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3대가 신흥고등학교 동문

2019.06.03 06:20

정석곤 조회 수:9

우리 집 3대가 신흥고등학교 동문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정석곤

 

 

 

  

  TV 이나 실제로 3대인 조부모, 부모, 자녀가 한 곳에서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걸 본다. 대장간, 정미소, 음식점, 전통 활과 악기 제작 등 여러 분야에서 유·무형의 일을 대물림으로 하고 있다. 우리 집도 온전한 대물림은 아니지만 칭찬거리가 생겼다. , 둘째 아들, 큰 아들이 낳은 손자 슬우가 전주신흥고등학교 동문(同門)이 됐다. 마을길에 경축 현수막이라고 걸어야 할 일이다.

 

  슬우가 중학교 3학년이 되자 전주Y고등학교를 맘에 두고 있었는데, 할아버지 말을 귀담아 들었는지 전주신흥고등학교를 지원했다. 다행히 원하는 대로 배정된 게 아닌가? 나는 입학생이나 된 것처럼 슬우 입학식날을 기다렸다. 34, 큰 아들 내외와 아내랑 입학식에 참석했다. 학부형은 우리뿐이었다. 강당은 옛 그대로고 좌우 중 2층만 사용하지 않았다. 의자에 앉으니 50여 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가 그 때의 일들이 눈앞을 스쳐갔다. 내가 앉았던 자리에 둘째아들이 앉았고, 이제 손자가 앉게 되었다. 슬우는 앉아만 있어도 모든 게 절로 잘 될 성싶었다.

     

   나는 남원 운봉중학교를 졸업하고 고향을 떠나 전주신흥고등학교에 입학했다. 한 필지의 논을 팔아 서학동 전주교대부설초등학교 정문 앞 부근에 허름한 가게가 딸린 집을 마련해 어머니와  함께 생활했다. 3년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다가공원 옆에 있는 학교까지 걸어서 다녔다. 시골길로 십여 리가 넘는 학교까지 걸어 다녔으니 등하굣길은 이골이 나 어려움이 없었다.

 

  고등학교 시절에 체력, 학력, 지혜 등 내 인생의 기본 틀이 다져져 오늘의 나를 있게 한 게다. 대견스럽다. 대학입시를 코앞에 두고는 음악 실기인 풍금 연주를 배우느라 친구와 도시락 두 개를 싸가지고 다니며 밤늦도록 강당을 드나들었던 추억도 생생하다. 2학년 어느 봄날, 늦었다고 허겁지겁 학교에 갔더니 적막감이 감돌았다. 그런데 지각이 아니라 1시간이 빨라 안도의 숨을 쉰 적도 있었다.

 

  적성검사를 받았는데 약사, 교사, 건축가 등 쪽으로 모였다. 적성과 초등학교 시절의 꿈을 살려 교사로 정하고 전주교육대학교에 진학했다. 19703, 사도의 길에 첫발을 내딛고 42년간 걸어와 교장으로 정년퇴임을 했다. 다 모교 스승님들의 가르침을 열심히 배운 결실이다. 어찌 전주신흥고등학교를 졸업한 걸 허투루 생각할 수 있겠는가?    

 

  졸업한 지 23년쯤 지났을까? 둘째 상진이가 전주신흥고등학교에 배정을 받았다. 뜻밖이었다. 대를 이어 고등학교 동문이 된 것을 자랑하곤 했었다. 초·중학교에서 기본생활과 학습훈련이 잘 돼서 그런지 학교생활이 믿음직해 아내는 더 좋아했다. 입학해서 담임교사와 급우에게 신임을 받더니 2, 3학년 때는 학급 반장이 되어 지도력도 키워나갔다. 거의 개인 과외나 학원 수강을 하지 않고도 상위권의 학력을 유지해 신통했다. 3학년이 되고는 학교에서 밤늦도록 공부했다. 끝나면 자가용으로 데리고 오면서 많은 이야기를 했을 텐데 내용이 기억나지 않아 아쉽다.

 

  전북대학교 공과대학 기계계열에 입학해 2년을 마치고 공군으로 입대했다. 제대하더니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다며, 한 해 공부를 해 다시 대학수학능력시험을 본 게 아닌가? 성적이 괜찮아 전주교육대학교 특별전형에 합격했다. 대학교도 아버지 뒤를 이은 게다. 지금 경기도에서 부부교사로 근무하고 있다.

 

  1부 예배가 끝난 뒤 입학식을 시작했다. 모교는 교훈인 지인용(智仁勇)의 정신을 119년 동안 이어오며 121회 졸업생 5만여 명의 동문을 배출했고, 독립운동과 민주화운동에도 앞장섰다. 신흥의 역사와 전통에 긍지와 자부심이 생겼다. 신입생은 292명으로 절반이 넘게 줄었다. 그래도 학급은 옛날 우리와 같이 9개로 편성하여 한 반에 29, 30명이었다. 입학식 분위기는 예나지금이나 온화하고 안정적이었다. 학습 분위기도 그러리라 믿는다. 아들며느리도 그렇다며 좋아했다.

 

  학교를 잠깐 둘러보았다. 교정은 변함이 없고 크게 보였던 운동장은 작아 보였다. 기전여중·고생들과 같이 드나들었던 교문은 옮겨졌다. 2, 3학년 때 교실이 있었던 본관 건물 터는 정원으로 바뀌었고, 육군사관학교 교훈과 같다는 智仁勇(지인용)이라 쓰인 표지석이 세워져 있었다. 1학년 때 교실이던 인톤관은 새 단장을 하고 미소로 반겨줘 마음이 놓였다. 학생들의 인기를 끌었던 본관 뒤 매점도 온데간데 없어 서운했다.  

 

  큰손자 슬우는 오늘 전주신흥고등학교 1학년 7반으로서 첫발을 내딛었다. 3년간 좋은 친구 많이 사귀며 부지런히 공부하여 자기 꿈을 키워나가길 바란다. 슬우도 교사가 되고 싶어 한다니 기대가 크다. 둘째아들이 내 뒤를 이어 교사의 길을 걷고 있으니, 슬우도 작은아버지의 뒤를 따라가면 얼마나 좋을까? 3대가 모교의 대물림에다 교사까지 더해진다면 금상첨화가 아니겠는가?  

                                              (2019. 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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