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경리문학공원을 찾아서

2019.06.06 06:14

윤석순 조회 수:9

  박경리문학공원을 찾아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윤석순

 

                                                    

 

 

  ‘박경리 문학공원’을 찾아 강원도 원주로 출발했다. 관광버스 기사는 박경리문학관으로 착각하여혼선을 빚었다. 다행히 잘못을 알고 박경리문학공원으로 차선을 바꾸었으나 늦게야 박경리문학공원에 도착했다.

  소설가이며 문학비평가인 박재상 교수는 ‘박경리 선생은 역사 • 전기적 비평 방법론에서 전기적 생애[biography] 작가다. 국민의 알 권리는 죄가 아니다. 하지만 사생활이다’라고 하여 감옥에 갈 뻔한 어려움을 이겨냈지만, 노벨문학상 후보로 2번이나 이름이 오르내렸다고 했다. 10년만 더 살았어도 노벨문학상을 탈 수 있었던 작가였다며 아쉬워했다. 원 이름이 ‘최복금’이라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박 선생과 어머니가 무척 예뻤다는 사적인 연유로 개명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문화해설사는 박경리 선생의 본명을 ‘박금이’라고 했다.

 박경리문학공원은 삼천여 평의 아담한 작은 공원이지만, 경남 하동 평사리에서 간도 용정까지의 삼천여 리를 무대로 하여 펼쳐진 대하소설 『토지』의 깊은 뜻이 느껴지는 공원이었다.

 대하소설 『토지』는 역사와 운명의 대서사시로 TV에서 드라마로 3번이나 제작되었다. 한국의 대표적인 소설인 『토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박경리문학공원은 강원도 원주시에 있다. 토지문화관은 토지문화재단에서 학술, 문화행사 및 연구, 창작, 집필활동을 지원하기 위하여 대회의실, 세미나실, 집필실, 숙박시설 등을 갖추었다고 한다. 토지문화관은 강원도 원주시 흥업면 매지회촌길 79에 있다. (http://www.tojicul.or.kr)

 경남 통영 출생인 박경리 선생은 김동리 선생의 추천으로 작품 <계산>을 발표하면서 등단했다. 박경리 선생의 『토지』는 26년에 걸쳐 완성된 전 520권 분량의 대하소설이며, 여러 비평가들로부터 현대한국문단에서 가장 빼어난 작품으로 주목 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토지』는 갑오년 동학농민혁명과 갑오개혁 등이 지나간 1897년 한가위부터 광복의 기쁨을 맛본 1945815일까지 한국근대사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경남 하동 평사리라는 전형적인 한국농촌을 비롯하여 지리산, 서울, 간도, 러시아, 일본, 부산, 진주 등에 걸친 광할한 국내외적인 공간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원고지만 3만 매가 넘는 분량의 역작인 동시에, 한국인의 삶의 터전과 그 속에서 개성적인 인물들의 다양한 운명적 삶과 고난과 의지가 민족적 삶으로 확대된 한국문학의 수작이다.

 『토지』의 주인공들처럼 각고의 인내, 용기와 집념의 역정을 살아 온 박경리 선생은 1980년 서울을 떠나 ‘원주’에서 18년 동안 살면서 새로운 터전을 마련하고 텃밭에서 채소농사를 지으며 동학농민혁명에터 8.15해방에 이르기까지 우리 민족의 한을 희망으로 풀어냈다. 그래서 이곳 원주는 한국문단의 기념비적인 작품 대하소설「토지」의 4부와 5부가 집필되고 완간된 곳으로 작가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세계를 탐방할 수 있는 장소다. 1994815일 새벽 2시에 완성했다. 1989년 택지개발로 인해 사라질 뻔했으나 전국 각지의 문화계 인사들의 건의에 따라 박경리 선생의 옛집이 지켜졌다. 현재는 원주시에서 늘 아름답게 가꾸고 있다고 한다. 한박경리 선생은 한국예술평론가협의회 주최 20세기를 빛낸 예술인으로 선정되었다. 또 네티즌 선정 20세기를 빛낸 여성 1위이기도 하다. 한국문학 번역원 조사에는, 외국에 가장 알리고 싶은 한국의 대표작가, 작품으로 토지』가 선정되었다.  

