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북은 한국수필의 메카

2019.08.14 17:52

김학 조회 수:53

전북은 한국수필문학의 메카

김학[수필가, 국제펜클럽한국본부 부이사장(전)]

 

 

1. 여는 말

농경사회시절 전북은 광대한 평야를 거느리고 있어서 어느 곳보다도 풍요로운 고장이었다. 성웅 이순신 장군이 “만약 호남이 없으면 나라도 없다.”고 한 말은 바로 우리 고장 전북을 염두에 두고 한 말일 것이다. 우순풍조(雨順風調)하면 풍년이 들었고, 풍년이 들면 시․서․화․창(詩․書․畵․唱)을 벗하며 삶을 즐길 줄 알았다. 지금까지도 전북인의 핏줄에는 예술적인 소양이 연면히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그러기에 누구나 전북을 예향이라고 일컫는다.

유일하게 전해오는 백제가요 ‘정읍사’의 무대가 바로 전북 정읍이고, 조선왕조 시대 가사문학의 효시인 ‘상춘곡’을 쓴 불우헌 정극인이 전북 태인 사람이며, 고대소설로서 지금까지도 사랑을 받는 춘향전과 흥부전도 전북 남원이 그 무대이고, 황진이와 쌍벽을 이룬다는 부안의 매창 그리고 진안의 김삼의당 시인도 전북출신이니 예로부터 전북이 문향인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근대에 와서는 이병기 시조시인을 비롯하여 신석정․서정주․김해강 시인, 소설가 채만식 ․ 최명희, 평론가 김환태 등 한 시대를 풍미하던 기라성 같은 문인들이 전북문단의 화려한 역사를 웅변으로 증명해주고 있다.

2. 태동기의 전북수필문단

1940년대를 거쳐 50년대에 접어들기까지 8․15광복과 6․25한국전쟁 같은 민족적 대 변혁을 겪은 우리 전북문단은 여전히 몇몇 시인과 소설가들의 주도 아래 수필은 겨우 명맥을 이어오고 있었다. 문인에게는 얼마나 많은 발표지면이 주어지느냐가 중요하다. 그러나 그 당시만 해도 서울의 문예지와 중앙 및 지방 일간신문 몇 가지를 제외하면 발표지면이 너무 모자랐다.

8․15광복부터 4․19혁명에 이르기까지 전북에서는 전라일보․전라민보․전주일보․태백신문․삼남일보․군산일보․호남일보․전북일보 등의 일간지가 부침을 거듭했고, 파랑새․전북공론․호남공론․삼남공론 등의 잡지가 있어서 전북문인들의 작품발표마당 구실을 톡톡히 해냈다.

이 무렵의 전북수필은 파종기나 다를 바 없었다. 이병기 ․ 신석정 ․ 김해강 ․ 김목랑 ․ 백양촌 ․ 장윤철 ․ 이일민 ․ 이철수 ․ 박목부 등의 시인들이 주업인 시를 쓰면서 틈틈이 수필을 발표했었다. 말 그대로 수필이 여기(餘技)의 문학이었던 것이다.

3. 셋방살이 시절의 전북수필문단

1960년대에 접어들면서 전북문단에도 파릇파릇 수필의 새싹이 돋아나기 시작했다. 이때에도 신석정․문선규․유승국이 동아일보의 서사여화(書舍餘話)에 필진으로 참여했고, 전북일보의 전라산천(全羅山川)을 오랫동안 집필했던 전영래가 돋보이던 시절이었다. 또 최승범 시인이 《수필ABC》란 수필이론서를 전국 최초로 선보여 수필의 발전 가능성을 제시하기도 했다. 이어 1966년에는 최승범 시인이 수필집 《반숙인간기》(半熟人間記)를 출간하여 시인이자 수필가로서 확고한 입지를 다졌다. 허소라 시인은 1965년에 전북 최초로 수필집 《흐느끼는 목마》를 출간하여 인기를 끌었고, 1969년에는 평론가 이보영이 《밤의 소묘》란 수필집을 펴내기도 했었다. 전북지역에서 처음으로 수필집이란 타이틀로 발간된 책이기에 의미가 깊다.

