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 내 서재

2019.09.25 12:39

신팔복 조회 수:5

작은 내 서재

전주 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신팔복

 

 

 

 

 

  내 어린 시절은 책이 귀했다. 농사로 살아가는 두메산골이라 이웃집에도 책이 없었다. 할머니들이 모여 삼을 삼으며 재담이 좋으신 분이 구전돼오던 이야기를 꺼내면 호기심이 발동하여 귀를 쫑긋 세우고 들었다. 장화홍련전을 들으며 몸이 오싹했고, 콩쥐팥쥐 이야기는 희락을 느껴 ‘그러면 그렇지!’ 하고 긴장했던 숨을 후련하게 내쉬었다. 듣고 또 들어도 흥미진진하고 감명 깊었던 이야기는 꼭 이웃 동네에서 일어났던 일 같아 오래도록 머리에 남았다.

 

  학교에 다닐 때쯤 이웃집에 있는 장끼전을 빌려다 읽으며 키득거렸다. 교과서도 물려받아 공부했던 시절이라 동화책을 산다는 게 쉬운 일은 아니었다. 중학생이 되어 진안읍내 사거리 서점에 들러보니 책이 꽉 차 있어 눈이 휘둥그레졌다. 오랜 기간 조금씩 용돈을 모아 처음으로 ‘타잔’을 사서 읽었고, 다음엔 ‘보물섬’도 사서 읽었다. 그때부터 서재가 무척 부러웠다.

 

  교직 생활을 하면서 과학 전문 서적을 비롯하여 단편소설, 문학 전집, 백과사전 등을 사게 되었지만, 부모님을 모시고 살 때라서 여유 있는 방이 없었다. 아내와 함께 쓰는 방은 세간 살림과 아이들 육아용품으로 공간이 없었다. 많지 않은 책이었지만 툇마루에 보관할 수밖에 없었다.

 

  자녀들을 출가시키고 나서 빈방이 생겼다. 책장을 사고 책을 정리하여 자연스럽게 작은 내 서재가 만들어졌다. 컴퓨터를 놓고 인터넷도 즐기며 글도 쓰고 독서도 하는 장소로 오로지 내 전용공간이 됐다. 전북대학교 평생교육원에서 수필공부를 하게 되면서부터 많은 문우를 만나게 되었다. 그들이 발간한 좋은 책을 보내주면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 읽고 책꽂이에 보관하여 그런대로 서재의 흉내를 낼 수 있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조용히 사색할 수 있는 장소가 생겨서 매우 좋다.

 

  나는 책을 모아 두었지 읽는 것에는 등한히 했다. 글을 쓰려면 풍부한 식견이 있어야 하는데, 주제도 모르면서 글을 쓰려고 했으니 엉터리였다. 마치 맥도 짚지 못하면서 침부터 꽂는 돌팔이와 같았다. 몸살을 앓는 것처럼 머릿속만 어지럽고 글은 한 자도 나가지 않았다. 책상 앞에서 책을 읽을 때마다 생각을 키워보지만 지금도 쉬운 일은 아니다. 부지런히 책을 읽어야겠다는 생각이다.

 

  요즘은 장서용 서재는 필요 없을 정도다. 여기저기 도서관이 있고 복지관도 많아져 그를 대신하고 있다. 전문 서적을 비롯해 문학, 철학, 종교, 과학, 경제, 사회, 복지 등 다양한 책들이 엄청나게 보관되어 있다. 맘만 먹으면 구애받지 않고 독서를 할 수 있다. 나는 요즘 가까운 인후도서관에 회원으로 가입하고 가끔 다니고 있다. 읽고 싶은 책을 빌려오기도 하고 너른 공간에서 읽기도 한다. 시설이 쾌적하고 조용해 책 읽기에 아주 좋다. 여름엔 더위를 피할 수 있고, 추운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어 몸을 녹일 수 있어서 일거양득이다.

 

  책에는 인생의 길이 있고 정보가 있다. 험난한 인생 항로에 등댓불이 되어 밝혀준다. 좋은 책은 말이 없어도 서로 통하는 친구처럼 시간과 공간을 넘어 작가와 대화할 수 있다. 독자는 감명 깊은 문장이나 새로운 것들을 깨닫게 되면 고개가 저절로 끄덕여진다. 은연중에 그의 고매한 인품을 닮고 싶어진다. 그게 독서의 매력일 거다.

 

  내 서재는 보잘것없는 작은 공간이지만, 책을 읽는 순간만은 세상의 번거로움을 잊고 마음이 평화롭고 아늑하고 즐겁다. 바쁘다는 핑계로 쌓아두었던 책들의 먼지를 이제부터라도 털어줘야겠다. 세상의 깊이를 깨닫게 해주고, 마음의 양식이 되는 독서는 누구에게나 평생 필요하다. 젊었을 때 날밤을 새워 책을 읽지 못한 것이 눈도 침침해지는 지금에 와서야 때늦은 후회로 다가온다.

                                                                                  (201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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