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전도사

2019.06.12 03:21

김학 조회 수:3

행복 전도사

김 학



사람은 누구나 행복을 추구한다. 그렇다고 누구나 다 행복해지는 건 아니다. 나도 예외일 수는 없다.

행복론을 설파한 이들이 많다.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비롯하여 쇼펜하우어, 러셀, 알랭, 헤르만 헤세, 칸트, 세네카, 공자, 김형석, 킬티, 아담스미스 등 행복론을 책으로 펴낸이들은 수없이 많다. 그 중 누구의 행복론이 독자들이 감동하는 진짜 행복론인지 알 수는 없다. 얼굴이 다르듯 천인천색(千人千色)이려니 싶다.

그 중 100살까지 살아본 사람은 한국의 철학자 김형석 교수 한 사람뿐이다. 그러나 행복론을 쓴 사람 중에서 누가 가장 행복한 삶을 살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행복론을 썼다고 하여 모두 행복한 삶을 살았다고 할 수도 없고, 그런 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하여 행복하지 않은 삶을 살았다고 단정할 수도 없다. 책을 내지 않은 사람들 중에도 행복한 삶을 산 사람은 많을 것이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까지 『김학의 행복론』을 출간한 적도 없고, 앞으로 그럴 계획도 없다. 내가 생각하는 나의 행복론은 지금까지 발표한 나의 수필 속에 토막토막 다 담겨있다. 그러니 행복론만으로 한 권의 책을 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한다. 나의 수필을 읽어 본 독자라면 내가 어디에서 행복을 느끼는지 알 수 있으리라 믿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행복 전도사가 되려고 노력하며 산다. 그러기에 우리 집 가훈을 ‘이웃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이라고 정했던 것이다. 나의 이웃이 나 때문에 조그만 기쁨이라도 얻을 수 있기를 바란다. 나에게 스마트폰을 걸어 본 사람이라면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를 들을 수 있을 줄 안다. 내가 그 노래 값을 지불하고 내 스마트폰에 담아두었기 때문에 내 스마트폰에 전화를 걸면 누구나 공짜로 그 노래를 들을 수 있다. 그 노래를 듣는 사람은 그만큼 행복해질 것이다. 그 역시 행복 전도사가 되고 싶어 하는 나의 조그만 소망에서 비롯된 일이다.

나는 날마다 새벽에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내 서재로 와서 컴퓨터를 켜고 윤항기의 ‘나는 행복합니다’란 노래를 듣는다. 될 수 있는 한 크게 틀어놓고 듣는다. 그 노래에서 뛰어나온 ‘행복’이란 녀석이 이 방 저 방 온 집안을 휘젓고 다니며 행복을 배달한다. 이른 새벽부터 우리 집엔 행복이 가득가득 쌓인다. 그럴 때마다 우리 집은 행복저장고가 되고, 나는 덩달아 행복해진다.

2012년에 나는 나의 고희기념으로 『나는 행복합니다』란 수필집을 출간한 적이 있다. 이렇게 늘 행복을 찾아 행복과 더불어 살다보니 나의 삶은 행복해질 수밖에 없다. 행복이란 녀석이 늘 기쁨이나 즐거움을 데리고 와서 함께 놀라고 한다. 그러니 내 얼굴에는 늘 웃음이 머물고, 내 마음속에서는 행복이 용솟음친다. 그러노라니 행복은 나와 가장 가까운 친구가 되었다.

내 이웃에게 기쁨을 주다 보면 내가 먼저 기분이 좋아진다. 무더운 여름날 시원한 물로 샤워를 하면 몸과 마음이 상쾌해지는 이치나 다를 바 없다. 나는 늘 진정이 담긴 칭찬과 격려로 내 이웃에게 의욕을 북돋아주곤 한다. 그러노라면 나도 덩달아 행복해진다. 주는 것이 받는 것임을 알 수 있다.

내 서재에서 바라본 5월 하순의 창밖은 햇살이 눈부시고, 살랑살랑 바람이 불어대니 나무들은 짙푸른 잎새를 흔들며 춤을 춘다. 이웃한 청단풍과 홍단풍은 몸을 부비고 악수를 나누며 정겨운 눈길을 주고받는다. 한 발짝 뒤떨어져 서있는 푸른 소나무와 부채 같은 잎사귀를 매단 목련은 지그시 단풍나무 두 그루의 놀이를 바라보며 부러워한다.

행복도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 같다. 먹고 사는 일이 급선무였던 농경사회 때는 후손들에게 행복을 주기 위해 부모 자신의 희생을 당연시 했었다. 자식들의 행복을 위해 자신의 행복을 절제했었다.

산업사회 때는 판사, 검사, 변호사, 의사, 약사, 공인회계사 등의 직업을 가져야 행복으로 여겼다. 돈 잘 벌고 존경 받는 직업을 선호했던 것이다.

지식정보화사회 때는 자기 스스로 지금을 즐기자는 쪽으로 흘렀다. 여행이나 레저, 취미생활을 즐기는 쾌락위주의 삶을 추구했다. 그러기에 긴 연휴 때가 되면 인천국제공항이 해외여행을 떠나는 관광객들로 북새통을 이루곤 했었다.

그러다가 일본에서 들어온 소확행이란 게 널리 번지게 되었다. 사소한 일상에서 얻어지는 작은 행복을 즐기게 되었다. 돈이 없어도 소소한 일상에서 행복을 느끼려고 했다. 길가에 피어있는 소박한 풀꽃 한 포기를 보면서 기쁨과 행복을 느낀다. 큰 행복에서 작은 행복으로, 행복을 추구하는 성향도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점 바뀌게 된 것이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자식의 성공을 위해 헌신하던 것이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삶으로 바뀌게 된 것이라고나 할까? 그러고 보면 행복도 고정불변한 것이 아니라 우리네 의식의 변화에 따르는 것이 아닌가 싶다. 행복도 시대상황에 따라 변하는 것임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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