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무게가 짓눌러도

2019.07.03 13:14

변명옥 조회 수:2

삶의 무게가 짓눌러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명옥

 

 

 

  5, 잠결에 벨이 울린다. ', 형님이 드디어 가셨구나!' 쿵 내려앉는 마음으로 전화기를 집어 든다.

 “외숙모, 엄마 돌아가셨어요.” “아, 그랬구나, 편히 가셨어?” “네, 그…” 막내 영균이의 목소리가 금방 울음에 젖는다. 5일 전에 포항에 가 뵈었을 때 의식없이 누워계신 모습을 보고 왔다.

 

 향년 여든 하나의 짧지 않은 인생길, 험준한 삶의 고개를 넘어 살아오신 전주댁(부락에서 부르는 호칭)은 그렇게 훌훌 털고 떠나셨다. 정 많고 명랑하고 일 잘하고 자식에 대한 사랑이 끔찍하며 자기 몸보다 다른 사람을 더 챙기던 우리 큰 시누이는 그런 마음으로 평생을 사셨다. 형님이 50년 넘게 길렀던 벼와 고추, , , 마늘 등 수도 셀 수 없던 농작물은 형님의 굵은 땀방울로 알차게 자랐다. 형님의 사랑과 정성으로 바르게 자란 43녀의 자식들과 친척, 이웃들은 형님이 기른 쌀과 채소로 세상 살아가는 힘을 얻었다. 입으로 들어가는 기쁨만 알던 철없던 올케인 나는 형님의 얼굴에서 비처럼 쏟아지던 흙 섞인 땀방울을 보고서야 작물을 기르는 어려움을 알았다. 일을 너무 많이 해서 허리 수술을 두 번이나 했다. 잘 걷지 못하는 몸으로 힘들게 키운 작물을 알이 굵고 튼실한 것은 자식과 친척들과 고향 떠나 사는 이웃에게 주고, 못 나고 이즈러진 것은 형님이 가졌다. 그런 형님을 보며 자신만 알던 나는 감자 한 알 고추 한 개라도 소홀히 할 수 없어 농부에 대한 존경심을 갖게 되었다.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밑까지 차는 여름날, 형님은 고추를 따고 있었다. ‘그까짓 고추야 누구나 따지.’ 하며 호기롭게 고추밭에 들어갔던 나는 이쪽 고랑에서 “뚝,” 저쪽에서 “뚝뚝” 부러지는 고추 가지에 당황하고 말았다. 형님은 그 큰 몸집으로 날렵하게 따는데 나는 겨우 몇 개 따고 가지만 부러뜨렸으니 돕는 게 아니라 폐만 끼쳤다. 그래도 형님과 시누이 남편은 고추 따는 게 쉬운 일이 아닌데 애썼다며 치하를 했다.

 밭 모서리마다 수박을 심어 큰 주먹만큼 자라 속이 분홍빛이 될락 말락한 수박을 일하다가 목이 마르면 주먹으로 ‘툭’ 쳐서 깨어 잡수셨다. 푹푹 올라오는 땅의 열기를 땅에서 자란 수박의 물기로 식히고 또 일을 하셨다. 나는 딸에게 고모를 뵈러 갈 때는 수박을 사 가라고 말했다. 수박을 허연 속껍질이 보일 때까지 수저로 파서 드셨다.

 

 내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젊은 시절에 시집살이 한 이야기를 하셨다. 친정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어머니는 재가하셨다. 의지가지 없던 형님은 외숙모의 소개로 이불 한 채 장만 못하고 결혼하게 되었다. 처음에 형님의 환하고 예쁜 모습이 마음에 들어 맞이했던 홀시어머니의 돌변이 두고두고 형님의 일생을 괴롭혔다. 형님 내외분이 일하러 가다오다 마주쳐 웃기만 해도 그날 저녁은 온 동네가 시끄럽도록 형님을 때리고 난리를 쳤다고 한다. 두 내외가 사이좋게 지내는 것을 질투한 것이다. 그러니 다른 것이야 불을 보듯 뻔한 것이 아닌가? 지금도 골짜기지만 그 당시에는 전깃불도 안 들어오고 우마차도 못 다니는 오지 중의 오지에 갇혀 눈물로 지새운 날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한다. 제일 서러웠던 것은 시어머니가 일부러 쌀을 적게 내 주어 식구들 밥을 푸고 나면 항상 형님 밥이 남지 않았다고 한다. 하루 종일 일하고 밥도 배불리 먹을 수 없었다고 한다.

