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유럽 7개국 여행기(7)

2019.06.06 15:50

이종희 조회 수:4

마을을 지켜낸 시장과 한국의 경제성장을 견인한 독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이 종 희

 

 

 

 

  2019년 427, 동유럽 7개국 여행 마지막 날이다. 독일 남부지역에 위치한 바이에른주의 테네스베르크라는 작은 마을의 호텔에서 일정은 시작되었다. 버스는 약 두 시간 정도 걸리는 로텐부르크Rothenburg를 향해 아우토반Autobahn을 달렸다. 고 박정희 대통령이 독일에 와서 아우토반을 보고 한국에 경부고속도로를 건설하게 됐다는 그 도로다. 어제 독일지역에 들어설 때부터 쭉쭉 뻗은 소나무 숲이 많이 보였는데, 오늘도 여전한 것으로 보아 국가 시책으로 산림을 조성한 듯 울창했다.

  로텐부르크가 ‘중세의 보석’이라 불릴 정도로 구시가지가 잘 보존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인 신교와 가톨릭Catholic인 구교의 싸움이 치열했던 30년 전쟁(16181648) 당시, 동화 같은 마을 로텐부르크를 지킨 것은 루시 시장이었다고 한다. 점령군 클리 장군은 누군가 와인 3.25ℓ를 단숨에 마시는 사람이 있다면 이 마을을 파괴하지 않겠다고 제안을 했는데, 감히 나서는 사람이 없었다. 제시한 포도주 양을 마시면 치사의 위험이 있는 터라 마을 보존도 중요하지만, 클리 장군의 제안에 용기 있게 나설 수가 없었던 것이다.

  당시 시장이었던 루시는 한동안 고민 끝에, 자신의 목숨보다 마을을 보존하기 위해 포도주 마시기에 나섰다.

 2년 전 서유럽을 여행하면서 포도주를 하루에 한 잔씩은 마셨다. 마실 때마다 술기운이 꽤 올라왔는데 3.25ℓ라니! 하지만, 루시 시장은 단숨에 마시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여기서 끝났으면 클리 장군이 이겨 로텐부르크는 파괴되고 말았을 것이다. 그렇지만, 다음날 깨어나는 기적을 이뤘기에 오늘의 중세유적과 문화를 보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루시 시장의 살신성인으로 로텐부르크를 지켰으니 이곳 사람들은 영원히 그를 존경하고 있다. 재직 당시에 나라의 재정은 아랑곳하지 않고 자신의 공적 부풀리기에 혈안이 된 정치인들이나 관리들이 본받아야 할 일화다. 벤치마킹이라는 이름하에 외유를 일삼는 의원외교를 로텐부르크에 가서 루시 시장의 담대한 행동을 배우고오라고 권유하고 싶다.  

  성벽이 원형 그대로 보존된 정문을 지나 시가지에 들어섰다. 시가지라고는 하나 골목길 정도로 아기자기해, 동화 속 같은 체코 프라하의 구 시가지를 다시 걷는 느낌이었다. 길거리는 집집마다 가게로 줄을 이었다. 그들의 주식인 빵에서부터 술, 음료,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어느 가게에는 크리스마스 용품들로 화려했다. 손재주가 많은 독일인들이 만든 상품들이 대부분이라고 했다. 산림을 조성한 결과를 보여주는 듯 나무 제품들이 많은 것도 특이했다.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이 그렇듯 구 시청사를 지금도 사용하고 있었다. 시청사 5층에는 시계탑이 있는데, 시계탑 아래로 창문이 좌우로 있었다. 12시가 가까워오자 사람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우리도 대열에 합류해 시계탑을 응시했다. 정오를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우측 창문에서 한 사람의 술을 마시는 동작이, 좌측 창문에서는 칼을 차고 위엄 있게 서 있는 장군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바로 로텐부르크를 지킨 클리 장군과 루시 시장인 것이다. 이곳을 지킨 두 사람을 영원히 기리고 싶은 마음을 엿볼 수 있는 시설이었다. 클리 장군이 술 마시기 내기를 걸지 않았더라면, 루시 시장이 응하지 않았더라면….

  독일은 우리나라와 깊은 인연을 가진 나라다. 1960년대 가난했던 한국이 오늘날 잘 살게 된 기저에는 독일이 있었다. 가난한 나라를 살리기 위해 고 박정희 대통령은 집권 후 미국에 손을 벌렸지만, 민주주의의 맹주인 미국 케네디 대통령은 군사정권이라고 거절당했다. 이 뿐만 아니라 미국으로부터 받아오던 공법(Public Law) 480호로 원조 받던 잉여농산물도 끊겼다. 심지어는 인천항에 도착한 원조물자의 하역인도를 거부하여 되가져가기까지 했다.

