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직의 요람, 관사

2019.08.15 06:39

김삼남 조회 수:13

공직의 요람搖籃,  관사官舍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 삼 남

 

 

 

 

 군산에서 3년간 근무하면서 관사 아닌 여관생활을 하다가 인사발령에 따라 간단한 이삿짐을  푼 곳이 고창 경무과장 관사였다. 관사는 판소리를 집대성한 桐里 申在孝 선생의 고택이었다. 언제부터 어떤 인연으로 관사가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공직 생활중 처음 맞는 관사였다. 빨갛게 녹슨 함석지붕 4칸 건물은 경찰서와 경계로 담장 중간 샛문으로 출퇴근했다.  

 

 마당 가운데 두레박샘물이 있고, 연탄화로에 밥을 짓고 넓은 텃밭에는 채소를 가꾸어 주말마다 전주 가족이 와서 채취했다. 모양성牟陽城이 관사 바로 위에 있어서 아침마다 성곽을 돌고 서출동류 약수를 마시고 주전자에 받아 오곤 했었다. 지금 관사는 고택의 원형으로 복원되어 문화재로 보호하고 옛 경찰서와 서장 관사 자리에는 판소리 국악박물관이 건립되어 관광객을 맞는다.

 

 고택 관사에서 1년 반을 살면서 빙모님 회갑잔치를 베풀었고, 나는 판소리 문화생 수련장이었던 뒷방에서 승진시험 공부를 하여 경정으로 승진했었다. 그곳에서 관사 없는 익산서 경무과장으로 영전했었다. 고창 관사생활은 후덕한 인심 때문에 고향집처럼 살 수 있았다. 고창을 떠나 이곳저곳 옮겨 다니며 관사 없이 8년을 지나 초임 무주서장 발령으로 다시 관사생활을 시작하여 공직 35년 중 10년간 관사생활을 했으니 관사는 공직생활의 요람이었다. 특히 무주는 정년퇴임시까지 두 차례 2년반 관사생활을 하며 총경으로 승진했고, 박사학위 논문이 통과되었던 곳이다

 

 퇴직후 20여 년 만에 옛 무주관사를 둘러보게 되어 옛고향 집을 방문하는 것처럼 만감이 교차했다. 관사를 찾으려고 낯익은 옛 골목을 몇바퀴 돌아도 학교나 교회, 등기소 건물은 옛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는데 관사는 보이지 않고 있어야 할 관사 자리에 낯선 아파트 2동이 서 있었다. 아파트에 밀린 관사는 다른 곳의 아파트로 이사했다 한다. 옛 경찰서도 옮겨 가고 그 자리에 공영주차장이 낯설게 서 있을 뿐 엣 청사 담 모퉁이에 서있는 은행나무 2그루가 옛날을 회상케 했다.

 

 없어진 옛 관사는 시내를 굽어보는 자리에 있어 멀리 보이는 적상산이 가을이면 빨간 단풍옷으로 갈아 입고 어서 오라 손짓했고, 뒤로 향로산 등산길 따라 약수터로 내려오면서 사철 흐르는 약수를 마셨다. 경찰서가 가까이 있어 이웃처럼 벚꽃길을 걸어서 다녔다.

 

 곳곳에 있던 많은 관사들은 세월따라 주인도 수없이 바뀌고 모습도 변했거나 사라져 버렸지만, 관사생활에 얽힌 추억들은 더욱 아름다워 잊혀저 가는 전설이 되었다. 무주에서 이사했던 진안 관사만이 유일하게 옛모습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옛날 화단에 심었던 오래된 더덕은 자손을 거느리고 지금도 짙은 향기를 풍기는지, 식구들과 게이트 볼을 첬던 마당의 푸른 잔디는 여전한지 보고 싶다.

 

 전주관사는 문화촌 동편에 있는 2층 양옥이었다. 관사는 없어지고 3층 빌라 두 동이 차지하고 관사는 아파트로 옮겼다. 옛날 관사는 문화촌 살 때 같은 마을이어서 출근길이면 s서장님이 꼭 차를 멈추어 같이 출근했었는데 이제는 관사의 주인이 되어 감회가 깊었다.

 

 그뒤 전주와 정읍관사의 주인이 맞바뀌는 인사로 정읍관사로 이사했다. 정읍관사는 시내 중심지 중앙동 일식건물이었다. 현관과 연결된 긴 복도와 다다미 방이 개조된 응접실과 안방과 아름다운 정원, 넓은 후원 공터가 있어 채소를 가꾸며 닭과 칠면조를 키웠다. 지금 그 관사는 주인 없이 폐가처럼 방치되어 있고, 관사는 아파트로 옮겼다. 철제 대문에 손수 제작 부착한 신문함이 지금도 을씨년스럽게 남아 있어 옛날이 엊그제 같다.

 

 1년반을 살았던 익산 모현동 관사는 신축된 깨끗한 건물이다. 아침마다 근처에 있는 배산으로 등산을 하고, 밤늦은 퇴근길에 들렸던 포장 마차는 없어지고, 조용하던 주변은 번화가가 되었다. 새로 지은 경찰서는 관사 근처로 왔지만 관사 주인은 아파트로 이사했다.

 

 관사는 공직생활의 편의와 기관장 품위 유지를 위한 국가나 공공단체에서 제공하는 사택이다. 입주 퇴거가 자유롭지 못하지만 짧은 기간 고향 아닌 타향의 정서와 인연으로 마련된 공직자의 요람이다. 때로는 지역 분위기에 맞춰 기관장들의 사랑방이 되고, 주민대화나 반상회회의장이 될 수도 있다. 주민들은 다방면으로 관사주인을 평가한다.

 

 오늘날 주거 개념이 편의 위주 아파트화 하고 있어 관사 입주자들도 아파트를 선호한다 그래서인지 내가 살았던 7개 관사중 진안관사만 유일하게 보존되어 주인이 살고 있고, 다른 관사들은 아파트로 이사했거나 폐기되었다. 요즘 청사나 관사가 너무 사치 호화스러워 말썽이 있으나 업무 수행과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공간과 시설이면 족하다. 관사가 아파트보다 낡고 불편하고 고독한 단독주택일지라도 수리하며 사랑해야 한다. 이임식 때는 업무와 함께 관사도 실체대로 인계인수해야 한다. 주인 잃은 관사들은 옛 주인을 그리워하며 나를 버리지 말라고 하소연하는 성싶다. 두 차례의 무주관사 생활은 20여 년이 지났어도 엊그제처럼 행복한 추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옛날 살았던 관사들은 공직의 요람으로 지금도 고향처럼 사랑한다.

                                                                         (2019. 8.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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