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을 주지 않는 독도

2019.09.26 05:59

윤철 조회 수:6

[금요수필] 곁을 주지 않는 독도

윤 철


윤철윤철

북위 37도 14분 22초, 동경 131도 52분 08초. 울릉도에서 동남쪽으로 87.4㎞ 떨어져 있는 외로운 섬, 한반도에서 가장 먼저 아침을 맞이하는 섬, 삼국시대부터 우리 땅이었던 독도는 그곳에 있다. 마침내 독도가 눈에 보이더니 점점 또렷이 다가왔다.

출발할 때부터 흐렸던 날씨가 기어코 비를 뿌렸다. 다행이 세찬 비는 아니라 다행이었지만 바람은 갈수록 심해졌다. 뱃길이 얼마나 험한지 매끄러운 물길이 아니라 돌 튀는 소리가 요란한 자갈길이었다. 평소 같으면 울릉도에서 한 시간 반의 뱃길을 무려 세 시간에 걸쳐왔다.

승객 여러 명이 바닥에 드러누워 멀미를 하고 있었다. 구토 소리가 여기저기에서 들려도 누구 하나 탓하는 사람이 없다. 일행 중 K는 계단 벽에 기대앉아 만사가 귀찮은 모습으로 연신 식은땀만 훔쳐내고 있었다. 나는 다음에야 어찌 됐건 멀미는 피하고 보자는 마음으로 멀미약을 두 병이나 마신 덕분인지 신기하게도 배 멀미를 하지 않았다.

선장이 선내 방송을 했다. 최대한 접안을 해보겠지만 만약 안 되면 독도 주변만 한 바퀴 돌 아 오는 관광일 수밖에 없다고 했다. ‘어떻게 온 길인데….’ 이렇게 허무한 일이 또 있을까? 접안을 시도 중인지 배가 좌우로 더 심하게 흔들렸다. 독도는 눈앞에서 흔들거리고, 하늘을 찌르던 기대는 실망에서 포기로 이어질 무렵 선장이 ‘접안을 했다’ 다시 안내방송을 했다.

독도는 187,554㎡ 면적에 불과한 작은 돌섬으로 사람이 살기 어려운 환경이다. 그런데 왜 일본은 이렇게 작은 섬에 집착할까? 독도는 해양 자원과 미래의 해저 자원이 풍부한 보물창고 이기 때문이다. 이것이 욕심나서 1905년에 시마네현 고시로 대나무 한그루 없는 돌섬에 다께시마竹島라는 이름을 붙여서 자기네 국토에 편입시켰다. 처음엔 해저 자원에 대한 욕심뿐이었겠지만 이제는 군국주의 식민통치시대의 야욕을 재현해보고 싶어 자기네 땅이라 우기고 있다.

나는 국정농단사태 때 가을부터 겨우내 벌였던 촛불집회에 어깨가 아프다는 핑계로 한 번도 참석하지 못한 부끄러움이 지금도 남아있다. 그런데 이번 일본의 경제침략에 맞서 일본산 불매운동에는 모든 것을 작파하고 열심히 참여하고 있다. 그러면서 잠시 돌아보니 정연한 논리도 없이 단지 “독도는 우리 땅”이라고 큰소리만 치고 있는 내가 보였다. 그래서 무조건 독도를 다녀와야겠다고 마음을 먹고 참여한 것이다.

드디어 독도에 첫발을 내디뎠다. 사진으로만 보았던 독도가 막상 눈앞에서 나를 기다리며 두 팔을 벌리고 품을 열어주니 가슴이 쿵쿵거리며 콧날이 찡해졌다. 온몸이 고압 전류가 흐르듯 짜르르하며 나도 모르게 눈물을 훔쳤다. 바다까지 잿빛 하늘이 온통 회색으로 물들인 탓인지 하늘도, 바다도, 섬도 모두 재색이다. 저물녘의 독도는 잿빛이라서 더 독도다웠다.

독도는 아무에게나 곁을 주지 않는 위엄이 있다. 우리 국민이라도 독도를 사랑하고 아끼며 지키려는 사람에게만 품을 내어준다. 하물며 독도를 사랑해서가 아니고 이용만 하려는 욕심쟁이 일본인에게 곁을 내주겠는가. 일본사람은 여권 없어서 올 수 없는 곳에 나는 달랑 배표 한 장 들고 얼마든지 올 수 있으니 독도는 우리가 실제 지배하고 있는 우리 땅이 분명하다.

비에 젖은 독도에서 따스한 입김이 피어오른다. 독도가 살아있다는 증거다. 독도에 뿌려진 의용수비대의 뜨거운 피가 골마다 스며들어 아직도 식지 않고 흐르고 있음이 분명하다. “우리 땅을 한 치라도 내어주기 보다는 차라리 죽자.”고 죽음으로 사수한 그들의 절규가 오늘도 살아서 심장을 쿵쿵거리는 소리를 듣고 돌아오는 길은 뱃길도 편안했다.

 

* 윤철 수필가는 김제 출생으로 진안군 부군수를 역임하는 등 36년의 공무원 생활에 마침표를 찍고 수필전문지 ‘에세이스트’로 등단하여 현재 수필가로서 전북수필문학회 회장으로 활동하며 제2의 인생을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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