1969년에는 한국문인협회 전북지부가 창립되어 《全北文學》이란 종합문예지가 창간되면서 전북의 수필인구가 불어나기 시작했다. 수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셋방살이 시대가 열린 셈이다. 여기에 수필을 발표한 이들은 정덕룡 ․ 목경희 ․ 김종명 ․ 송영상 ․ 원영애 ․ 김기선 ․ 김영철 ․ 김옥생 ․ 한대석 ․ 김순영 ․ 김학 ․ 정주환 ․ 김동필 ․ 박양훈 ․ 박동수 ․ 이국자 ․ 최증자 ․ 김희선 ․ 김태자 ․ 김경희 등이다. 《전북문학》은 우리나라의 최장수동인지로서 지난 2011년에 이미 251호가 간행되었다. 1970년대까지만 해도 전북의 수필문학은 시와 소설의 주변문학처럼 여겨졌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전북에서는 중앙문단에 정식으로 등단한 전문수필가가 한 사람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가운데서도 정덕룡 ․ 김종명 같은 이들이 순수수필가로서 시나 소설 쪽을 기웃거리지 않고 전북수필의 골키퍼처럼 의연하게 수필집을 출간하면서 수필을 지켜주었다는 점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4.라디오 전파를 활용한 전북의 수필

대개의 문학행위는 활자매체에 의해 이루어진다. 문예지나 수필전문지, 일간신문 등 모두 활자매체의 치마폭을 벗어나지 못한 게 문학이다. 그러나 SBC서해방송이 1969년 10월 2일 군산에서 개국하면서 전북의 수필문단은 전파를 활용하게 되었다. 지역수필로서는 처음이 아니었을까 싶다. 전북에서는 수필의 활자매체와 전파매체 공존시대가 열린 것이다. SBC서해방송은 신설방송이어서 도민의 호기심과 관심이 컸고, 서울 TBC동양방송과 프로그램을 제휴하고 있어서 청취율 또한 대단히 높았다. 이 서해방송이 1972년 10월 프로그램을 개편하면서 수필 프로그램인 <밤의 旅路>를 신설하게 되었다. 이 프로그램의 PD인 김학은 혼자서 2년 반 동안 매일 원고지 8~10매 정도의 수필 한 편씩을 써서 감미로운 음악 세 곡을 곁들여 전파에 실어 보냈다. 지방에서는 처음의 시도였는데도 청취자의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다. 그때가 라디오 전성시대였던 까닭이다. 그러다가 1975년 4월부터는 집필자를 전북의 문인들로 넓혀나갔다. 시인 최승범 ․ 이기반 ․ 허소라 ․ 이병훈 ․ 정렬 ․ 고헌 ․ 박순호 ․ 강인한 ․ 이만철, 수필가 정주환 ․ 김동필 ․ 임동조 ․ 목경희 ․ 이범순 ․ 이귀호 ․ 정덕룡 ․ 김종명 등이 주로 참가했는데 그 반응이 좋아 집필자의 범위를 전국으로 넓혀나갔다. 대구의 정재호 시인과 청주의 이재인 수필가, 대전의 김영배 ․ 오완영 시인들이 필진으로 참여했다. 이 <밤의 여로>로 인해 김학이 같은 이름의 수필집 2권을 발간했고, 대전의 김영배가 1권, 정덕룡이 수필집《‘원숭이와 매니큐어》를 냈으니 전파매체가 수필문학 발전에 끼친 공이 크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1978년 12월, 서해방송 <밤의 여로> 필진들이 모여 망년회를 가졌다. 10여 명이 참석한 그 자리에서 누군가가 우리 고장에도 수필문학회를 창립하면 어떻겠느냐는 제의를 했었다. 모두 공감하고 일을 적극 추진하기로 의견을 모았다. 서해방송 <밤의 여로>가 전북수필문학회 창립의 단초를 마련한 셈이다.

