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시스트

2019.07.03 23:05

최정순 조회 수:1

어시스트(assist)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 골인, 4강에 진출, ! 대한민국, 붉은 악마들, 거리마다 대형 스크린,  히딩크, 박지성, 안정환 선수 등 세계가 들끓었던 서울에서 열린 2002년 한일월드컵대회를 떠올리면 지금도 통쾌하다. 축구를 모르는 내가 이럴 정도라면 축구광들이야 말해 무엇하랴. 그 뒤 많은 축구대회가 있었지만 2002년 월드컵대회에 묻혀 생각나는 경기가 내 기억에는 없다. 그러다가 2019U-20 남자 월드컵대회가 열렸다. 경기가 열리는 동안 뒤숭숭한 나라 안팎에 잠시나마 활기를 불어 넣어주었다.  

 

  U-20 월드컵은 국제 축구 연맹(FIFA)주관으로 2년마다 열리는 청소년 축구대회다. 각국의 20세 이하 남자축구대표팀이 참가한다. 지난 523일부터 616일까지 폴란드에서 개최되었다. 이 무렵 나라 안에서는 국회가 몇 달 동안 열리지 않아 국정이며 경제가 어렵다는 국민의 언성이 높았으며, 나라밖에서는 한반도의 비핵화문제로 북·미간의 하노이협상 결렬 후유증에다 미·중간의 무역분쟁 등으로 세계가 불안했다. 거기다가 엎친데 덮친격으로 530일 부다페스트에 있는 도나우강에서 허블레아니호에 탐승한 우리나라 관광객 33명이 탄 유람선의 침몰 소식 등 크고 작은 사고들로 그야말로 나라 안팎이 시끄러울 때였다. 때마침 가뭄에 단비처럼 나라 안팎에 그나마 숨통을 트여준 U-20 월드컵대회! 이번 대회 결과는 우크라이나가 우승과 함께 ‘루닌골키퍼’가 ‘골든글로브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는 정정용 감독이 이끌어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이강인’ 선수가 24어시스트를 기록하여 ‘골든볼 상’을 수상했다.

 

  사실 나는 걷기운동 말고는 잘하는 운동이 하나도 없다. 그러니 운동경기에 대한 규칙도 모를 뿐더러 중계방송은 개 꼬막 핥기다. 공교롭게도 연속극 시간과 겹치면 괜스레 짜증이 났다이런 내가 2002년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축구에 빠져 보긴 처음이었다. 반면 남편은 운동은 못 하지만 운동경기 중계방송이라면 사족을 못 쓴다. 어느 정도냐면 간식거리까지 미리 사다 놓고 경기 몇 시간 전부터 응접실을 점령하고 중계방송을 기다린다. 오밤중이건 새벽이건 상관없다. 행여 '슛! 골인' 장면이 연출되면 괴성과 손뼉을 어찌나 쳐대는지 옆 사람을 새벽잠에서 깨어 놓는다. 한편 조용하면 우리 편이 불리하다는 것을 짐작케 했다. ‘흉보면서 배운다.’더니 그 덕에 축구에 대한 룰이며 용어가 귀에 익어갔다. 이번 경기를 보면서 '어시스트'란 새로운 단어를 알게 되었다. 어시스트(assist)의 뜻은 축구나 농구경기에서 득점하기 좋은 위치에 있는 선수에게 공을 패스해서 득점을 돕는 일을 일컫는다.  ‘도와주다’ ‘도움이 되다’란 뜻이다.  

 

  올해 U-20 월드컵에서 ‘골든볼 상’을 수상한 이강인 선수가 있었다면, 그해 가을 막냇동생도 이강인 선수 못지않게 어시스트를 기록한 선수였다. 일곱 남매 뒷바라지를 책임지던 어머니의 갑작스러운 병환으로 전답이며 가게는 생활비와 약값으로 남의 손에 넘어갔다. 책가방을 들고 손만 벌렸지 누구 하나 돈을 벌어들일 자식이 없었다. 만약에 이강인 선수가 옐로카드를 받고 퇴장당했다면 그 팀은 어찌 되었을까? 집안이 풍비박산 되었을 것이다.

