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는들바위'의 전설

2019.06.19 06:44

신효선 조회 수:17

‘는들바위’의 전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신효선

...

며칠 전 고향 부안에 다녀왔다. 서울에 사는 여동생 둘이 지난주 변산 조개미에서 부모님 산소와 집 주변의 풀을 맸다. 다음 날 언니와 내가 합세해 산소 아래 빈 땅을 말끔히 정리하고 왔었다. 우리 부부는 그곳에 무엇을 심을까 생각하다 고추, 치커리, 방풍나물, 호박 등을 심고 왔다, 그런데 비가 오지 않아 물도 주고 조개체험도 할 겸 가는 길이었다. 조개체험을 하려면 물때가 맞아야 하는데 오늘은 오후 4시쯤이라 시간이 넉넉해 문득 장신마을 해변의 추억이 떠올라 그곳을 찾았다.

옛날 장신마을 해변에는 바위찜질, 모래찜질이 유명하여 매년 단오부터 두 달간은 서울을 비롯한 각처에서 찜질하러 인파가 끊임없이 밀려왔다. 장신마을 해변 백사장은 옛날에는 해당화가 만발했는데, 지금은 해당화는 거의 없어지고 몇 십 년 만에 오니 길을 찾기도 힘들었다.

초등학교 시절 단오와 칠석이면 어머니는 동네 아주머니들과 모래찜질 하러 장신마을 바닷가로 갔는데, 나도 어머니를 따라나섰다. 어머니와 작은어머니가 뜨겁게 달구어진 모래밭에 구덩이를 파고 그 속에 누우면 나는 어른들 몸에 뜨거운 모래를 덮어주고, 혼자서 모래성도 쌓고 바다를 바라보면 건너편에 널찍하고 나지막한 바위가 하나 있었다. 사람 한 길 정도 높이의 삿갓 모양의 바위가 솟아 있는데 바닷물이 밀려와도 그 바위는 윗부분이 넘치지 않고 항상 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를 ‘는들 바위’라 했는데, 이 바위에는 안타까운 전설이 있다고 했다.

고향이 이웃 마을인 남편과 나는 옛날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곳을 찾았다. 그런데 몇 십 년 만에 오니, 새만금 방조제 축조로 이미 바닷물이 끊겼으리라 짐작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이곳저곳 헤매다 들에서 일하는 분을 만나 겨우 찾았다. 바다로 통하는 입구에는 새만금간척종합개발사업으로 일반인의 출입을 통제하는 낡은 문과 초소가 있었다. 마침 그곳에 큰 뽕나무 그늘 아래 나이 드신 마을노인 몇 분이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그 분들에게 이곳에 찾아온 연유를 이야기하고 ‘는들바위’에 대해 여쭈어보았더니, 잡초로 우거진 해변 건너에 조그맣게 보이는 바위를 가리켰다. 약 2㎞ 남짓 너머로 보이는 바위가 무성한 풀숲에 가려 겨우 제 존재를 알리려는 듯 모습을 드러냈다. 남편은 좀 더 가까이 가보고 싶어 그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고 그곳을 향해 가는데, 공사를 하면서 난 길이 풀숲 사이에 있으나 소통하는 물길이 남아 있어 가까이 접근할 수가 없었다. 아쉽지만 남편은 도중에 차를 세워 놓고 ‘는들바위’를 카메라에 담았다. 옛날에는 바닷물 속에 있던 바위가 풀숲에 묻혀 있어 그런지 더욱 멀게 느껴졌다. 걸어서라도 가까이 가보고 싶었지만, 키 큰 풀숲이 너무도 우거지고 멀리 바위 주변에 말뚝을 박아 바위에 접근을 금지하는 것 같아 그냥 돌아섰다.


새만금 방조제가 준공된 지 거의 10년이 지난 지금, 새만금 간선도로 공사가 가까이서 이루어지고, 변산 의상봉이 지척에서 새만금을 내려다보는 듯했다. 새만금 방조제는 총 길이 33.9 km에 이르는 세계에서 가장 긴 방조제로 그 좋았던 어장과 갯벌이 모두 사라졌고. '는들 바위'에 얽힌 전설도 새만금 갯벌과 같이 사라져 버릴까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옛날 장신마을에 유씨 성을 가진 부부가 살았는데 나이 50이 되도록 일점혈육이 없어 부부는 늘 한탄했다. 어느 날 한 스님의 말에 따라 변산 깊은 절에 들어가 백일기도를 드렸더니, 부처님의 영험으로 잘 생긴 옥동자를 낳았다. 부부의 기쁨은 말할 것도 없고 마을 사람들도 모두 찾아와 함께 기뻐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이 아이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울어대기만 했다. 그 소리 또한 우렁차고 커서 이제는 마을 사람들마저 미워하고 듣기 싫어했다.

어느 날 아이가 잠든 사이 부인이 잠깐 밖에서 일을 하고 돌아와 보니 조용하기에 문틈으로 방안을 들여다보고 깜짝 놀랐다. 벽에 붙여놓은 종이의 글자를 읽고 있지 않은가? 부인이 방문을 열고 들어가니 아이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그 후 어느 날 방안에서 아이 울음소리가 그치고 이상한 소리가 들리므로 부부가 함께 문틈으로 들여다보니, 아이가 방안의 천장을 이리저리 날아다니는 것이었다. 부부가 기이하게 여기고 살펴보니 아이의 겨드랑이에 작은 날개가 나 있었다. 이를 본 부부는 근심 걱정으로 나날을 보냈다. 아이는 장수감으로 태어난 게 분명한데, 이 사실을 나라에서 알면 역적으로 몰아 일족이 멸하게 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었다. 부부는 근심 끝에 눈물을 흘리면서 아이를 다듬잇돌로 눌러 죽였다. 그랬더니 어디선가 날개 달린 백마 한 마리가 달려와 사흘 밤낮을 슬피 울면서 집을 돌더니 아이를 말 등에 태우고 ‘는들 바위’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었다. 그 후로 이 ‘는들바위’는 흰 용마가 그 밑에서 항시 떠받고 있기 때문에 바닷물이 넘치지 않고, 이 바위가 물에 잠기려면 변산의 최고봉인 의상봉이 잠겨야 한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나는 어렸을 때 어른들이 모래찜질을 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하면 참으로 신기하게 들었다. 요즈음 가끔 옛날 생각이 났지만 오늘에야 오게 되었다.

1960년대까지만 해도 새만금 갯벌에는 백합, 바지락, 맛조개, 굴 등의 패류가 풍부했고, 1980년대부터는 김 양식으로 소득을 올렸으나 이도 새만금 공사가 시작되면서 퇴조하기 시작했다. 이제는 새만금 갯벌의 명성은 사라졌지만, 서해안의 중심축으로 도약을 꿈꾸는 새만금종합개발계획이 순조롭게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2023년 세계잼버리대회 개최를 계기로 새만금국제공항 건설과 간선도로 개설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어 모든 게 잘 되리라 믿는다.

옛 모습은 사라져 되찾을 수 없더라도 주변에 전해지는 아름다운 전통과 전설은 오래오래 남아서 후손에게 전해지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2019. 5. 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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