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맞는 현충일

2019.06.19 16:43

김길남 조회 수:5

내가 맞는 현충일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김길남

 

 

 

 

 

 오늘이 현충일,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키다 산화한 호국영령들을 추모하는 날이다. 나는 사촌형님을 추모한다. 전쟁에 나가 싸우다 실종되어 유해도 찾지 못하고 현충원에는 묘도 없다. 무명용사의 탑 지하에 이름 석자만 새겨져 있다. 총각 때 입대해서 후손도 없다. 누가 알아서 제사상 한 번 차리지도 않는다. 참 애석한 형님의 영혼이다.

 내가 13살 때 아버지께서 돌아가셔서 집이 우울하니까 사촌형님은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했다. 어머니를 위로하려고 장난도 잘 쳤다. 방귀를 뀌어 주먹에 모아가지고 ‘작은엄마’하고 부르고 쳐다보면 얼른 코에 대었다. ‘에끼 이놈’하고 웃었다. 어머니가 외가에 가려는데 빈손 쥐고 갈 수가 없다하면 ‘가다가 길가에서 자갈을 하나 주워 쥐고 가라’고 웃겼다. 집이 시끌벅적하게 하려고 친구들과 처녀들을 놀러오라 하여 공산 뽑기 놀이도 하고 수건돌리기도 하였다. 흥이 나면 돌려가며 노래도 부르고 놀았다.

 1951년 봄에 우리 집에 있다가 순경이 데리러 와서 도망치지도 않고 따라가 국군이 되었다. 전쟁에 나가면 죽을지 살지 모르므로 군대에 가지 않으려고 도망치던 때였다. 제주도에서 훈련을 받고 3사단 수색중대에서 복무했다. 다행히 살아남아 1952년 늦가을에 휴가를 나왔다. 카빈총을 메고 집에까지 왔었다. 신기해서 만져보고 가지고 놀기도 했다. 귀대하던 날 나는 이리동중학교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저만치서 형님이 달걀꾸러미를 들고 걸어가고 있었다. 부를까말까 하다가 지나쳐버렸다. 이것이 마지막이었다.

 1953년은 휴전을 앞두고 적군과 아군사이에 격전이 벌어졌다. 서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빼앗으려고 맹렬히 싸웠다. 그 때는 빨리 전쟁이 끝나서 형님이 돌아오기를 목마르게 기다렸다. 727일, 드디어 휴전이 되었다. 이제는 살았다 하고 형님의 소식을 기다렸다. 2주일 쯤 지나서 우편물이 왔는데 뜻밖에도 실종소식이었다. 719. 김화지구 전투에서 실종’이라 하였다. 온 집안 식구들의 울음바다가 되었다.

 1983년 현충일에 서울국립현충원을 찾았다. 혹시 묘가 있을까 싶어 찾은 것이다. 안내소에 '김삼석' 이름를 대니 여러 사람이라 하여 군번 0631793을 불러주었다. 찾아보고 무명용사의 탑 아래에 이름만 새겨져 있다하여 찾아가 꽃을 올리고 묵념을 했다. 늦게 찾아와 죄송하다고 마음속으로 사죄했다. 그 뒤 현충일이 되면 김제 성산 현충탑의 형님 이름 아래에 제물을 차리고 절을 올렸다. 여렇게 하다가 사촌누님이 성당에서 제삿날 미사를 올린다 하여 그만두었다.  

 남북화해가 이루어져 실종자 유해발굴을 하고 있다. 행여 찾을까 싶어 사촌여동생의 DNA 검사를 하도록 했다. 천만다행으로 유해가 발굴되어 현충원에 묻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내 나이 80대 중반인데 생애가 끝나기 전에 좋은 소식이 오면 좋겠다. 후손이 없어 제사도 지내지 않고 나 아니면 생각하는 사람도 없다. 내 생전에 좋은 결말을 보았으면 다행이겠다.  

 

 휴전이 된지 66년이 흘렀다. 웬만한 사람은 한국전쟁의 고난을 모른다, 이제 현충일이 되어도 노는 날로만 알고 목숨 바쳐 지킨 국군장병의 공을 생각하지도 않는다. 가정마다 태극기도 달지 않는다. 애국이 무엇인지 전쟁의 고통이 어떤지 전혀 생각을 하지 않는다. 현충일이 무슨 날인지 아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의심이 가기도 한다. 이제부터라도 현충일의 의의를 대대적으로 알리고 뜻깊게 현충일을 맞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2019.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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