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벌 친구, 조재호

2019.08.08 16:36

한성덕 조회 수:11

라이벌 친구, 조재호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한성덕

 

 

 

 

 

  선의의 경쟁은 더 나은 발전의 시금석이다. 어딘가에 있을 명언이겠지만 내 삶에서 터득한 지혜다. 세계 3대 테너라고 하면, 스페인의 두 사람 호세 카레라스(Jose Carrerasas, 1946~) 플라시도 도밍고(Placido Domingo, 1941~), 그리고 이탈리아의 루치아노 파바로티(Luciano Pavar0tti, 1935~2007)를 꼽는다.

  이들은 1990년부터 공연을 함께 하곤 했었다. 좋은 일화가 있다. 카레라스가 성악가로 깃발을 날리던 41세 때 백혈병에 걸렸다. 골수 이식과 투병생활로 모아둔 재산이 날아갔다. 경쟁자인 도밍고는 승승장구하고 있었다. 카레라스는 질투도 나고 재기를 바랐으나 병은 점점 악화되었다. 그는 백혈병 환자만을 돕는 에르모사재단의 도움으로 병이 완치되었다. 재단에 감사하려고 찾아갔던 카레라스는 깜짝 놀랐다. 설립자는 다름 아닌 경쟁자요, 앙숙인 도밍고가 아닌가? 그는, 카레라스가 몸도 마음도 약한데 자존심마저 상할까봐 익명으로 재단을 설립하고 몰래 후원하고 있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게 된 카레라스는 도밍고의 공연장을 찾아갔다. 청중들은 앙코르를 외치고 있었다. 호세는 그 소리 안으로 뚜벅뚜벅 걸어 나가 도밍고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호세와 도밍고는, 서로에게 짐이 되었던 시기와 질투, 견제와 경쟁심을 내려놓고, 눈물의 감사와 존경심을 나누었다. 그들의 위대함을 내 어찌 따르랴마는, 내게도 그와 비슷한 일이 있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무주군 적상면 소재지의 초등학교에서 삼방초등학교로 전학을 했었다. 입학당시부터 계속된 1등은 전학해서도 이어졌다. 경쟁자인 친구 조재호도 1학년부터 1등을 했는데, 4,5학년 때 나에게 밀렸다. 얼마나 분하고 억울하던지, 6학년이 되면서 밤을 새워가며 공부했노라고 몇 년 전에 실토한 바 있다. 그는, 6학년 때의 1등으로 ‘무주군 교육장상’을 거머쥐었다. 졸업생 최고의 상이었다. 큰 상처가 된 나는 억울하면서도 몹시 부러웠다.  

  초등학교 이후로는 각기 다른 삶을 살았다. 더 이상 경쟁이나 견제할 이유도, 필요도 없었다. 주어진데서 살다가 친구로 만나면 그만이다. 하나 보이지 않는 경쟁심이 존재하고, 질투심이 스멀거려 늘 찌꺼기처럼 남아있었다.  제대하고, 1978년 총신대학교에 진학했다. 초등학교 시절의 라이벌 조재호를 꼭 만나고 싶었다. 대학생이 됐다는 자만심과 나보다 못하기를 바라는 졸렬한 마음이 존재한 상태였다. 1983, 드디어 친구 조재호를 만났다.

  그의 근무지는 서울 능동의 ‘금성대리점’이었다. 초대형 매장에 직원들이 꽤 많은데 부장이라고 했다. 가난뱅이 신학생은 감히 넘볼 수 없을 정도로 고품격 신사였다. 어려서도 키가 큰 미남이었지만, 상냥하고 깔끔한 매너는 더 할 나위 없이 부러운 존재였다. 겉으로는 반갑고, 속에서는 그놈의 질투심이 부글거렸다. 초등학교 ‘교육장상’에 이어 두 번째 느끼는 부러움이었다.

 

  참 별 일이다. 세상과 짝하고, 세상 따라 살던 친구가 교회를 나간다지 않는가? 어안이 벙벙하면서도 보름달을 따온 듯 기쁨이 컸다. 세월이 한참 흘렀다. 이번에는 목사 임직을 받는다고 했다. 부러울 게 없이 사는 친구였는데, 경쟁자인 성덕이가 목사가 된 것이 그렇게도 부러웠나? 그때 친구의 나이가 쉰 살쯤이었다. 경기도  가평에서 교회를 개척하더니 17년이 되었다.

  그 친구 교회를 가려는데 두 번 모두 거절당했다. 자존심이 강한 친구여서 나에게만큼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던가 보다. 그러거니 말거니 8월 첫 주는 무조건 간다고 포문을 열었다. 세 번째 만의 허락인데도 마지못한 듯했다.  

  설교를 하려고 강단에 섰다. 입을 열기도 전에 눈물이 아른거렸다. 도무지 설교를 할 수가 없어 울먹이는데, 그 짧은 순간에도 초등학생시절이 제트엔진을 달고 지나갔다. 자존심, 견제력, 질투심 같은 것이 와장창 무너지는 찰나였다. 설교에 이어서 아내의 간증과 찬양 모두를 은혜 중에 잘 마쳤다.

  그 친구도, ‘한 목사가 몇 번이나 온다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예배를 다 마쳤다. 설교했던 강단 그 자리에서 우리는 진한 포옹을 했다. 켜켜이 쌓인 응어리들은 산산 조각나고, 모래알처럼 스르르 빠져나간 자리는 깊은 신뢰와 함께 새로운 우정으로 차올랐다.

  교인들은 그런 사실을 알았을까? 우레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조재호와 성덕이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감격적인 시간이었다. 하나님께서도 감동하실만한 역사적인 명장면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019.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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