 

  박 대통령은 이웃 일본과의 사이가 불편해 다가가기도 어려워 생각 끝에 같은 분단국가인 서독이 이해할 수 있으리라고 보고 접촉을 시작했다. 이때 등장한 인물이 독일 경제학박사 1호인 백영훈 박사를 통역관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미국의 원조를 받던 독일까지 한국 군사정부와 교류하지 말라는 통보로 당시 경제장관이었던 에르하르트를 만날 수가 없었다. 백 박사는 에르하르트와 교분이 두터운 대학 은사 포크트(F.Voigt) 교수에게 부탁했으나 역시 기피했다. 남자를 조정하는 것은 여자라고 했던가. 백 박사는 은사 부인에게 눈물로 간청해 면담을 성사시켰다.  

  개인 간에도 담보가 없으면 타인이 보증을 서야 돈을 빌릴 수 있는데, 한국은 그럴 처지가 못 되었다. 백 원장의 대학 동기 슈미트 노동부 과장을 통해 독일의 부족한 광부 5,000명과 간호사 2,000명을 파견, 그 노임으로 은행 지급 보증을 받자는 아이디어로 4,000만 달러의 차관을 얻어내기에 이른다. 돈 없는 사람이나 나라의 설움은 지금도 마찬가지가 아닌가?

  한편, 박 대통령은 1964년 수상이 된 에르하르트의 초청을 받고 독일을 방문하여, 폭정을 폈던 독재자 히틀러였지만, 고속도로 건설, 폭스바겐 생산, 철강∙석유산업 육성, 농업혁명 등의 기반을 닦았다며 도입을 권유받고 추진했다고 한다. 기간산업의 육성을 권유받은 것이다. 그리고 세계적인 고속도로인 아우토반을 보고 귀국해 경부선을 시작으로 고속도로가 건설되기 시작한 피눈물 나는 과정을 생각하면 요즘 잘 살게 되었다고 허투루 쓰는 현대인들의 소비행태를 되돌아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파독 광부와 간호사의 수입은 1970년대 한국 경제성장의 ‘종자돈’역할을 했다. 광부와 간호사들의 파독 계약조건은 ‘3년간 한국으로 돌아올 수 없고 적금과 함께 한 달 봉급의 일정액은 반드시 송금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1963년부터 1977년까지 독일로 건너간 광부는 모두 7,932명이었다. 이들은 독일의 탄광에서 일을 하고 연금과 생활비를 제외한 월급의 70~90%를 고스란히 조국에 있는 가족에게 송금했다. 이런 이야기를 2014년 영화 ‘국제시장’으로 제작하여 국민들의 심금을 울리지 않았던가. 탄광이 매몰되어 아찔한 순간, 치매노인들이 배설물을 치우며 목욕까지 시켜가며 벌어들인 돈이었다. 이들이 한국으로 송금한 돈은 연간 5,000만 달러로 한때 한국 GNP2%에 이르렀다. 또한 서독 정부는 이들이 제공할 3년 치 노동력과 그에 따라 확보하게 될 노임을 담보로 15,000만 마르크의 상업차관을 한국 정부에 제공하게 되었다.

  독일인들은 무뚝뚝하지만 정직, 책임감, 시간엄수, 근면성실, 절약하는 습관, 친환경정책 등이 철저하다. 그렇게 강한 민족이기에 세계 1,2차 대전에서 패망하고도 오늘날 선진국으로 도약할 수 있었던 것이다. 각종 세계박람회를 유치하는 나라이며, 사회복지가 잘 되어 있고, 자전거타기가 생활화 된 선진국이다. 굴뚝청소직업학교가 있을 정도로 직업전문학교가 발달되어 한국의 마이스터고도 독일에서 벤치마킹했다고 한다.

  한국이 독일에서 많은 부분을 도입해서 발전해왔지만, 독일 국민정신을 따라가기에는 시간이 필요한 듯하다. 로텐부르크를 지킨 클리 장군과 루시 시장이 마을을 지켜 시민의 안녕과 유적을 보존한 리더의 품격이 내 가슴에서 떠나지 않는다. 더불어 박 대통령-백영훈 박사-포크트 교수-에르하르트 수상으로 이어지는 한국 경제성장의 주축들에게 감사의 박수를 보낸다. 여행하기 전부터 독일에서 꼭 사고 싶은 맥가이버 칼을 하나 사면서, 한 가지를 해도 확실하게 하자는 신념을 다시 한 번 다짐해 보았다.                                

                                                                (2019. 6.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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