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의 자긍심

2019.06.17 06:41

한성덕 조회 수:11

수필가의 자긍심

    -1, ‘전북수필가대회’에 참석하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사람들은 자기가 하는 일이 좀 괜찮을 때 자긍심(自矜心)이 대단하다. 이를테면 직업이나 지위, 학문이나 예술, 고향이나 친구, 또는 재물이나 배움에 따른 자긍심 말이다. 글 쓰는 사람들의 자긍심은 얼마나 클까? 폼 잡고 으스대는 자랑이 아니라 자기 글에 대한 보람을 묻는 것이다.

  요즘 나는 수필을 배우고 글 쓰는 재미가 붙어서 수필가의 자긍심속에 산다. 그것은 자만이나 교만에 빠졌다는 말이 아니다. 그럴 바엔 아예 글을 쓰지 말아야 한다. 앞서 말했듯이 글 쓰는 보람에 따른 자긍심을 가리킨다.

  지난 426일이었다. 수필에 대한 자긍심과 설렘으로 제19회 ‘수필의 날’ 행사에 참석했다. 충북 청주의 세종온천호텔에서 있었다. 한국문인협회 수필분과에서 주관하는 전국적인 행사였다. 후원은 한국문인협회, 한국수필가협회, 청주시, 충북문인협회, 충북수필문학회, 계간 리더스에이스 등이었다. 주최나 후원단체가 굵직굵직해서 행사에 대한 기대가 한껏 부풀었다.  

  전주에서 청주까지 3시간가량 달렸다. 비가 몹시 내려 마음까지도 질척거렸으나 불편함을 무릅쓰고 찾아갔다. ‘글 쓰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기대감이 부푼 까닭이었다. 초등학교 시절 소풍가는 기분에 싱글이가 되었다.  

  이게 웬일인가? 시작부터 기대와 들뜬 마음이 사라지고, 수필가의 자긍심마저 위축되었다. 청주나 충북만의 잔치가 아니라 한나라의 대표성을 지닌 수필가 최고의 날이 아닌가? 준비위원들의 우왕좌왕하는 모습, 사회자의 언변이나 진행, 좌석배치 등등이 신통치 않았다. 사회자는 일류급이 아니라도 성의 있는 진행이 필요했다. 어설픈 시작으로 전체 분위기가 흐려지고, 겹치는 실망 속에 그 자리에 있을 필요성이 사라졌으며, 다시는 오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수필의 날’ 행사가 끝난 지 불과 2개월도 안되었는데, 1회 ‘전북수필가대회’를 치른다는 게 아닌가? 기대는커녕 아예 갈 마음도, 생각도, 의지도 없었다. 열아홉 번이나 치른 ‘전국수필의 날’도 실망스러웠는데, 이제 걸음마를 내딛는 전북수필가대회야말로 오죽하겠나싶어서 괜한 걱정이 앞섰다. 아직은 오랫동안 살아야 할 우리 동네에서만큼은 실망을 안고 싶지 않았다. ‘청주수필의 날’에서 얻은 잔재가 마음의 문을 닫아버렸던 이유다.

  수필가대회가 다가왔다. 신아문예대학에서 수필을 지도하시는 김학 교수님의 독려가 여러 차례 있었다. 애향심으로 가득한 문우들은 가자는 분위기였다. 집행부의 끈질긴 메시지가 폰을 장식했다. 참여하지 못하는 동료들은 애석함을 토로했다. 그러나 한 번 닫힌 마음은 좀처럼 열리지 않았다. 손톱만큼 열린 심적 공간이 있었다면, 청주 때처럼 ‘차량봉사나 하자’는 정도였다.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전북수필가대회’가 시작되었다. 막상 뚜껑을 열고 보니 대박의 기미가 보여 눈이 번쩍 띄었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지 않던가? 시작을 알리는 정확한 시간, 군더더기 없는 사회자의 진행과 절제된 표현, 유머와 재치가 살아있는 현장, 수필가들의 뜨거운 반응에 모두들 신바람이 났다. 나도 뭔가 홀린 듯 왔으나 정신이 바짝 들었다. 나무랄 데 없는 진행에 흐트러진 자세를 가다듬자, 기대감도 자긍심도 솟아올랐다.

  첫날 마무리에서, 연예인 공연, 장기자랑, 경품추천이 빛났다. 진행자의 우스갯소리와 번뜩이는 재치에 폭소가 터지고, 천정은 들썩들썩했다. 사람은 흥에 겨워야 흥이 나고 흥겨운 시간을 보낸다는 게 실감났다. 장기자랑에서는 아내가 신아문예대학 대표로 출전해 ‘당신이 나를 세워준다.(you raise me up)’는 노래를 열창해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전날의 즐거움은 다음날의 기대로 참석할 힘이 생겼다. 결국은 매 시간마다 꼼꼼하게 참여한 셈이다. 느낀 바로는, 그 어떤 대회보다도 준비와 진행이 매끄럽고 훌륭했다. 박동수 조직위원장이나 윤철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의 준비성이 돋보였다. 노래와 춤이 어우러지면서 웃음과 흥이 넘쳤다. 모든 수필가의 표정에 웃음이 만연하고, 내년의 기대감으로 충만했다. 전북인의 자존감이요, 수필가의 자긍심을 고조시킨 대회였다.

  더 깊고 심오함은, 명망 있는 수필가의 글을 기대하며 변방에서 느낀 바를 썼다. 다만 이튿날 점심을 나누지 못하고 헤어져 아쉬웠다. ‘완벽함 속에 옥의 티’로 남겨두려는 집행부의 계산이 있었는지는 모르겠다.

 

                                             (2019. 6. 15.)        

                  (2019. 6. 7()~8(), 대둔산관광호텔에서, 1회 전북수필가대회를 마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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