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찌개의 별미

2019.06.27 06:37

신팔복 조회 수:1

[금요수필] 김치찌개의 별미

 




신팔복신팔복

우리네 밥상에 김치가 빠지면 팥소 없는 찐빵과 같다. 나는 매일 김치를 먹는다. 만약에 김치가 없다면 그야말로 무미건조한 식사가 되고 만다.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 김치는 우리 조상들이 발명한 세계적 저장식품이다. 좋은 배추나 무를 다듬어 절이고, 찹쌀 풀에 고춧가루와 갖은양념을 넣어 만든 고춧가루 죽에 좋아하는 액젓으로 간을 맞춰 버무려서 김치를 담근다. 독에 넣어 서서히 자연 발효시키면 젖산이 풍부해지면서 더욱더 맛깔스럽게 숙성된다.

김장김치는 무기물과 비타민을 제공하고, 풍부한 영양분이 들어있어 겨울철 반찬으로는 모자람이 없다. 잘 삭힌 무김치는 찐 고구마와 매우 궁합이 잘 맞아 가난했던 시절에는 끼니로 먹었다. 김치전도 좋고 김치죽도 맛있다. 나는 추운 겨울이면 어렸을 때 입맛이 생각나 가끔 김치죽을 먹는다.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뜨거운 김을 살살 불어가며 먹는 김치죽은 끝 숟가락에서 더 개운한 맛을 느낀다.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김치찌개의 개운한 맛은 밥맛을 돋웠고 술을 당겼다. 그래서 친구와 김치찌개를 먹으려고 음식점을 찾아다녔다. 오늘도 친구와 함께 손맛이 좋은 작은 식당을 찾아왔다. 묵은김치에 돼지고기를 넣고 콩나물과 두부를 조금 올리고 그 위에 대파를 썰어 얹어 펄펄 끓이는 김치찌개가 식욕을 돋웠다. 밥은 제쳐 두고 막걸리를 한 사발씩을 마시고 찌개를 맛봤다.

“야, 이 맛이야!” 감미롭고 부드러운 맛이었다. 친구도 무척 좋아했다. 갑자기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김치찌개 맛을 느꼈다. 어머니는 네발짐승의 고기를 못 드셨지만, 원체 아버지가 좋아하시던 음식이라 눈으로만 보고도 단박에 맛 좋게 끓여 내셨다. 김장김치와 돼지고기를 넣어 만든 김치찌개는 언제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 한잔 술을 또 친구에게 권하며 나도 마셨다. 온몸에 따뜻한 기운이 퍼져갔다.

김장용 무와 배추는 한여름 더위가 지나고 기온이 서늘해질 때 심는다. 무와 달리 배추는 가꾸기가 까다롭다. 무는 종자를 직접 흙에 뿌리지만 배추는 모종을 사다가 심는 게 보통이다. 모종을 심은 초기에 벌레나 귀뚜라미가 어린 배추 속잎을 끊어먹어 없어지고, 조금 자라면 배추흰나비 애벌레가 잎을 갉아먹기 때문에 가꾸기 힘들다. 그래서 해충 방제는 꼭 해야 한다. 올해도 배추 모종 한 판을 사다가 작은 남새밭에 심고 가꿨는데 그런대로 되었다. 며느리와 딸을 불러 김장을 마치고 무와 김치를 몇 통씩 싸서 보냈다. 잘 익은 김치를 먹고 긴 겨울을 거뜬히 이겨냈으면 좋겠다.

김치는 묵을수록 맛이 좋아진다. 묵은 지에 돼지고기를 두툼하게 썰어 넣든가 신선한 꽁치나 고등어 등의 생선을 넣어 끓이면 감칠맛이 난다. 갓 지어 고슬고슬한 쌀밥에 얹어 먹으면 언제 먹었는지조차 모를 만큼 금방 밥 한 그릇을 비우게 된다. 김치찌개를 놓고선 입맛이 없다고 투정부릴 사람은 없을 것 같다.

나는 막 담근 김치보다 신 김치를 더 좋아한다. 숙성되어 시어진 김치가 내 입맛에 맞다. 특히 무김치 국물의 시원한 맛은 입안을 개운하게 해주어 좋다. 땅속에 독을 묻어 숙성시킨 김치는 겨울을 지나면서 더욱 아삭해지고 시원한 맛을 낸다. 지금은 김치냉장고가 그를 대신하지만…. 채소를 구하기 어려운 겨울에 김장김치는 우리네 밥상을 풍성하게 만들어 주던 영양식품이었고, 건강을 챙겨주었다. 김치찌개로 안주를 하며 또 한 잔을 마셨다. 입안이 개운해졌다. 옆자리에서도 김치찌개가 끓고 있다.

 

* 신팔복 수필가는 중등교사로 퇴직하여 대한문학으로 등단했다. 전북문인 회원, 진안문협 이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수필집 <마이산 메아리>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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