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음이 없는 나라, 일본

2019.06.26 20:20

김성은 조회 수:4

소음이 없는 나라, 일본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우애 좋기로 소문난 우리 세 자매의 첫 해외여행이다. 조정래 작가가 쓴 대하소설 '아리랑’을 읽으면서 우리나라의 아픈 역사를 적나라하게 공부했었다. 아직 해결되지 않은 위안부문제라든지 독도 영토 분쟁 등으로 솔직히 일본에 대한 개인 감정은 썩 좋지 않다. 9살 유주와 조카들은 착한 남편과 제부들이 의기투합하여 아빠부대 육아일정을 짰다. 과연 제대로 실현될 것인가?

출국 당일까지 실감이 나지 않았다.

 

 비행 시간은 1시간 남짓, 우리나라와 일본은 시차도 없는 데다가 친숙한 편의점 간판들을 마주하고 보니 타국이라는 이질감은 느껴지지 않았다. 직장인들을 주 고객으로 한 23일 벳부온천 패키지 상품이었다. 입국심사를 하면서 내가 시각장애인임을 말하자 일본인 아저씨는 내 손을 잡아 친절하게 지장 찍는 것을 도와주었다.

 일본에서의 첫 끼니는 100년 전통을 자랑한다는 우동집에서 있었다. 우선은 음식이 몹시 짰다. 소박한 그릇에는 젓가락으로 한두 번 집어 먹으면 텅 비어버릴 반찬들이 오밀조밀 담겨 있었다.

 밥문화가 발달한 나라이니만큼 반찬보다는 밥 자체의 맛과 질을 까다롭게 따진다고 했다. 첫날밤은 시카노시마 지역에 ‘큐카무라’라는 어촌마을 숙소에서 묵었다. 미야모토 테루가 쓴 단편소설 ‘환상의 빛’ 의 배경을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재현해 놓은 것 같은 다다미방, 창문 밑에서 들려오는 파도소리가 꿈결 같았다. 정갈하게 깔려 있는 이부자리 세 채는 비를 맞으며 환상적인 노천을 즐기고 들어온 우리 세 자매에게 어서 누우라고 손짓하는 듯했다.

자판기에서 뽑은 아사이맥주를 홀짝거리며 우리는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자매만이 나누어 가질 수 있는 부모님에 대한 애뜻한 사랑과 우리만 아는 우리 집 문제들을 가감없이 이야기하고 정리했다.

 딸만 셋인 우리 집에서 기둥이자 아들 노릇을 하는 둘째는 언니와 동생의 배꼽이 위태로울 지경으로 잔혹 동화에 버금가는 입담을 뽐냈다. 매사에 진지하고 순종적인 나와 막내에게 대장이요, 해결사인 둘째는 늘 그랬듯이 우리 일행의 인솔자였다.

 이튿날에는 벳부지역에 가마도 지옥마을을 체험했다. 일본이 화산섬이라는 사실이야 익히 알고 있었지만, 지글지글 타오르는 유황 온천의 수증기를 직접 피부로 체감하고 보니 성경 속의 유황지옥이 당장이라도 나를 집어 삼킬 것 같은 두려움에 등골이 오싹했다.

유노하나온천 마을에서 여한 없이 풍욕을 즐겼다. 유카타를 입고 아무도 없는 새카만 시골길을 걸었다. 수증기가 뭉개뭉개 피어 오르는 마을 정경은 더없이 몽환적이었고, 우리 세 자매는 양 팔을 활짝 벌린 채 자유로운 포즈로 사진을 찍었다.

 여성 전용이라는 표지판이 붙어 있기는 했어도 잠금 장치가 없는 노천은 못내 불안했다. 경상도할머니 부대가 합류하기 전까지 세 자매는 온 신경을 문 쪽에 집중한 채 꼿꼿하게 굳어 있었다. 요란한 우리말 사투리가 그렇게 반가울 수 없었다. 벗은 할머니들이 합세하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 내 마음도 느슨해졌다. 그 때부터 우리는 본격적인 수다 신공에 돌입했고, 물 속에 앉아 바람을 맞으며 웃고 또 웃었다.

 

 두 번째 숙소도 다다미방이었다. 특이한 것은 개인 타월이었다. 인심 좋게 여나문 개를 비치한 우리 숙소와는 달리 일본은 투숙객 숫자만큼만 타월이 비치되어 있었다. 개별 포장되어 새 것을 개봉하는 듯한 깔끔한 맛이 좋았다. 정작 수건은 오래 쓴 듯 낡은 느낌이었지만 검소한 그들의 생활 태도가 엿보였다.

