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슴 철렁한 단어 '헬조선'

2019.08.10 06:02

이종희 조회 수:8

[금요수필] 가슴 철렁한 단어 ‘헬조선’

 


이종희이종희

‘헬조선’이라는 단어가 있다. 이 말을 듣는 순간 처음에는 ‘돕다’는 뜻의 help와 우리나라를 뜻하는 ‘조선’의 합성어인 줄 알았다. 그런데 께름칙해서 검색을 해보니 젊은이들이 한국을 자조自嘲하며 일컫는 말이었다. 즉 ‘헬조선’이란 삼포세대, N포세대 등으로 대변되는 청년층이 지옥(Hell)과 조선(朝鮮)을 합성한 신조어로 말 그대로 ‘지옥 같은 대한민국’이란 뜻이다.

삼천리금수강산 한국이 어느새 ‘지옥 같은 한국’이 되었으니 말만 들어도 청년층들의 현실에 대한 불안과 절망, 분노가 드러나 기성세대로써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60년대 국가경제가 어려웠던 시절, 청년들은 일자리를 찾기 위해 경지정리 현장에 삽자루를 들고 나갔고, 건설현장에 나가 막일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애원했다. 또, 모내기를 끝낸 후 일거리가 적은 시기에는 건어물 상회에서 미역, 다시마 등을 떼어 한 짐 어깨에 메고 집집마다 팔러 다니기도 했다. 하루 고생해서 얻은 돈은 고작 몇 푼이었지만 배고픔에 허덕이는 가족을 생각하며 보람을 찾았다. 피 끓는 젊음을 일자리에서 끼니도 거르며 정열을 쏟았다. 그러면서 푼돈을 모아 목돈이 되면 셋방을 면할 수도 있었다.

삼포세대는 경제적 여건상 연애, 결혼, 출산을 포기한 세대를 뜻하는 말이며, N포 세대도 주거, 결혼, 인간관계 등 인생의 많은 부분을 포기한 20~30대 청년 세대를 일컫는 신조어다. 보수가 열악한 비정규직이나 옥탑방, 고시원 같은 빈곤층을 가리키는 ‘민달팽이 세대’라는 말도 있다. 이 모두가 경제적, 사회적 압박으로 인해 불안정한 청년 세대를 총칭하는 말들이다.

얼마 전 지인의 자녀 결혼식장에 갔다. 혼주에게 축하한다는 말을 전하고 신랑에게 ‘부모님께 효자’라는 격려와 함께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그랬더니 뜬금없다는 듯 어리둥절한 눈치였다. 잠시 후에 내 말을 이해했는지 허리를 굽혀 다시 웃으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아무리 살기가 어렵다고 ‘헬조선’이라니, 언짢아진다. 일자리가 없다는 젊은이들이 곳곳에 펼쳐진 건설현장에 나가는 보았는가? 기껏 일자리를 찾는다는 것이 음식점에서 아르바이트 정도였지, 땀 흘리는 일자리는 외국인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지 않던가. 근무하기 좋은 환경에서 보수는 많이 받고 싶지만, 그런 일자리가 아무나 받아줄 만큼 너그러운가. 처음 시작할 때는 어렵고 힘든 일을 하며 배우지만, 경력이 붙이고 실력을 키워 대우를 받아야 하지 않겠는가.

사회가 자동화 시스템으로 전환되는 추세여서 인력 수요가 점차 줄고 있는 건 사실이다. 기업에서도 많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면 좋겠지만, 이윤을 저울질 할 수밖에 없다. 국가에서도 일자리를 만들기 위해 장기적인 정책을 펴야 하는데 명쾌하지 못하니 청년들이 아우성이다.

생태계가 보존되려면, 생산자와 소비자의 균형이 이루어져야 하듯이, 일자리도 마찬가지다. 국가와 기업은 장기적인 안목을 가지고 계획을 세워 젊은이들이 학교교육을 충실히 마치면 취직 걱정 없는 사회가 되도록 정책적인 연구와 실행이 필요한 시점이다. 나라의 기둥인 청년들에게 상실감을 회복해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대한민국이 지옥 같다는 생각을 국민으로써 할 말은 아닌 듯싶다. 작지만 세계 여러 나라 중 상위그룹에서 한국의 위상을 높여주는 산업이 한둘이던가. 전자, 자동차, 조선 등 첨단산업과 k-pop을 비롯한 한류산업, 그리고 스포츠에서도 세계인들을 놀라게 하지 않는가. 내가 살고 있는 나라가 지옥이라고 생각하는 것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것이 우선일 것 같다. 한국이 지옥이라면 다른 나라는 천국이란 말인가?

천국과 지옥은 내가 만들어 가는 것이다. 나를 위해 노력하는 자만이 천국을 얻을 수 있다.

 

△이종희 수필가는 초등학교 교장으로 퇴직하고 ‘대한문학’에서 수필로 등단했다. 안골은빛수필 회장을 역임했으며 수필집 <임도 보고 뽕도 따고>, <초원을 찾은 나그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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