5. 수필가들의 쉼터 ‘전북수필문학회’ 창립

문인들이 만나 술잔을 기울이면 전북수필문학회 창립 이야기가 도마 위에 오르곤 했다. 당시 수필을 사랑하는 전북문인들의 꿈이요 희망이 전북수필문학회 창립이었다. 마침내 1979년 여름 정덕룡 ․ 김학 ․ 정주환 세 사람이 주도하여 전영래 ․ 김동필 ․ 김희선 ‧ 송영상 ․ 한대석을 발기인으로 선정하고 정주환이 소집통보엽서를 발송하였다. 그해 8월 19일 전주 사리문다방에서 발기인 모임을 가졌고, 그해 9월 8일 전주 객사 뒤편 고려회관에서 창립총회를 갖고 회장에 정덕룡, 부회장에 김동필, 주간에 정주환을 추대하여 전북수필문학회가 정식으로 탄생되었다.

이제까지 셋방살이를 하면서 이 잡지 저 신문을 기웃거리던 전북의 수필가들이 내 집을 마련한 셈이다. 그 기쁨이 얼마나 컸겠는가? 같은 해 10월 25일에 발간된 동인지 《全北隨筆》 창간호에는 정덕룡 ․ 김학 ․ 김동필 ․ 정주환 등 25명의 회원이 작품 2편씩을 발표하였다. 전북수필문학회의 창립은 수필 불모지나 다름없던 전북이 수필을 신앙처럼 여기는 전문수필가를 양산해내는 텃밭이 되었다. 어느새 30여년의 세월이 흘렀다. 어느덧 2010년 후반기에 《전북수필》 71호를 펴내기에 이르렀다. 동인지 전북수필의 지령(誌齡)이 고희의 문턱을 넘기게 된 것이다.

《전북수필》이 창간한 이래 시도했던 몇 가지 특징적인 기획은 다른 수필전문지에서도 본받을 만하다. 첫째로는 초대석의 신설이었다. 매호마다 전국 각지의 유명 수필가들의 작품을 게재하여 안으로는 회원들이 절차탁마의 기회로 삼도록 하고, 밖으로는 전북수필에 대한 관심과 인지도를 높여 나갔다. 둘째로는 외국수필의 최근작을 번역하여 소개했다. 찰스 램이나 베이컨, 몽테뉴 등의 작품은 번역된 작품이 많아 손쉽게 구해서 읽을 수 있지만 외국 현대수필가의 신작은 읽을 기회가 없다. 중국, 일본, 영국, 독일, 프랑스의 현대수필의 흐름을 알 수 있어서 좋았다. 셋째로는 수필평론을 시도했다는 점이다. 2호에는 창간호에 대한 작품평을 싣는 식으로 수필평을 실었다. 동인들의 작품수준을 높이는 데 크게 도움이 되었고 그 뒤를 이어 수필전문지들도 이것을 받아들였다. 넷째로는 매호마다 동인 1명씩을 클로즈업시켜 대표작과 연보, 인간과 문학세계를 조명했다. 전북수필문학회 회원은 《전북수필》이 키워야 한다는 의미에서 시작한 기획이었다. 다섯째로는 <향토의 향기> 코너를 마련하여 전라북도 14개 시․군을 순례하면서 그 고장과 관련된 주제의 수필을 게재하였다. 여섯째로는 전북수필문학상을 제정하여 시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북수필문학상은 김학 회장이 1988년부터 양상렬 변호사의 상금지원으로 마련한 문학상이다. 지방 동인단체로서는 처음 마련한 상이어서 주목을 받았다. 제1회 전북수필문학상은 정덕룡과 김동필 회원이 공동수상을 하였고 2010년까지 해마다 2명씩의 회원이 전북수필문학상을 받았다.

