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경근 제2수필집 발문

2019.08.12 06:08

김학 조회 수:10

<문경근 제2수필집 발문>

교육자에서 수필가의 길로 접어든 노 문사(老 文士)

-常川 문경근 제2수필집 『이따금 시시하게』출간에 부쳐-

수필가 金 鶴




1. 수필가 常川 문경근의 살아온 길


“행복은 어느 날 대박 나듯 찾아오는 게 아니라는 것을 수필을 쓰면서 깨닫게 되었다. 작은 기쁨들이 모이고 쌓이면 언젠가 행복이라는 아담한 동산을 이루리라 믿는다. 그걸 기다리며 나는 오늘도 수필을 쓰고 있다.”

常川 문경근이 두 번째 수필집 『이따금 시시하게』의 머리글 말미에 써놓은 다짐이다. 常川은 믿음직한 수필가다. 언제나 바느질 하듯 꼼꼼하게 수필을 빚는 솜씨가 독자의 찬탄을 불러일으킨다.

常川 문경근은 1947년 부안에서 태어나 유년기를 보내고, 6‧25 한국전쟁의 와중에 정읍으로 거처를 옮겨 살고 있다. ‘부안 출신 정읍시민’인 셈이다. 常川 문경근의 아버지 문완식은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서예를 익혀 노년에는 추천작가의 반열에 오르는 등 한학(漢學)과 서예가로서 이름을 떨쳤던 분이다. 아버지의 그 재능을 물려받은 常川 문경근은 교육자의 길을 걸었고, 노후에는 수필가의 길을 걷고 있다.

“여기는 지아비 문완식(음 1925.1.14.-1992. 9.2.)과 지어미 박유자(음 1925.5.22.-2018. 9.2.)가 함께 유명을 이어가는 거처입니다. 두 분은 같은해 세상에 나오셨다가 앞서거니 뒤서거니 청명한 가을날에 흐릿한 세상으로 떠나셨습니다. 아버지는 묵향(墨香)을, 어머니는 들꽃 향을 품으셨습니다. 어머니는 불운한 시대와 불의를 못견뎌하시는 아버지를 감싸 안으셨고, 아버지는 삶의 고단함을 견뎌내시는 어머니를 보듬으셨습니다. 서로 경애하고 의지하며 진솔한 사랑을 펼치셨고, 움켜쥐지 않아도 행복을 얻는 지혜를 남기셨습니다. 불초 다섯 자식들과 그들의 많은 자손들이 두 분의 사랑과 은혜를 기립니다.”

常川 문경근 5형제가 2018년 가을에 부모 기리는 마음을 이렇게 이 돌비에 담아 세웠다. 5형제의 효심과 우애가 잘 드러나 있다.

常川 문경근은 아내 김정숙과의 사이에 3녀1남을 두었다. 출가한 이 자녀들은 모두 한 시간 거리 안에 살고 있어서 常川 문경근 부부의 노후가 외롭지 않아 보인다. 노마드시대에 모든 자녀가 이렇게 가까이 산다는 건 예삿일이 아니다.

常川 문경근은 평생을 학교에서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생으로서 초중고대학 시절을 학교에서 보냈고, 전주교육대학을 졸업하고 바로 교사로서 여러 학교를 거쳐 2010년 초등학교 교장으로서 정년퇴직을 했으니 평생 학교만 드나들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常川 문경근은 일찍이 정년퇴직 때 『학교 잘 다녀왔습니다』란 첫 수필집을 출간한 적이 있다. 그리고 9년 만에 두 번째 수필집 『이따금 시시하게』를 선보이게 되었다.

常川 문경근은 2013년에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에 나오면서 정식으로 수필을 공부하게 되었다. 이번 두 번째 수필집『이따금 시시하게』는 제대로 수필공부를 한 뒤 쓴 수필들이어서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으리라 믿는다. 常川은 성씨가 文씨라서 그런지 문재(文才)가 뛰어났다. 세월이 가니 이렇게 두 번째 수필집을 출간하여 수필가족들에게 기쁨을 안겨주게 되었다.

常川 문경근은 정년퇴직을 기점으로 그 전반은 교육자의 길을 걸었고, 그 후반은 수필가의 길을 걷고 있다. 常川 문경근 집안의 가훈은 아버지가 내려주신 ‘진솔(眞率)’이다. 그 가훈 ‘진솔’은 그가 추구하는 수필과도 인연이 깊다. 수필은 진솔의 문학이기 때문이다. 常川 문경근의 아버지는 아들이 수필가로 대성할 걸 내다보고 ‘진솔’이란 가훈을 남겨주셨는지도 모른다.

常川 문경근은 65편의 수필을 여섯 장으로 편집하여 제2수필집『이따금 시시하게』를 꾸몄다.