 

  박경리문학공원 홈페이지(http://www.tojipark.com)박경리문학공원 찾아오는 길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었다 이 장소를 문학기행징소로 선정한 것은 현대문학사의 깊은 이해와 넓은 안목을 갖게 해준 <문학기행>이라며 대단히 기뻐했다.

 1957년 ‘현대문학’ 10월호에 발표한 단편동화 ’돌아온 고양이‘가 있다. 전쟁경험을 바탕한 박경리 최초의 장편소설로서 1950년대 말 월간 새벗에 연재했던 ’은하수‘ 도 있다. 청소년들의 눈높이에 맞게 12권으로 재구성한 ’청소년 토지’ 작품도 있다. 어린이들의 눈높이에 맞추어 ‘동화 토지’ 작품으로 새롭게 각색했다. 박경리 선생이 문학보다 고귀하게 여긴 것은 개개인의 삶이다. 박경리 선생 스스로의 삶, 그 삶을 더듬어 가는 길을 우리는 문학도로서 학습하고 훈련과정의 연장선이 되었다.

 박경리 문학의 집은 주요시설로 1층은 사무실, 2~3층은 전시실이다. 3층 전시실『토지』에 들어서면 <토지>의 역사적, 공간적 이미지와 등장인물 관계도, 하이라이트, 영상 자료 등을 통해 소설에 대한 관광객의 이해를 돕는 공간으로『토지』제1부에서 제5부까지의 중요한 등장인물, 키워드, 줄거리 내용을 유리관 속에 한 눈으로 볼 수 있도록 전시했다카메라로 선명하게 찍어서 문우들은 대부분 담아갔다. 4층은 자료실, 5층은 세미나실이다. 2층 메인 로비에서 방명록을 기재하며, 각종 정보와 관련 자료제공이 있었다. 5층 세미나실은 각지에서 온 문우들과 함께 하니 자리가 가득 찼다. 여자문화안내원으로부터 강의와 작품해설을 듣고 계단으로 내려가면서 계속하여 1층까지 작품들을 감상했다. 박경리 선생의 옛집과 뜰, 집필실을 원형대로 보존했고, 주변 공원은 소설 토지의 배경지를 그대로 옮겨놓은 3개의 테마공원 <평사리마당, 홍이동산, 용두레벌> 등으로 꾸며져 있었다.  

 박경리 선생은 우리나라 현대문학사에서 최고의 작품으로 평가받는 소설 토지』의 작가이다. 일제 강점기에 태어나 학교에 다니고 광복 직후 결혼했지만 남편은 6.25전쟁과 더불어 부당하게 세상을 떠났다. 그 뒤 어린 아들마저 잃고 절망에 빠진 선생에게 글을 쓰는 일은 유일한 삶의 목적이었다. 우리나라 가슴 아픈 현대사와 함께 모질게 이어졌던 선생의 삶은 토지』라는 우리 민족 최고의 소설을 탄생시키는 힘이 되었다. 원주는 선생의 삶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사셨던 곳으로 토지』를 낳은 땅이 되었다.

