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 그 너머에

2019.07.07 12:51

한성덕 조회 수:3

죽음, 그 너머에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기독교가 타종교와 다른 점은 확실한 구원관 때문이다. 인간의 죄를 대신하여 예수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인의 구원자로 이 땅에 오셨다.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으면,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받아 하늘나라에 간다. ‘구원자’는 오직 예수그리스도라는 것이 기독교의 핵심교리이자 진리다. 그리고 인간의 죽음은 영혼의 분리를 뜻한다.

  힌두교 역시 인간의 영혼은 죽지 않음을 믿는다. 그러나 기독교와 달리, 사람이 죽고 나면 혼은 동물이나 또는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윤회()설을 가르친다. 그러면서도 윤회설을 자세하게 설명하지 않는 약점이 있다.

 석가모니는, 힌두교에서 설명하지 않는 교리를 품고 깊은 고뇌에 빠져 도를 닦았다. 결국은 제자 아난과 춘다에게, ‘영혼도 없고, 윤회설도 없다’고 피력했다. 그는 단 한 번도 자신을 ‘구원자’라고 말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제자들에게 유언하기를 ‘더 좋은 진리가 있다면 거기를 찾아가라’고 했을 뿐이다.

  불교의 성철스님은 죽음을 앞두고, “내 죄는 산보다 높고 바다보다 깊은데 내 어찌 감당하랴. 내가 80년 동안 포교한 것은 헛것이로다. 우리는 구원이 없다. 죗값을 해결할 자가 없기 때문이다.” 라고 했다. 결코, 불교를 폄훼(貶毁)하려는 뜻이 아님을 독자들은 넉넉히 이해하리라 믿는다.  

  그 밖에 공자도, 소크라테스도, 인류에 지대한 공을 세운 그 어떤 위인도, 이단이 아닌 이상 ‘구원자’라고 말한 적이 없다. 오직 예수님만이 ‘내가 곧(천국 가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며 ‘구원자’라고 밝히셨다. 예수님이 구원자가 아니라면 믿을 이유가 전혀 없다. 최근에 임종을 평안하게 마친 두 분을 소개하려고 한다.

  먼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부인 이희호 여사다. 향년 97(610)에 하늘나라로 가셨다. 가족과 친지와 지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찬송을 부르며 소천했다는 게 아닌가? 그 모습에서, 고인에 대한 애도도 애도지만 죽음이 이렇게 평안하고 아름다울 수도 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는 이들이 꽤 있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평소 여사가 좋아하던 성경 시편 23, “여호와(하나님)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를 낭송하고 찬송을 부르자, 따라하려고 입술을 움직이다가 이내 마지막 호흡을 하셨다고 한다. 나는 그 소식을 듣자, 교회종소리가 울려 퍼지는 들녘에서, 황혼을 등에 업은 부부가 간절히 기도하는 풍경을 담은 밀레의 ‘만종’이 떠올랐다. 사람들은 죽음이 ‘끝’이라고 절망하는데, 천국의 기쁨과 감격이 얼마나 컸으면 고요히 잠자듯 평안히 운명하셨나 싶어서다.

  또 한 분은, 지난 6월 마지막 날(30) 천국에 입성하신 한동대학교 초대총장이셨던 김영길 박사다. 향년 81세에 별세하셨다. 100세 시대 운운하니까 아쉬움이 남지만, 학계나 교계에서 그리고 국제적으로도 할 일을 다 하신 분이다.

  서울대 공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미국유학을 했다. 최첨단 기기들의 집합체인 ‘미국항공우주국(NASA)’에서 근무했다. 세계석학들이 즐비한 나사에서 1976년과 1981, 나사가 수여하는 ‘발명상’을 두 차례나 받았다. 그리고 제트엔진에 쓰이는 합금을 발견함으로 ‘미국산업연구발명상’을 받았다. 한국은 그의 합금 제조기술을 독일에 수출하므로 건국 이래 수출 제1호자가 되었다. 한국이 낳은 천재적인 과학자요, 신실한 기독교신자로 장로였다. 나사에 계속 있었으면 일생을 보장받고 좀 더 멋진 생애를 살았을 건데, 19년 동안 한동대총장으로 재직하면서 파란만장한 세월을 보냈다. 아니, 기독교사학의 명문대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일부러 고난의 십자가를 졌는지도 모른다. 잇단 고소고발로 재판을 받고 53일간의 옥고를 치르기도 했다.

