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은 김영숙

2019.07.01 06:52

김영숙 조회 수:11

내 이름은 김영숙
  • 전주일보

금요수필
김 영 숙 /수필가김 영 숙 /수필가

꽃부리 영(), 맑을 숙(), ‘김영숙바로 내 이름이다. 한자로 풀어보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이름이지만, 문제는 김영숙이라는 이름이 너무 많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김영숙!'하고 부르면 4만여 명이 손든다.’ 몇 년 전 인터넷 포털 기사 제목이다. 기사는 어느 신용정보회사의 DB 자료를 활용해 동명이인의 수를 조사한 결과인데 무려 43천여 명이나 된다고 했다.

돌아보면 그 흔하디흔한 이름으로 살면서 크고 작은 에피소드가 꽤 있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는 이름 때문에 한 번 죽었다가 살아났다. 등굣길에 같은 동네에 살던 김영숙이라는 친구가 교통사고로 사망하는 일이 있었다. 그런데 우리 집으로 연락이 간 것이다. 마침 외삼촌 결혼식 때문에 친척들이 모여 있었던지라 집안은 발칵 뒤집혔다. 다행히 내가 아닌 동명이인이라는 게 밝혀지면서 우리 집은 한숨 돌렸지만 내 친구 영숙이의 집은 말 그대로 초상집이 되고 말았다. 어른들은 너는 먼저 간 친구 몫까지 건강하게 살아야 한다며 다독여 주셨고 내 친구 영숙이는 임계면 초입 버들고개 아래 고이 잠들었다. 그때 먼저 간 영숙이의 묘에 나와 친구들은 손가락만 한 소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 지금쯤은 제법 굵은 기둥이 되었을 것이다.

고등학교 때는 교내 백일장 대회에서 내가 아닌 다른 김영숙이 상을 받았다. 가을에 관련한 시제였던 걸로 기억한다. 그런데 며칠 후에 백일장 당선작이라며 교내신문에 올라온 글을 보고 기가 막혔다. 바로 내가 쓴 들꽃이라는 시가 장원 작이 아닌가? 우여곡절 끝에 상장은 내게 돌아왔다. 그러나 오만 원의 상금은 친구가 다 써버려서 나중에 주겠노라 했지만, 졸업 후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니 36년째 미수금으로 남은 셈이다.

최근에는 하마터면 전북문인협회에서 퇴출당할 뻔했다. 어느 날 문인협회 선배님으로부터 다급하게 전화가 왔다. 내용인즉 김영숙이라는 사람이 어느 분께 전화 통화하면서 상당한 실수를 했는데 단체에서 나를 퇴출하겠다는 말까지 오갔다는 것이다.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내가 구설에 오른 것이다. 다행히 그분에게 연락이 닿아서 내가 아닌 동명이인이라는 것이 밝혀졌고 회장님은 속절없이 오해해서 미안하다며 사과하셨다.

이름은 거창한 수식어를 달지 않더라도 자기만의 고유한 영역이고 자신의 얼굴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데 가끔 우리네 어버이들이 집안의 명예나 남아선호 사상에 젖어 지은 이름으로 인해 자식이 놀림 받거나 우스운 이름으로 산 경우가 꽤 있다. 우리 약국에 오시는 어르신 중에도 강씨 성을 가진 아지(강아지), 장씨 성을 가진 족간(장족간), 권씨 성을 가진 태기(권태기), 김씨 성을 가진 만두(김만두)님 등 이름으로 설움 받았을 법한 이름이 꽤 있다. 아들 없이 딸만 여섯인 집에서 여섯 번째 딸인 내 친구의 이름은 귀남이다. 또 다른 딸부잣집 셋째는 삼순이다. 어렵사리 남동생을 둔 친구는 후남이다. 이제는 개명도 흉이 되지 않는다며 과감하게 개명을 단행한 사람도 있다. 간단한 해명자료만 제출하면 쉽게 할 수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내 이름은 흔해서 그렇지 특이한 이름은 아니다. 그러니 이름은 부모님의 마음과 연결 고리라 여기며 산다. ‘영숙’, 뛰어난 재능과 지혜로 해맑게 잘 살라는 의미로 내 아버지께서 지어주신 소중한 이름 아니던가? 그 흔한 이름일지언정 한동안 자주 불리지 않을 때가 있었다. 신혼 때 시부모님은 아가’, 두 아이를 낳고 나니 어미야하고 부르셨다. 그리고 신봉식의 아내로 유미 엄마로, 동직이 엄마로, 언니로, 누나로, 아파트 단지 내에서는 202호로 불렸다.