 북카페 1층은 문학과 예술을 사랑하는 시민들이 자유롭게 책을 빌려 볼 수 있는 작은 휴식공간이다. 2층 전시실은 박경리 선생 삶의 흐름에 따라 연표와 사진, 시로 구성하여 작가에 대한 이해를 도울 타임캡슬로서의 유품을 전시하고 있다. 소설 토지』의 육필원고와 만년필, 곁에 두고 글을 쓰는데 참고한 국어사전, 소설「토지」의 여러 판본들, 손수 옷을 지을 때 썼던 재봉틀, 선생이 귀하게 가지고 계셨던 달항아리, 직접 조각한 여인상(1970), 선생이 손수 지어 즐겨 입으시던 옷, 가까이 두고 보시던 애장품(청동), 농사지을 때 쓰시던 호미, 장갑이 커다란 유리관 속에 진열되어 있었다. 공원의 운영 목적에 합당한 뜻을 가진 문화 예술인들이 기획 전시를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최희웅 선생이 교직에 몸담은 35년간 교육 자료로 활용코자 전국을 돌며 평생 동안 수집한 일제 강점기 교과서와 자료들을 기증받아 토지의 주요 시대적 배경을 볼 수 있었고, 나라 잃은 백성들의 고통과 일제의 수탈을 알리기 위한 특별전시장이었다. 홍이동산은 아이들이 자유롭게 뛰놀 수 있는 동산이라는 의미로서 토지』속의 대표적 아이 주인공인 홍이에서 따온 이름이다. 평사리마당은 소설 토지』속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의 고향인 경상남도 하동 평사리의 들녘이 연상되도록 마을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곳으로 섬진강을 나타내는 맑은 개울, 선착장, 둑길 등이 아담하게 조성되어 있었다. 용두레벌은 소설 토지』2부의 주요배경지인 간도 용정의 이름을 낳은 용두레우물과 간도의 벌판에서 연유한 이름이며 일송정, 용두레우물, 돌무덤, 흙무덤 풍경 등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박경리 선생의 옛집 내부는 복원 공간과 전시실 활용 공간을 구분하여, 작가로서 또한, 자연인으로서의 박경리 선생의 삶과 문학을 오롯이 드러내는 공간이다. 그리고 2층은 선생의 평소 소망대로 세미나나 워크샵을 할 수 있는 문인들의 토지문화사랑방으로 꾸몄다. 공간, 지역문화 예술의 산실로써 다양하게 활용될 것이라고 했다.

 선생의 옛집은 1980년부터 1998년까지 살면서 대하소설  토지』4, 5부를 집필, 완간한 곳으로 18여 년에 걸친 치열한 문학작업과 틈틈이 경작을 겸했던 필경의 삶터이자 한국문학의 산실이다. 정원은 연못 등 일부 시설을 도입하고 텃밭, 정원수 등은 원형을 보존하였으며 옛집의 대지와 가옥은 관리에 필요한 부분만 보수했다고 한다.

  로비에서 안내한 박경리문학공원 5층 강당에서 타시도 문우들과 연합으로 강의를 들었다. 여자문화안내원의 설명과 해설이 인상적이었고, 계단으로 1층까지 내려가면서 모두가 눈으로 보며, 만지며, 카메라에 담으며 작품들을 감상했다.

 박경리문학의 집은 대문호의 일상과 삶의 자취는 평생을 집대성한 거대한 문학의 산맥을 한자리에서 모두 느끼고 갈 수 있는 곳이었다. 토지문화관에서 나와 1층 생가인 주택 안으로 들어갔다. 해설가는 박경리 작가의 작품과 특징적인 것들을 잘 표현해 주었고, 시낭송도 했다 관람 후 박경리 선생이 아끼고 매만지던 단구동 집 텃밭에서 일하고 난 두디 즐겨 앉던 바위에 앉아 고양이와 더불어 호미와 책을 옆에 놓고 잠깐 쉬고 있는 모습인 박경리 선생의 커다란 조각상이 마당에 있었다. 거기에 둘러 앉아 각반 별로, 교수님들과 문우들끼리 기념촬영이 있었다. 우리는 원주를 출발하여 신아문예대학작가회 이내빈 회장의 리드로  즐겁게 노래를 부르고, 시와 시조를 읊으며, 장기자랑을 하면서 무사히 전주로 돌아왔다.  

                                                           (2019.5.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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