 

 “젊은 년이 깨끗하게 입고 다니면 바람 나.” 하며 빨랫비누를 주지 않아 깜깜한 어둠 속에 집 앞 개울가로 내려가 속옷을 그냥 주물러 입으니 하얀 러닝셔츠가 누렇게 되었다고 한다. 깔끔한 형님이 얼마나 속이 상했을지 짐작이 간다.

 며느리가 얼마나 미웠으면 아기를 낳고 누워있는 며느리 방의 구들을 곡괭이로 파내는 만행까지 저지른 시어머니 밑에서 하소연할 곳 없이 눈물로 지새운 세월이었다.

 혹독한 시집살이였지만 당신이 생명을 준 자식들을 버리고 돌아설 수가 없었다고 한다. 형님이 겪은 부모 없는 설움을 자식에게는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고 한다. 형님이 그런 이야기를 할 때마다 “세상에, 어쩌면.” 하는 말 밖에 나오지 않았다. 형님이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형님이 시집오기 전에 열일곱 살 먹은 새댁이 못 살고 쫓겨난 자리에 형님이 들어가 살게 되었다고 한다.

 그리도 형님을 괴롭히던 시어머니는 일하기 싫다고 도시에 사는 작은 아들한테 가면서 형님의 시집살이는 풀렸지만 이미 허리는 굽고 걸음도 잘 걷지 못하게 되었다. 그런 몸으로 자식들한테 보낼 김치며 고추장, 된장, 간장을 맛깔스럽게 만들어 철철이 서울로 포항으로 보냈다. 올케인 내가 잘 먹는다고 겨울이면 커다란 항아리에 대나무 잎을 둘둘 말아 눌러 담은 동치미를 한 동이씩 보내 주셨다. 복스러운 손으로 취나물, 미나리, 상추를 직접 기른 참깨와 참기름을 듬뿍 넣어 무쳐주신 그 기막힌 맛이라니….

 

  2016년 형님의 시집살이 이야기로 ‘노란 민들레의 꿈’이라는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찍었다. 정읍 실버영화제에서 작품상을 받고 서울 노인영화제 본선에 들어 서울시장상을 탔다. 서울 영화제에서 감독이 “시집살이가 리얼하게 잘 표현됐네요.” 하고 평을 했다.

 “우리 시누이 시집살이를 그대로 썼어요.” 했더니 모두들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형님 이야기를 써서 상을 탔다고 했더니 “자네가 어떻게 내 이야기를 썼어?”하며 좋아하셨다.

 

 형님이 지극하신 사랑과 정성으로 챙겨주신 온갖 농산물로 내 몸과 마음이 살찌고 경제적인 어려움을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을 늦게야 깨달았다. 영영 떠나신 뒤 산을 보아도 들을 보아도 형님이 그립고 눈물이 난다. 형님, 너무 죄송해요. 천국에서는 아프지 말고 편안히 쉬세요.

                                                                         (2019.7.2)

*수필가 변명옥

010-9577-0716

salam1007@hanmail.net

종합문예지 대한문학 54호 수필가 등단/정읍 전국실버영화제 '노란 민들레의 꿈'으로 감독상 수상(2015년), 정읍 전국실버영화제'평생소원'으로 우수상 수상(2016년), 서울 실버영화제 '노란 민들레의 꿈' 서울 시장상(2016년), 서울실버영화제 '평생소원' 서울시장상(2016년), 정읍수필문학회, 행촌수필문학회, 신아문예작가회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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