전북수필문학회 역대 회장은 초대부터 3대까지는 정덕룡, 4대 김학, 5대 김환득, 6대 한대석, 7대 박동수, 8대 박성옥, 9대 박성숙, 10대 김순영, 11대 국중하, 12대 공숙자, 13대 선산곡, 14대 이제길, 15대 이남구가 맡고 있다. 현재 130여 명의 회원이 열정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6. 등단수필가의 양산시대

1980년대는 전북수필가들이 중앙문단에 얼굴을 내민 활기찬 시대였다. 1961년 김순영이 삼남일보 신춘문예에 수필 <외투>로 당선의 영예를 안았지만 지방신문이라는 한계를 뛰어넘을 수는 없었다. 그리하여 그녀는 1984년 종합문예지 한국문학에서 신인상에 당선하여 다시 등단의 길을 밟았다. 1970년대 전북의 수필가들 중에는 수필집을 출간한 이도 있었지만 중앙문단에서 등단을 시도한 사람은 없었다. 그러다가 1980년 金鶴이 처음으로 월간문학에서 수필 <전화번호>로 제31회 신인상을 수상하여 등단의 기쁨을 누렸다. 전북 최초로 중앙 수필문단에 진출한 셈이다. 이것이 기폭제가 되어 전북의 수필가들은 너도나도 등단의 길을 밟게 되었다. 이어서 그 다음해에는 박양훈, 김동필, 정주환이 잇따라 월간문학으로 등단하여 등단수필가의 선두대열에 합류하게 되었다. 이처럼 전북의 수필가들이 치열하게 창작활동을 펴고 등단의 길을 뚫을 수 있었던 것은 동인지 《전북수필》이 그들의 습작마당이 되어주었기 때문이다. 지령 71호에 오른 《전북수필》은 1년에 2권씩 펴내고 있다. 《전북수필》의 앞날은 무척 밝다. 19개 수필전문지와 2백여 개의 문예지에서 끊임없이 신인수필가들이 배출되니 전북수필의 인적 자원은 충분하다고 하겠다.

7. 전북지역의 수필환경

전북의 수필환경은 비교적 좋은 편이다. 전주에서 수필전문지 월간《수필과 비평》이 발행된다는 것은 전북의 수필가들에게는 큰 힘이다. 1992년 9월에 창간호를 낸 《수필과 비평》은 다양한 기획특집과 아이디어로 다른 수필전문지를 압도해 나가고 있다. 또 그 수필 전문지가 해마다 수필세미나를 열고 있어 전북의 수필가들로서는 새로운 수필이론을 충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또 전북에는 전북수필문학회보다 규모가 작은 수필동인회 네 개가 더 있다. 전북수비문학회(全北隨批文學會)와 행촌수필문학회(杏邨隨筆文學會), 익산수필문학회(益山隨筆文學會),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가 그것이다. 전북수비문학회는 1999년에 창립하여 동인지 《모악에세이》를 창간했다. 그러다 약간의 공백기를 거쳐 2010년에 《모악에세이》9호를 발간했다. 전북수비문학회는 수필과 비평으로 등단하여 전북에서 활동하는 동인들의 모임으로서 초대 회장은 국중하, 2대는 신진탁 그리고 3대 회장은 권중대, 4대 회장은 이연희, 5대 회장은 진원종이 맡고 있다. 현재 회원은 50여 명이다.