 

  큰형은 군대에 입대했고, 둘째형은 대학교 2학년, 셋째형마저 고등학교 2학년 재학 중이었다. 이 틈바구니에서 본인은 중학교 졸업도 못하고 몇 년 뒤에 고등학교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뿐이다. 고등학교 진학을 포기하고 집짓는 일을 하는 막내 이모부를 따라 막노동판으로 내몰렸다. 도시락 2개를 싸들고 노동판에서 일하고 돌아오는 동생의 심정은, 또 그 모습을 지켜보는 어머니의 심경은 어떠했을까? 지나간 세월은 말이 없다. 다시 그 시절이 되돌아온다면 살아낼 자신이 있을까? 다른 친구들은 교실에 앉아서 학업에 열중할 시간에 본인은 벽돌을 등에 지어날라야 했다. 차디찬 보리밥 덩이를 입에 넣어야 했으며 어른들이 따라주는 막걸리도 마셔야 했을 것이다. 그런 삶이 계속되는 동안에도 고되다는 말 한마디 없이 인고의 세월을 살아낸 막냇동생! 빨리 철이든 착하기만 한 동생을 하늘은 외면하지 않았다. 드디어 형이 대학을 졸업하고 아주 좋은 회사에 취직이 되었다. 이것은 동생이 어시스트한 공을 형이 받아 보기 좋게 골문을 흔들어 “슛! 골인”시킨 것이 아닌가?  

 

  이제는 형이 동생에게 어시스트할 기회가 왔다. 검정고시생의 실력이 얼마나 대단했으려고? 전주에 있는 고등학교에는 진학할 수가 없었다. 지리산자락에 자리한 ‘인월고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다른 학생들보다 나이가 많은 덕으로 ‘아저씨’란 별명과 연대장도 맡고 내신성적도 1등급을 받아 전주대학교 한문학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소꼬리보다 닭의 머리가 되었다고나 할까? 이 또한 형이 자기가 졸업하고 군대에 다녀오는 동안 어머니를 돌보고 살림을 이끌어준 동생에게 베푼 절호의 어시스트였다. 드디어 막냇동생도 졸업하고 여수에 있는 중앙여고 한문선생으로 발령을 받았다. 어시스트! 혼자만 살아남으려 하지 않고 서로 밀어주고 끌어주며 도움을 준 형제간의 우애야말로 그해 최고의 ‘골든볼 상’ 이었으리라.  

 

  축구경기 같은 삶! 다급한 마음에 장거리 슛을 날려보지만 골대만 맞고 튕겨나와 노골이다. 이번에는 헤딩골로 넣어 보지만 이것 역시 기술 부족으로 골대를 넘겨버렸다. 페널티킥을, 어느 땐 프리킥을 얻어 수비진을 뚫고 골문을 향해 힘껏 쏴 보지만 이번에도 역시 노골이다. 내 분수도 모르고 너무 잘하려고 들면 마음만 앞서지 잘 되지 않을 때가 많다. 세상사도 그렇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도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삶이다.    

 

  ‘손흥민’ 선수는 욕심을 부리는 순간 슛팅이 터지지 않았다고 했다. 공은 둥글다. 지름이 21.7cm밖에 안 되는 축구공이 어디로 튈지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어시스트한 공을 받을 수 있는 좋은 위치는 내가 만들어야 한다. 패스한 공이 내게 왔을 때, 그 공을 잘 받아서 골인시킬 수 있는 선수가 되어야 한다. 생활이 무기력할 때마다 2019U-20 월드컵대회를 떠올리며 통쾌하게 웃으며 살고 싶다.  

 

 

 

                                                 (2019. 7.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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