문뜩 친정어머니 살아계실 적 통화했던 일이 생각나 가슴이 아릿하다. 어느 날, “여보세요. 박정옥 씨 댁이죠?”하고 전화하니 어머니가전화 잘못 거셨어요.” 하시면서 전화를 뚝 끊어버리시는 게 아닌가. 평생 누구네 엄마, 누구네 안사람으로만 사셨으니 당신의 이름이 생소하셨을 게다. “박정옥 여사님, 왜 전화를 끊으셔요?” 내가 다시 전화 드리니 그러게 말이다.” 어머니의 씁쓸한 대답은 거기까지이고, 신 서방 잘 있느냐? 얘들은 공부 잘하느냐? 속사포처럼 안부만 묻고 또다시 요금 많이 나온다며 먼저 끊으셨다.

당신의 이름조차 생소한 삶을 살았던 박정옥 여사’, 이제는 다정히 그 이름을 부르며 전화해서 신 서방도 나이 들었는지 엄마가 그리 원하시던 대로 살이 찌고 배도 좀 나왔다고, 유미는 공인중개사로 열심히 일하고, 동직이는 씩씩한 특전사 부사관이며 장가도 갔다.’고 더 살갑게 수다 떨며 기쁘게 해드리고 싶어도 부를 수 없는 이름이 되었다.

너무 흔한 이름 김영숙, 저잣거리에 돌을 던지면 김영숙이 맞을 것 같은 그런 이름임에도 불구하고 라는 존재는 하나인 것을. 내가 그이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라는 김춘수의 시처럼 존재의 의미는 분명히 있는 것이니까. 고로 하찮은 이름이란 없다는 게 내 결론이다.

비록 "영숙이, 숙제했어?" 라는 유행어가 돌고, TV 광고에서조차 평범한 김영숙 씨 편이 등장하는, 너무 흔해서 개성도 없지만 그래서 더욱 친근감이 드는 이름, 같은 이름이 4만 명이면 어떻고 5만 명이면 어떻랴? 나는 내 이름을 사랑한다.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내 이름은 김영숙 김영숙 2019.07.01 11
766 진시황과 한 무제의 꿈 송재소 2019.07.01 23
765 저쪽 나석중 2019.07.01 3
764 내 주변엔 행복배달부들이 많아서 좋다 김학 2019.06.30 3
763 우정이 무엇이기에 김길남 2019.06.30 7
762 결혼하고 싶은 남자 최미자 2019.06.30 10
761 캘리포니아 백미 대왕 두루미 2019.06.29 1
760 연아야, 고맙다 장석대 2019.06.29 1
759 박씨를 물고 온 제비 김삼남 2019.06.28 70
758 수필을 쓸 때 주의해야 할 점 김길남 2019.06.28 50
757 부잔교 김세명 2019.06.28 8
756 꿈은 늙지 않는다 김학 2019.06.27 5
755 김치찌개의 별미 신팔복 2019.06.27 1
754 가기 싫은 곳 최기춘 2019.06.27 1
753 오독 최수연 2019.06.27 1
752 소음이 없는 나라, 일본 김성은 2019.06.26 4
751 제15회 원종린 수필문학상 원수연 2019.06.26 57
750 장모님의 쌈터 찾기 정석곤 2019.06.26 6
749 산수국 백승훈 2019.06.25 3
748 목련꽃이 필 무렵이면 신효선 2019.06.25 4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