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일보 금요수필

2019.06.13 08:37

고안상 조회 수:8

금요수필] 감동적인 정년퇴임식




고안상고안상

2월 마지막 주 토요일 오전, 후배 L의 전화가 왔다. 갑자기 이렇게 전화를 해서 미안하다며, 2월 말 정년퇴임을 앞두고 오늘 오후 5시에 지인들 몇 분 모시고 저녁 식사를 하려고 하니, 시간이 나면 참석해달라고 했다. 어인 일로 오늘 행사를 이제야 전하는가 했다. 하지만 나는 무사히 퇴임하게 됨을 축하하며 참석하겠단 말을 한 뒤 전화를 끊었다.

후배는 나와는 30여 년 가까이 같은 학교에서 근무한 사이다. 직장에서 열정을 가지고 성실하게 아이들을 가르쳤다. 그래서 후배는 제자들이 많이 따르고 또 존경을 받았다. 후배는 아이들에게 항상 성실하고 의젓하게 살도록 가르치니 제자들은 그를 ‘작은 거인’이라 부르며 따랐다. 동료로서 그런 모습에 부러운 마음 가득했다.

약속 시각에 모임 장소로 나갔다. 후배 내외와 세 딸, 그리고 사위가 정중히 우리를 맞았다. 식장에서 많은 제자, 선후배 동료, 학부모와 지인들을 만나 반갑게 인사를 나눈 뒤, 식장으로 들어갔다. 잠시 뒤, 퇴임식이 시작되었다.

명문대를 나와 직장생활을 하는 큰딸이 사회자로 나섰다. 큰딸에 의하면 조용히 퇴임하려는 아버지의 뜻을 잘 아는지라, 후배에게는 어제저녁 늦게서야 알렸다고 한다. 한 달 전, 세 딸은 어머니께 행사 계획을 말씀드리고, 후배의 제자들과 서로 연락해 조용히 이 행사를 준비해왔단다.

먼저 잔잔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지난 시절의 후배와 가족들, 그리고 교직 생활의 모습을 담은 영상자료가 주위를 숙연케 했다. 이어서 세 딸과 사위가 나와 오늘을 있게 해준 부모님께 보은의 마음을 담은 해외여행 티켓을 증정하고, 둘째 딸이 애틋한 마음을 담아 감사의 편지를 읽었다.

그리고 제자들의 감사와 존경을 담은 감사패와 공로패 증정이 뒤따랐다. 이어 현재 경찰 간부로 활동하고 있는 제자가 단상에 섰다. 부모님의 반대로 경찰대 진학을 포기하고 있던 자신을 선생님께서 직접 시험장까지 승용차로 데려다주어 오늘의 자신이 있게 되었다며, 평생 그 은혜 잊지 않고 살겠다고 했다. 자랑스러운 후배 모습을 다시 한 번 보는 것 같아 가슴이 뿌듯했다.

마지막으로 후배 L이 단상에 섰다. 한동안 말없이 서 있던 후배가, 지난 30여 년을 무사히 교직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내조해준 아내와 가족, 그리고 이 자리에 계신 모든 분에게 감사하다며 머리를 숙여 인사를 했다. 여러분들이 계시기에 오늘의 자신이 있다며, 교사로서 지난날이 부족했지만 즐겁고 행복했노라고 했다. 그리고 이 자리를 마련해준 가족과 제자들에게 고맙다며 다시 한 번 고개를 숙였다. 축하객들의 우레같은 박수가 터졌다.

가족과 동료, 특히 제자들로부터 사랑과 존경을 받으며 살아온 후배는 성공한 인생을 산 것으로 보였다. 이 순간에도 일선 학교에는 후배와 같은 훌륭한 선생님들이 계시기에 아이들이 그들의 꿈을 키우며 성장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이 든든해진다.

누구나 정년퇴임식을 성대히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보았다. 하지만 오늘 나는 이 퇴임식을 보면서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한 맥아더 장군의 말을 잠시 되새기며, 지난날을 되돌아보고 이렇게 조용히 퇴임한다면 오히려 더 의미가 클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그 감동 또한 오랜 시간 여운으로 남을 것 같았다.

 

* 수필가 고안상은 정읍 호남고등학교 교장으로 퇴임, <대한문학>에서 수필가로 등단했다. 신아문예대학 작가회, 정읍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전북수필문학회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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