2. 常川 문경근 수필의 맛과 멋 

 

수필은 체험의 문학이다. 따라서 수필가의 다양한 체험은 매력적인 수필을 빚는데 없어서는 안 될 자양분이다. 또 수필은 평범한 일상에 새로운 의미의 옷을 입히는 문학이라고도 했다. ‘인간미를 보여줄 흥미나 자질을 갖지 못한 사람은 평론이나 소설을 쓸 수 있을지 몰라도 결코 수필은 쓸 수 없다.’고 한 김광섭의 명언에 귀를 기울일 일이다. 그런 의미에서 수필가 常川 문경근은 수필의 적장자가 되어도 무방할 것이다. 그는 사람 냄새가 물씬 풍기는 시골의 노 교육자이기 때문이다. 이제 常川 문경근의 수필 속으로 들어가 보자.

그의 제2수필집 『이따금 시시하게』목차를 보면 호기심을 끄는 제목들이 많다. 그만큼 제목을 잘 뽑는다는 뜻이다. 제목이 좋아야 독자의 눈길을 끄는 법이다. 참신한 제목이 많다. 작명 공부를 한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65편의 수필 제목 하나하나를 살펴보아도 적당히 선정한 것 같은 제목은 하나도 없다.

나이 들어 시시해진다는 것은 유년과의 접선이자, 동심과의 교신이라 자위한다. 그 순간만은 어릴 때처럼 순수 속으로 빠져든다. 복잡한 세태에서 한 발 물러 서 있는 듯 가뿐하다. 이런 나를 보고 애들 같다며 핀잔을 준다 해도 크게 신경 쓰이지 않는다. 그렇다고 시도 때도 없이 시시해 지는 건 아니다. 늘 자질구레하면 어른 대열에서 밀려날까 염려되어 때와 장소를 가리기는 한다. 아무 생각 없이 대충 지내는 무지렁이는 아니니, 그리 불쌍하게 보지 말라며 혼잣말로 다독인다.

「이따금 시시하게」중에서

이따금 동심으로 돌아가 사는 화자 자신의 삶을 묘사한 것이다. 늘 어른스럽게만 살려면 얼마나 피곤하겠는가? 발상이 참신하다. 산책을 하다가 만난 유아원 어린이에게 어른스럽게 “몇 살이니?”하고 묻지 않고 어린이와 눈높이를 맞추어 “몇 짤이니?” 하고 혀 짧은 소리로 물으면 역시 그 아이도 “네 짤” 하고 대답한다는 것이다. 그게 ‘동심과의 교신’ 방법이라는 이야기다. 초등학교에서 평생 어린이들과 함께 생활한 습성이 몸에 밴 게 아닐까 싶어 미소를 자아낸다.

常川 문경근은 수필가답게 무엇이나 예사롭게 보아 넘기지 않는다. 그러기에 그의 수필은 공감을 자아내고 감칠맛이 느껴진다.

피난길, 타관살이, 허기, 전염병…. 이런 단어들만으로도 가슴이 저리다. 그런 내가 일흔 고개를 넘어섰다니, 이건 결코 행운이 아니다. 이런 유년시절을 생각하면 산책길의 어린나무들이 어찌 예사롭게 보이겠는가? 이웃의 큰 나무들이 어린 나무들을 지긋이 내려다보고 있다. 공존의 영역에 들어온 어린 생명을 가상스럽게 여기듯.

「유목幼木 앞에서」중에서

6‧25를 거치며 위태로운 삶을 살아온 자신이 부모의 보살핌으로 건강하게 칠순 고개를 넘어온 것과 어린 나무가 큰 나무의 보살핌을 받으며 사는 것을 대비한 게 절묘하다. 산책길에서 만난 나무조차 예사로이 보아 넘기지 않는 화자의 묘사가 독자의 마음을 끌어당긴다.

常川 문경근의 수필은 제목이 명징하고 서두가 산뜻하다. 「아내의 외박」이란 수필도 제목부터 독자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침에 눈을 뜨니 옆자리가 휑하다. 옆에 있어야 할 아내가 안 보인다. 일찌감치 일어나 바스락거리는 소리에 아내도 덩달아 잠을 깨곤 했는데, 호젓하면서도 뒤척거렸던 어젯밤이 이제야 떠오른다. 그래, 자고 온댔지. (중략) 커튼을 젖히니 밤새 세상이 온통 하얗게 변했다. 첫눈치고는 제법 내렸다.

「아내의 외박」 서두

친정 오라버니댁 김장을 도와주러 간 아내의 이야기다. 오랜만에 세 자매가 만나 친정에서 김장도 돕고 추억담도 늘어놓으니 얼마나 즐거웠겠는가? 밤새는 줄도 몰랐을 것이다. 그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엮어 놓았다.