 으로  온갖 풍상을 겪은 탓일까? 췌장암선고를 받고 투병하다가 지난달 630일 천국으로 가셨다. 그달 20일이면 열흘전이 아닌가? 병문안을 왔던 담임목사에게 큰소리로 한 말이 회자(膾炙)되고 있다. “목사님, 저는 죽어도 삽니다. 죽음은 저에게 기쁨입니다.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기쁨입니다.” 서서히 의식을 잃어가고 있었지만, 또렷한 어조로 부활신앙을 고백했다. 그의 이런 신앙고백이 어리석음에서 나온 것일까?

  김영길 총장은 철저한 불교집안에서 자랐다. 사실이 증명돼야 수긍하는 과학자가 아닌가? 생래적으로 기독교신자가 될 수 없는 환경이었다. 아내의 권고로 교회를 다니고 있었지만 형식이었다. 그에게 영적으로 거듭나는 계기가 있었으니, 1973년 나사에 연구원으로 입사해서다. 어느 날 동료의 안내로 화요기도모임에 참석했다. 150여 명의 내 로라 하는 과학자들이, 찬송을 부르며 뜨겁게 기도하는데 큰 충격을 받았다. ‘기독교 안에 뭔가 있다’는 생각이 들면서, 기도모임에 참석한 자들의 표정을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어디에서도 볼 수 없는 기쁨과 평안이 넘쳤다. ‘그렇다면 나는 왜 저런 기쁨을 소유할 수 없을까?’를 생각하다가, 하나님의 은혜 속으로 깊이 빠져들었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거듭난 자(영적으로 다시 태어남)가 된 것이다.

  그가 기독교신자로 변신한 이유다. 1초 뒤의 일도 모르는 게 과학이다. 인간이 영적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동물세계의 강아지가 대화를 하고 책을 보며 자동차를 운전하는 인간세계를 도무지 이해하지 못하는 이치와 같다.” 나는 그 말을, ‘유한한 인간이, 무한하신 하나님을 평가할 수 없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김 총장은, 영적으로 거듭난 자신에게서 두 가지의 변화가 있었다고 토로했다. 하나는, 부부의 애정이 새롭게 되었다. 공학도의 무미건조하고 말이 뜸한 자신이, ‘신앙’이라는 공동화제로 화기애애한 분위기가 조성되었다. 또 하나는, 부친에게 술을 배웠는데 체질적으로도 잘 맞아 애주가가 되었다. 그러나 영적인 기쁨이 들어차면서 하찮은 것이 되었다고 했다. 두 분 모두 기독교 신자로서, 죽음, 그 너머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에 조금도 주저하거나 두려워하지 않고 생을 마쳤다.

  둘째딸 샛별이가 한동대학교 법학부를 다닌 탓에 김영길 전 총장을 두어 차례 만났다. 딸이 아빠가 목사라고 소개하자, 특유의 환한 미소와 포옹으로 나를 반겼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던 그 모습이 눈에 선하다. 무감독 양심 시험제도의 선구자인 그가, ‘공부해서 남 주나’를, ‘공부해서 남 주자’라고 외치며 젊은이들에게 이타심을 키웠다. 총장의 그런 리더십에 찬사를 보내며 천국에서 다시 만날 것을 기대한다.

                                                                                          (2019. 7. 5.)

 

댓글 0

문서 첨부 제한 : 0Byte/ 200.00MB
파일 크기 제한 : 200.00MB (허용 확장자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784 우산의 시간 최연수 2019.07.11 1
783 행복 전도사 김학 2019.07.10 2
782 껍질째 먹으면 좋은 과일, 채소 두루미 2019.07.10 2
781 상처 없는 독수리 두루마 2019.07.10 1
780 해수화 [1] 백승훈 2019.07.09 13
779 수목원 가는 길 이진숙 2019.07.08 2
778 해바라기 사랑 장석대 2019.07.08 2
» 죽음, 그 너머에 한성덕 2019.07.07 3
776 매듭 김창임 2019.07.05 2
775 블레드 여행 고안상 2019.07.05 1
774 쓰러진 사과나무 이진숙 2019.07.05 0
773 내가 살아보니까 장영희 2019.07.05 2
772 어시스트 최정순 2019.07.03 1
771 능소화 연가 류인순 2019.07.03 1
770 삶의 무게가 짓눌러도 변명옥 2019.07.03 2
769 노각나무 꽃 백승훈 2019.07.02 3
768 투철한 직업의식 김성은 2019.07.02 0
767 내 이름은 김영숙 김영숙 2019.07.01 4
766 진시황과 한 무제의 꿈 송재소 2019.07.01 3
765 저쪽 나석중 2019.07.0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