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쓰러자던 날

2019.06.13 23:09

김백옥 조회 수:7

아내가 쓰러지던 날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수필창작반  김백옥

 

 

 

 

 

   이 세상에 이보다 더 슬픈 일이 있을까? 내 평생에 다시 써야 될 인생노트이며 터닝포인트 turning가 될 것 같다. 금년따라 유난히도 즐거웠던 5월의 마지막 밤 저녁식사 자리에서였다.

  아내는 평소대로 상을 내기 전에 물 두 컵 중 한 컵을 남겼다가 약을 먹는다. 입에 털어 넣은 약이 넘어가기 전에 재채기를 하면서 목이 막힌 시늉을 하며 물을 달라고 했다. 다시 주는 물을 마시더니 심하게 토하고 숨이 넘어가는 시늉을 하며 물만 계속 달라고 했다. "평상시처럼 천천히 먹지 왜 그래?" 하며 별것 아닌 줄 알았다.  등을 두드리며 토해보라고 했다. 아니다 싶어 의사인 큰사위한테 전화를 했다.

 "이럴 때 응급조치를 어떻게 해야 하는가?"

그러는 찰라 큰딸이 전화로 119를 부르라고 했다. 삽시간에 딸은 동생인 아들에게 전화를 하고 119를 불렀단다. 잠시 후 119라며 핸드폰에 여자 소방관의 음성이 들렸다.

 "출동해 가고 있으니 곧 도착 할 것입니다. 우선 환자를 등 뒤에서 껴안고 오목가슴에 두 손을 포개어 들고 추켜 보세요."

 그러는 사이 윙윙거리는 구급차의 요란한소리가 집 앞에서 멈추었다.

 

  좌측으로 쓰러진 아내를 두고 대문을 열어주었다. 소방관들은 들것과 기다란 가위형태의 기구까지 들고 왔다. 나중에 깨달았지만 그들이 볼 때는 목구멍이 아니라 졸도라는 것을 즉감했는가 보다. 밖에 벗어놓은 신발을 두 분이 들고 오더니 거실에서 신고 곧바로 알루미늄 들것에 환자를 싣고 나갔다. 나더러 구급차에 동행할 것이냐고 물었다.

 

  나는 순간 실수를 했다. 바로 내 차로 따라가겠다고 했다. 전북대병원이냐고 물었더니 가까운 예수병원으로 간다고 했다. 나는 항상 애착을 갖는 병원이기도 해서 군말없이 알았다고 하고는 토해낸 물과 엎질러진 것들을 대충 처리하고 뒤쫓아 달려갔다. 구급차는 온데간데없고 내 차는 신호등에 계속 막혔다.

  초조와 불안은 요동치는데 아들한테서 어디냐고 전화가 왔다. 내가 동행한들 별다른 것은 없지만 동태를 계속 감시하지 못한 실수를 범한 것이다. 다행히 택시로 달려온 아들이 병원 문앞에서 만나 이동 경로를 지켜봤다. 내가 도착해보니 응급실 베드에 누워 링거줄이 연결되어 있고, 눈을 감은 아내는 물만 계속 찾고 있었다. 바쁘게 오가며 각종 체크에 열중인 간호사들은 CT를 찍어야 된다고 알려주었다.

 

  나는 목이 막혀 죽어가는 환자를 두고 응급조치는 않고 무슨 CT냐며 원망했다. 급체한 상황만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의사진이 볼 때는 이미 뇌신경 때문에 졸도한 것으로 판단한 것이다.

  그러자니 715분쯤 쓰러져 30분에 도착한 소방관에게 실려 병원에는 40분쯤 도착했고, 50분쯤에는 아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응급조치가 이루어진 셈이다. 818분 의사사위한테서 전화가 올 때는 CT촬영 중이었다. 잠시 후 담당의사는 모니터 앞에 가족을 모이게 하고 사진설명을 하는데 우측 뇌에 30CC 정도 출혈이 있다며 수술을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광주로 가다가 순창근처에서 전화를 받고 되돌아온 둘째딸은 같이 지켜보면서, 전북대병원으로 가지 그랬느냐며 지금이라도 옮겨도 되느냐고 물었다. 의사는 얼마든지 선택의 자유를 주었다. 그러나 촌각을 다투는 순간에 그 말은 묻혀 버리고 언제 수술하느냐 고 물으니, 즉시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하여 수술환자로 판명된 아내는 9303층에 있는 수술실로 들어갔다. 초조와 불안에 떨고 있는 가족은 수술실 앞에서 기도하면서 통제구역 문짝만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아내는 다시 실려 나왔다. CT를 다시 찍어야 한단다. 1층까지 가서 다시 촬영하고 40분쯤 수술실로 들어갔다. 전광판에 보니 10시부터 집도의사 신00가 수술 중인 것만 알고 계속 기다렸다.

  11시10분이 되니 수술이 끝나 4층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컴퓨터 앞에 둘러서서 집도의사의 설명을 들었다. 수술은 잘 되었으나 금방 낫는 것이 아니고 최소한 중환자실에서 10일∼14일이 걸려야 복구가 될 것이라고 했다. 가족의 간호는 필요 없고 하루에 2회 면회시간에 와서 보시라며 준비물 등을 기록한 쪽지를 주었다.

  면회시간은 09:3010:00시와 19:3020:00시라고 알려 주었다. 온갖 의료기와 약줄이 주렁주렁 달린 아내를 중환자실에 맡기고 각자 집으로 돌아갔다. 자정쯤 집에 도착했다. 갑자기 아내의 자취가 사라진 거실에는 어지러진 잔해와 부엌의 밥상 등이 널브러져 있었다.  병원에서 환자복으로 갈아입히고 가져온, 평소 입었던 아내의 옷가지 뭉치를 욕실에 던지고 세탁과 설거지와 청소를 했다. 평소 하는 일이지만 오늘은 눈물샘을 자극하고 막막한 장래를 상상하면서 일을 마쳤다.

 

  둘이 눕던 자리에 혼자 누워 시계를 바라보니 새벽 1시 40분이었다. 만감이 교차하는 파노라마가 슬픔과 애통으로 뒤범벅이 되면서 잠을 멀리 쫓아버렸다. 아무리 잠을 청해도 전광판 시침은 계속 가는데 잠을 붙일 수가 없었다.

 

  폰에서 울려오는 알람이 4시 30분을 알렸다. 평소대로 교회로 달려갔다. 역시 이곳도 아내와 나란히 앉았던 자리에 나만 홀로 앉아 기도를 드렸다. 터벅터벅 돌아와 무거운 몸을 따뜻하게 했더니 한 시간 동안을 잠에 들었다가 깰 수 있었다.

  인생무상, 언젠가는 당할 수 있는 필연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새아침의 우리 집은 황량한 바람이 세차게 불고 있을 따름이었다. 한 시간의 피로회복으로 9시 30분 면회 시간을 댈 수 있었다. 인간은 얼마나 나약하고 어리석음을 갈파하지 못하고 사는가? 뇌의 질환을 체한 줄만 알고 대처했던 어리석음과 진작 뇌를 의심 한 번 해보지 못했던 어리석음이 한없이 후회스러웠다.

 

                                                 (2019. 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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