골목골목을 더 많이 볼 수 있어서 좋았다. 걷기가 대부분인 여행이었는데, 편안하게 앉아서 즐기니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기분이었다. 더불어 신분이 상승된 착각에 빠지기도 했다. 머리카락 휘날리며 달리는 엔틱카 탑승은 여행 중 제일 박진감 넘치는 체험이었다.

점심을 먹고 온천 휴양지로 사랑받는 까를로비바리로 이동했다. 14세기 중반 카를 4세가 보헤미아 숲에서 사냥하던 중 다친 사슴이 원천에 들어가 상처를 치유하는 것을 목격하면서 온천의 효능이 알려졌다고 한다. 이때부터 카를로비바리의 온천이 유명해졌다. 곳곳에 온천수의 온도를 표시한 온천수를 마음껏 받아 마실 수 있게 설치되어 있었다. 온천수는 무료지만 받아 마실 컵은 사서 마시도록 가게마다 각양각색의 컵으로 장식되어 있었다. 우리 고장 죽림온천이 한때 호황을 누렸는데, 지금은 폐촌이 되다시피 해서 자날 때마다 안타깝 기 짝이 없다.

2차 대전 때 독일군의 피해를 막기 위한 체코의 베네시 대통령의 결단이 오늘날 체코의 문화유적을 보존해 세계의 관광지로 수많은 관광객들이 몰려들고 있다. 또한 까를로비바리에서 우연히 발견한 온천수를 활용해 휴양지로 변모시킨 체코인들에게 고개가 숙여진다. 어느 곳에 가든 고대와 중세, 그리고 현대의 문화가 공존해 낭만을 느낄 수 있는 체코 여행이 오랫동안 기억에 남을 것이다. (2019. 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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