 유후인 민예거리는 꼭 서울 인사동 같았다. 일본인·중국인 관광객이 넘쳐나는 명동 거리와도 닮은 느낌으로 기념품 가게가 즐비했다. 꿀벌 아이스크림과 모찌떡은 맛이 있었다. 160Cm가 안 되는 내 키로도 천장을 만질 수 있는 귀여운 상점이 신기했다. 유리공예가 발달한 나라답게 어딜 가나 맑은 풍경과 오르골 소리가 들렸다.

  경적 소리가 없어서인지 도로마저도 고요한 느낌이었다. 하나같이 창문에 커튼이 드리워져 있는 가옥 풍경도 이색적이었다. 매정하다 싶을만큼 차단된 공간 구조는 그 나라 국민들의 생활상을, 가치관을 말해주고 있었다.

 마지막 날에는 야나가와 뱃놀이를 체험했다. 버드나무 가지가 늘어진 수로를 따라 뱃사공 아저씨의 “수그려!” 란 외침에 깔깔거리며 허리를 굽혔다. 다리 밑을 통과하는 동안 체구가 작은 아저씨는 날렵하게 다리 위로 뛰어 올라 밑에 엎드린 우리를 내려다 보며 익살스럽게 장난을 쳤다. ‘돌아와요 부산항에, 무조건, 내나이가 어때서’란 노래를 우리말로 불러 젖히는 아저씨는 정직해 보였다. 요란하지 않은 여흥이 썩 마음에 들었다. 열정이 넘치는 베트남 바구니 보트와는 또다른 매력이 웃음을 주었다. 쓰레기를 만들지 말라는 의미로 일본 정부는 거리에 쓰레기통을 설치하지 않는다는 가이드의 설명이 인상적이었다.

 후쿠오카 공항에 도착할 때까지 정말 거리에서 쓰레기통을 찾아볼 수 없었다. 끼니끼니 소박한 밥상은 잔반을 만들지 말라는 경고로 다가왔다. 연두부·나또·흰 죽·생선구이 등 고춧가루를 전혀 쓰지 않는 식단은 고혈압과 같은 생활습관병을 예방하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인 성싶었다.

 짧은 23일이었다. 그들은 매우 치밀했고, 친절했다. 철저하게 사무적이었으나 앞 못 보는 여행객에게 불쑥 뿌레젠또를 건내는 운전 기사 선의에 깜짝 감동도 받았다. 서툰 일어로 고맙다고 인사하며 나도 그에게 커피를 내밀었다. 새 주인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한국 시골 마을로 떠나온 귀여운 토끼 파우치는 매일 아침 화장대 앞에서 기계적으로 출근을 준비하는 내게 여행의 흥분을 속삭거린다. 맑은 목청으로 겨울 왕국을 노래하는 오르골도 그 날의 감각을 일깨워 준다.

 후쿠오카 공항에서 오후 615분 비행기로 이륙했다. 인천 공항에 7시가 조금 넘어 창륙했고, 친절한 승무원 안내를 받아 나는 바쁘게 광명 행 버스에 올라탔다.

광명역에 도착하니 퇴근하고 나를 마중 나온 남편이 버스 창문을 두드려 자기 위치를 알려 주었다. 남편을 만나니 비로소 긴장이 풀렸다.

우리 부부는 KTX에 나란히 앉아 초등학생들처럼 정답게 담소했다.

선뜻 여행 경비를 쾌척해 준 남편 덕택에 떠날 수 있었다. 면세점에서 심여를 기울여 고른 벨트와 면도기를 선물했다. 내가 귀가할 때까지 잠든 유주 곁을 지켜 주신 엄마도 밝은 웃음으로 우리를 맞아 주셨다.

2019.6.28..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67 내 이름은 김영숙 김영숙 2019.07.01 11
766 진시황과 한 무제의 꿈 송재소 2019.07.01 23
765 저쪽 나석중 2019.07.01 3
764 내 주변엔 행복배달부들이 많아서 좋다 김학 2019.06.30 6
763 우정이 무엇이기에 김길남 2019.06.30 7
762 결혼하고 싶은 남자 최미자 2019.06.30 10
761 캘리포니아 백미 대왕 두루미 2019.06.29 1
760 연아야, 고맙다 장석대 2019.06.29 1
759 박씨를 물고 온 제비 김삼남 2019.06.28 70
758 수필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점 김길남 2019.06.28 50
757 부잔교 김세명 2019.06.28 8
756 꿈은 늙지 않는다 김학 2019.06.27 5
755 김치찌개의 별미 신팔복 2019.06.27 1
754 가기 싫은 곳 최기춘 2019.06.27 1
753 오독 최수연 2019.06.27 1
» 소음이 없는 나라, 일본 김성은 2019.06.26 4
751 제15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원수연 2019.06.26 57
750 장모님의 쌈터 찾기 정석곤 2019.06.26 6
749 산수국 백승훈 2019.06.25 3
748 목련꽃이 필 무렵이면 신효선 2019.06.25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