가수는 목소리가, 화가는 색채감이 좋아야 하듯이 수필가는 문장을 다루는 능력이 뛰어나야 한다. 그래야 수준 높은 수필을 빚을 수 있는 법이다. 고정관념이란 굳은살을 떼어내면 자주 보던 사물들도 새롭게 보이는 법이다. 그것이 바로 수필에서의 낯설게 하기다.

아내가 딸네 집에 간 지 사흘째다. 나의 혼밥도 그 기간만큼 이어졌다. 반찬은 몇 가지 만들어놓고 갔으니 밥만 지으면 된다. 된장찌개는 총각시절 친구들과 여행할 때 익혀둔 솜씨가 요즘도 녹슬지 않았다. 아내의 도움 덕에 맛도 한 단계 높아져 이 요리만은 자신이 있다. 텔레비전 리모컨을 내 마음대로 조정하며 밥을 먹어도 간섭할 사람이 없다. 그야말로 룰루랄라 거칠 것 없는 자유로운 영혼이다. 혼밥도 이 정도면 그리 허접스러운 일은 아니지 않은가?

「혼밥은 무심해」 중에서

화자는 혼자 밥을 먹으면서 혼자 사시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떠올리게 된다. 푸성귀 가져가라는 어머니의 전화를 받고 달려가서 함께 식사를 하면 아들의 밥숟갈에 조기를 발라 얹어주시던 어머니의 추억을 회상한다. 가슴이 먹먹한 추억일 것이다.

잠자리에서 일어나면 벽 한가운데 걸린 액자와 마주한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직전에 손수 쓴 가훈과는 벌써 20년 넘는 아침대면이다. 자주 대하다보니 획 하나하나의 모양새까지도 눈에 익숙해졌다. 요즘은 그 액자 속의 가훈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내 생각이 많아진 것일까, 아버지가 돌아가신 나이에 이르러서일까?

「아버지의 서탁書卓」서두

‘진솔(眞率)’이라는 가훈은 화자의 가족들에게 바르게 살라는 일깨움을 준다. 화자는 이 가훈에 눈이 머물면 아버지가 떠오르고, 아버지를 생각하면 더불어 어머니가 연상된다. 이 가훈은 부모와 자신을 이어주는 소통의 통로다.

다른 땐 거들떠보지도 않던 잡초들이 요즘 들어 눈에 들어온다. 아파트 옆 공터의 잡초들이 슬금슬금 키를 키우고 몸집을 늘리더니 이젠 제법 풀밭의 구색을 갖추었다. 고추가 주인이면 고추밭이라 이름하고, 콩이 임자면 콩밭이라 불리듯, 풀들이 주인 행세를 하니 풀밭이라 해도 좋겠다. 도심都心이라는 특별한 위치 때문인지 이 풀밭이 예사로 보이지 않는다. 이는 나이가 들어가면서 생긴 변화 중 하나다.

「마지막 가을」서두

수필가 常川 문경근은 모든 일이 허투루 보이지 않는다. 그게 바로 수필가의 기본자세다. 산책길에서 만난 잡초에게서 정감을 느낀다. 화자가 만난 이 땅에는 곧 빌딩이 들어설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할머니의 셋방살이 고구마농장도 올해가 끝일 것이다. 길고양이들은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마지막 가을 앞에서 화자는 짠한 마음에 젖는다. 이 수필을 읽는 독자도 작가처럼 애잔한 마음을 갖게 되려니 싶다.


3. 수필가 常川 문경근의 앞날을 위하여


수필의 길은 끝없는 수도의 길이다. 그러니 자기의 글이 늘 미완성이라 생각하고 구도자의 자세로 겸허히 글을 빚는다면 언젠가는 자기가 기대하는 경지에 오르게 될 것이다. 그게 바로 내가 강조하는 불광불급不狂不及의 정신이라고 할 수 있다.

인생이란, 평생을 걸려 ‘나’라는 집을 짓는 과정과도 같다. 그 집이 완성되면 인간은 무덤으로 들어가고, 그 집은 작가의 묘비명이 될 것이다.

常川 문경근은 한국 수필문단의 큰 별이 될 가능성이 있는 인물이다. 이미 다듬어진 문재를 바탕으로 지금보다 더 치열하게 수필창작에 몰두하면 존경 받는 수필가로 우뚝 설 수 있을 것이다.

사진을 버린다고 추억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더구나 요즘은 스마트폰이 대중화되면서 사진을 더 많이 찍게 되고, 그 사진들은 인터넷에 저장된다. 추억은 쌓이고 쌓여 사진으로 탑이 된다.

여행은 서서 하는 독서이고, 독서는 앉아서 하는 여행이다. 常川 문경근은 더 많은 수필을 빚어서 잇달아 제3, 제4의 수필집을 선보여 주기 바란다. 수필은 인류에 대해서 쓰는 글이 아니라 한 인간에 대해서 쓰는 글임을 마음 깊이 새겨두기 바란다. 그래야 독자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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