행촌수필문학회는 2002년 5월 17일 창립한 수필동인회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 수필창작과정을 수료했거나 재학 중인 사람들로 구성된 동인회이기 때문에 다른 어느 동인회보다 결속력이 강하다. 현재 동문수학한 1500여 명의 회원이 가입하여 활동하고 있다. 1년에 동인지를 2권씩 발간하고 있고, 봄과 가을에 문학기행을 다니며 견문을 넓히고, 동인 선후배의 정을 두텁게 쌓기도 한다. 해마다 12월에는 <행촌수필문학상 시상 및 송년 수필의 밤>을 갖고 수필문학의 한 해를 마무리하기도 한다. 이들은 2011년 6월에 동인지 《행촌수필》19호를 선보였다. 이《행촌수필》은 단순히 회원들의 수필작품만을 모아 출간하는 식의 동인지를 만들지 않고 독자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다양한 기획특집을 선보여 주목을 끈다. 이 행촌수필문학회의 초대 2대 회장은 이종택, 3대 회장은 최준강, 4대 회장은 김정길, 5대 전반기 회장 고재흠에 이어 후반기회장은 박귀덕 수필가가 맡고 있다. 역사가 짧지만 이 행촌수필문학회는 벌써 이종택, 조정식, 안세호, 장병선, 이윤상, 김정길 등 51명의 회원들이 수필집을 상재하였고, 50여 명의 회원들이 외부에서 문학상을 받았으며, 김재희 등 3명의 회원이 전북일보 등 신춘문예 수필부문에서 당선하였다. 행촌수필문학회 150여 회원들은 활발한 창작활동을 펴고 있어 전국적으로도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익산수필문학회는 2002년에 창립되어 2010년에 《익산수필》7호를 발간했다. 익산에서 활동하는 수필가 18명이 만든 동인회로서 2004년에는 신경자 회원이, 2008년에는 이양선 회원이 전북도민일보 신춘문예 수필부문에 당선하여 《익산수필》의 기량을 한껏 뽐내기도 하였다. 1,2대 회장은 김화택, 3대 회장은 장병선, 4대 회장은 이택회, 5대 회장은 곽경숙 수필가가 맡고 있다.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는 2010년 12월에 동인지 《안골은빛수필》3호를 출간했다. 초대 회장은 윤석조 수필가, 2대 회장은 김상권 수필가, 지금 3대 회장은 은종삼 수필가가 맡고 있다. 전주안골은빛수필문학회는 2008년 1월부터 전주안골노인복지관에 수필창작반이 개설되면서 수필공부를 하게 된 분들이 결속하여 만든 수필동인이다. 60대 이상의 어르신들인 이 동인들은 젊은이들 못지않게 창작열기가 뜨겁다. 30여 명의 회원 중 절반 이상이 수필가로 등단하였고 윤석조 회원과 김길남 회원은 3권의 수필집을 출간했고, 김상권 회원은 1권의 수필집을 출간했으며, 서상옥 회원은 시집 2권과 수필집 1권을 출간하기도 했다. 연부역강의 노 글쟁이들이어서 기대가 크다.

전북의 수필문단을 소개하면서 영호남수필문학회를 빼놓을 수 없다. 이 영호남수필문학회는 1990년 전북의 한대석, 부산의 한영자가 주도적으로 두 지역의 수필가들과 더불어 출발했다. 그러다가 반응이 좋아서 참가지역을 점차 확대하였는데 지금은 부산과 전북 외에 대구와 경북, 광주, 울산, 전남 등 6개 지역의 수필가 120여 명이 참여하는 큰 문학단체로 발전하였다. 초창기 지역별 회장은 전주의 한대석, 부산의 한영자, 광주의 김구봉, 대구의 서상은, 전남의 김학래, 울산의 김철인 수필가들이 맡아서 수고를 했다. 6개 지역이 차례대로 돌면서 해당지역에서 출간한 600쪽 분량의 동인지 《영호남수필》출판기념회를 비롯한 1박2일의 수필축제를 갖는다. 2004년도에는 전주에서 그 행사를 가졌는데 2010년 10월에도 또 전주관광호텔에서 모임을 갖고 제20호《영호남수필문학》출판기념회 및 영호남수필문학상 시상식을 가졌다.

이 영호남수필문학상은 1997년에 처음으로 시상되어 연례행사로 정착되었다. 1997년 부산에서 열린 시상식에서 제1회 영호남수필문학상 대상은 전북의 김학, 우수상은 김재순, 공로상은 한대석이 받았다. 2001년 제11회 울산대회에서 각 지역회장의 임기를 6년으로 통일시켰다. 그 이유는 1년에 한 곳씩 순차적으로 행사를 갖게 되니 회장의 임기가 6년이 되어야 전국규모의 행사를 한 번씩 치를 수 있기 때문이다. 영호남수필문학회 전북지역은 한대석이 창립회장이었고, 박영희가 2대회장을 맡아 2004년도에 전주대회를 성대하게 치른 뒤 바톤을 넘겼고, 3대 회장은 이남구 수필가 지금 4대회장은 김정길 수필가가 맡고 있다. 이 모임에 동참하는 전북의 수필가는 80여명 정도가 된다.

