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 돌돌이

2019.09.08 06:25

이진숙 조회 수:3

우리 집 돌돌이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나는 개나 고양이 같은 짐승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 요즈음같은 더위에 털이 많은 강아지를 안고 거리를 다니는 사람을 보면 속으로 ‘더워 죽겠는데 무슨 꼴이람?’ 하며 혀를 끌끌 차고, 한 번 더 돌아보게 된다. 또 같은 침대에서 뒹굴거나 한 이불 속에 들어 있는 모습을 TV에서 보면 나도 모르게 얼굴을 찌푸리기 일쑤였다.

 오래 전 이곳에 이사를 와 살면서 어쩔 수 없이 개를 두 마리나 마당에서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그 녀석들과 한 번이라도 산책을 해봤다든지, 가까이 다가가서 머리를 쓰다듬어 준다든지, 하는 일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었다. 오로지 그 녀석들은 우리 집을 잘 지켜주는 충직한 지킴이일 뿐이었다. 그런데 ‘돌돌이’ 이 녀석만은 별일이다.

 ‘돌돌이’가 우리 집에 온 내력은 이렇다. 오래 전부터 키우던 암캐 ‘복순이’가 두 번째 임신을 하여 새끼를 낳다가 그만 저 세상으로 간 뒤, 평소 가깝게 지내던 친구가 그 소식을 듣고 시골집에서 데려다 준 녀석이었다. 삽살개의 피가 조금 섞여 있다는 녀석은 태어난 지 3개월 정도 된, 마치 귀여운 강아지 인형 같은 모습으로 우리 집에 왔다. 가까운 친구의 마음 씀씀이도 고마웠지만, 어떻게 된 일인지 녀석을 보는 순간 가슴이 찡하게 울리는 느낌을 받았다. 첫날밤에 어미가 그리운지 낑낑 대는 소리에 잠을 설치고, 이른 아침에 나가 그 조그만 녀석에게 목줄을 채워 동네 산책을 나갔다. 얼마나 좋아라 방방 뛰는지 어리디 어린 녀석에게 내가 매달려가는 꼴이 되었다. 뛰어 가다가도 영역 표시하는 것을 어떻게 알았는지 여기 저기 찔끔 찔끔 자국을 남겼다.

 서울에 있는 손자들에게 스마트 폰으로 ‘돌돌이’의 동영상을 찍어 보내니, 보고 싶다고 엄마를 졸라 주말에 ‘돌돌이’를 보러 오는 일도 여러 차례 있었다. 지금은 아빠의 나라인 핀란드에서 살고 있는데, 막내 ‘루나’가 돌돌이가 보고 싶어 전주 집에 가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단다.

 아침에 내가 현관문을 열고 마당에 내려서면 무슨 장대높이뛰기 선수라도 된 양 한 길씩이나 뛰며 좋아한다. 내 손에 목줄이라도 들려 있는 날에는 그 뛰는 모습이라니, 정말 혼자 보기 아까운 묘기를 다 부린다. 같이 대문을 열고 나가면 벌써 영역 표시에 들어가듯 대문 옆에도 찔끔, 오른 쪽으로 돌아서 가는 길에도 찔끔, 참으로 우스운 모습이다.

 시간이 지날수록 제법 몸이 불어나고 목소리도 커지면서 강아지 티를 완전히 벗어났다. 해마다 털갈이 때가 되면 털이 짧은 개들은 새로운 털이 나오면서 묵은 털은 빠지고 말끔하게 새 모습으로 단장을 하는데, ‘돌돌이’ 녀석은 그것이 아니었다. 털이 길고 약간 곱실하기에 저절로 털갈이가 되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 것에 대한 지식이 전혀 없는 나는 그저 예뻐하며 산책만 다녔을 뿐 털갈이를 어떻게 도와야 되는지 참으로 난감했다. 그러다 보니 털이 빠지지 않고 새로 난 털과 겹치고 겹쳐서 등에는 마치 거북이 등처럼 딱딱한 털 뭉치가 넓게 퍼져 버렸다. 보기에도 퍽 두껍고 무겁게 보였다. 나로서는 그저 안타까운 마음뿐이었다.

 

 지난겨울 오랜만에 집에 다니러 온 아들 내외가 ‘돌돌이’의 그런 모습을 보더니 “어머니, 동물학대로 교도소에 갈지도 몰라요!“라며 겁을 주었다. 그러더니 다짜고짜 그 녀석을 차에 태우고 동물 병원으로 갔다. 의사가 보더니 이런 일은 처음이라며 한 번 해 보자고 하더니, 바리캉(bariquant)으로 사정없이 밀어 맨살이 나올 정도로 깎아 버렸다. 겨울이라 날은 추운데 걱정이었다. 녀석도 잔뜩 겁을 먹은 듯 기가 죽어 아무소리도 못하고 조용했다. 피부에 바르는 약, 귀에 넣는 약을 받아 왔다. 다행히 보일러실에서 따뜻한 겨울을 무사히 보낼 수가 있었다. ‘돌돌이’에게 많이 미안했다. 예뻐할 줄 만 알았지 관리를 전혀 해 주지 않았으니 말 못하는 녀석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지난 봄 애완동물 물품을 파는 곳에서 빗과 가위를 샀다. 날마다 내가 빗을 흔들며 녀석에게 가면 얼마나 좋아하는지, 가만히 내 앞에 앉아 스르르 눈을 감고 빗질을 해 주길 기다린다. 그리고 가위로 예쁘게 깎진 못해도 정성을 다하여 여기 저기 깎아 주니 아주 좋아한다. 처음 가위를 가지고 털을 깎을 때는 내가 더 긴장하여 등에 땀이 주르륵 흘러내리기도 했다. 그러나 여러 차례 해보니 ‘돌돌이’도 나를 믿는 듯 편안하게 나에게 몸을 맡기고 있다. 비록 나와 말을 하지는 못하지만 이제는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을 이해하는 것 같아 예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더욱 더 생긴다.

 아마도 ‘돌돌이’와 나는 전생에 무슨 특별한 인연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동안 여러 마리의 개를 키웠지만 이렇게 예쁘고 사랑스런 마음이 들기는 처음이다. 우리 집에서 오래오래 살면서 집도 잘 지켜주고 나의 말벗도 되어 주기를 바라며, ‘돌돌이’를 나에게 보내 준 친구에게 새삼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2019. 9.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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