김학 수필가가 2001년 8월부터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 수필창작과정을 개설하여 수필만을 전문적으로 가르치게 된 것은 전북수필문단의 활성화에 획기적인 쾌거였다. 첫 학기 때 28명으로 시작한 것이 이제는 기초반, 중급반, 고급반, 야간반 등 4개 과정에 95명의 수강생으로 크게 불었다. 수필을 사랑하는 인구가 전북에는 그만큼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전북 외에도 경기도 용인, 충청북도 청주, 증평, 충남 공주, 부여, 대전, 광주, 여수 등지에서까지 1주일에 한 번씩 수강하러 전주까지 찾아오는 열성적인 수강생이 있는 것을 보면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밖에도 김학이 2008년 1월부터 전주안골노인복지관에서 수필창작반을 개설하여 30여 명의 수강생들이 열심히 공부를 하고 있다. 그중 9명의 회원이 등단을 하였다. 김길남 회원은 처녀 수필집 《논두렁 밭두렁》에 이어 제2수필집《계영배를 곁에 두고》를 출간하였고 올해에도 제3수필집을 출간할 예장이다. 윤석조 회원은 제2수필집 《커플반지》, 제3수필집《세월이 그린 무지개》를 출간하였다. 또 김상권 회원은 첫 수필집 《다들 어디로 갔을까 》를 출간하여 지명도를 높였다. 서상옥 회원은 두 권의 시집을 낸데 이어 첫수필집 《그림보다 의미 있는 이야기》를 출간하였다. 이들은 2008년부터 해마다《안골은빛수필》이란 동인지를 펴내면서 창작품을 선보이고 있다. 그밖에도 2001년 2월부터 전주꽃밭정이노인복지관에 수필창작반을 개설하여 30여 명의 어르신들이 수필공부에 열중하고 있다. 김경희 수필가는 전주덕진노인복지관에서 2009년부터 수필창작반을 개설하여 20여 명의 수강생들에게 수필공부를 시키고 있다. 그들은 2009년 12월에 수강생들의 시와 수필을 모아《덕진문학》을 창간하기도 했다. 이들이 꾸준히 공부하여 등단대열에 합류하게 되면 전북수필문단은 물론 한국의 수필문단도 더욱 살찌게 되려니 싶다. 전북이 한국수필문학의 메카가 될 것이라는 우리의 꿈은 꼭 이루어지리라 믿는다.

8. 닫는 말

내 집을 마련한 전북의 수필가들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쟁쟁한 수필가들이 줄지어 중앙문단에 등단하여 전북문단의 주도세력으로 등장하였다. 이러한 현상은 해가 갈수록 더 강화되고 있다. 찬란한 전북의 수필시대가 열린 것이다. 이는 바로 전북수필문학회의 동인지 《전북수필》의 창간에서 비롯되었다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또한 《전북수필》이 전북문단에 끼친 공적도 높게 평가해야 할 것이다. 또 수필가들의 문단활동이 활발해지면서 수필가 김학이 수필가로서는 처음으로 전북문인협회 회장과 전북펜클럽 회장에 오를 수 있었던 것도 전북에서 수필의 위상이 그만큼 높아졌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또 지역에서 문학 활동을 한 수필가 김학이 2005년도 2월 국제펜클럽한국본부 이사장 선거에서 부이사장으로 진출하게 된 것은 펜클럽 역사상 초유의 일이다. 앞으로 수필가들이 지역문단 나아가서는 한국문단의 지도자로 더 많이 진출할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지금까지 전북수필문단의 개황을 살펴보았다. 주마간산 격이어서 아쉽다. 그러나 자상하게 짚어보려면 너무도 자료가 방대하여 한정된 지면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워 이 정도로 마무리 하며 앞으로 더 자료를 보완해 나갈 것을 약속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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