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아중호수

2019.09.26 15:25

임두환 조회 수:45

전주아중호수

전주안골노인복지관 수필창작반 임두환

 

 

 

 

 

 높고 푸른 하늘이다. 어느덧 무덥던 여름도 꼬리를 감추고 황금들녘에는 선들바람이 일렁인다. 산책길을 나서는데 반팔을 입어야 할지 긴소매를 입어야할지 어정쩡하다. 눈을 들어 보니 저 멀리 산등성이에는 가을이 깊어지는 듯 담갈색으로 물들고 있다.

 우리 집에서 아중천을 따라 30분쯤 걸으면 ‘아중호수’에 다다른다. 아중호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아중저수지라 불렀다. 이곳은 아중초등학교와 호동골에 위치한 전주시 생태공원으로 시민들이 몸과 마음을 달래기에 아주 좋은 곳이다. 전주시에서는 지난 2009년부터 아중호수에 나무 데크노(techno) 순환산책로를 조성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중역에서 남원방면으로 0.8km의 수변순환산책로가 끊겨있어서 들어갔던 길로 되돌아 나와야 했다. 2018년 수변순환산책로가 새롭게 단장되면서 2.4km 한 바퀴를 돌아볼 수 있게 됐으니 얼마나 좋은가?

 아중호수는 어디에 비길 수 없는 아름다운 생태공원이다. 수변산책로를 걷다보면 중간쯤 넓은 공간의 쉼터가 나온다. 이곳에는 ‘백조 한 쌍’의 조형물과 편의시설이 잘 꾸며져 있다. 좀 더 발걸음을 옮기면 호수상류쯤에 ‘아기를 품고 있는 어머니상'의 조형물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 들를 때마다 따뜻한 모성애를 느낀다. 자연경관을 조망(眺望)하며 호수 한 바퀴를 돌아 나오면 더없이 상쾌하다. 한마디로 지루하지 않다. 일상에서 잠시 휴식이 필요할 때면 나는 가끔 이곳을 찾는다.

 아중호수는 오전 10시가 넘어서면 사람들로 북적인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나온 부부, 데이트를 즐기는 청춘남녀, 연로하신 어르신들, 휠체어를 타고나온 어르신, 훌치기낚시를 하려는 젊은이들까지 헤아릴 수가 없다. 수변쉼터에 앉아 드높은 하늘을 바라본다. 상큼하게 높아진 파란하늘의 뭉게구름에는 가을이 실려 있고, 저 멀리 왜망실마을 묵방산에는 가을이 깊어지고 있다.

 아중호수라면 나에게는 그냥 호수가 아니다. 한마디로 낭만이 깃든 곳이다. 2018년 가을이었다. 집에서 빈둥대기 싫어서 덕진구청 소속으로 ‘산불진화대원’으로 근무를 했었다. 11월 1일부터 12월 15일까지였다. 공교롭게도 배치 받은 곳이 아중호수상류지역이었다. 주변에는 오색단풍으로 수놓아졌고, 수변산책로에는 많은 사람들이 찾아들었다. 자연과 함께 어울리다보면 하루해가 어떻게 지나갔는지 지루함을 몰랐다.

 여태껏 아중호수를 돌아보았다. 이제는 호수주변의 음식점을 둘러볼 차례다. 호수제방에서부터 음식점을 소개하면 태공산장, 강변산장, 아중산장, 상류집이 있다. 모두들 자기네 음식이 최고라고 자랑이지만, 음식 맛으로 따지면 도토리 키 재기다. 어느 곳을 가든지 새우탕, 메기탕, 빠가탕, 참게탕 등 민물매운탕 전문이다.

 서울에 사는 병창(秉昌)당숙으로부터 전화를 받았다. 추석에는 바쁜 일이 있어 진안(鎭安) 고향에 못 들렀다면서, 2019년 9월20일에 성묘를 마친 뒤, 전주에서 저녁을 같이 하자고 했다. 스마트폰으로 약속장소를 알려주고는 시간에 맞춰 00산장으로 나갔다. 조금 기다리고 있으니, 당숙 내외분이 도착했다. 내가 젊었을 때였으니까 당숙을 본 지가 몇 십 년은 되었다. 나이를 따지자면 나보다 대여섯 살 아래였다. 그동안의 안부를 물으니 건강에는 별 이상 없이 그런대로 잘 지낸다고 했다. 모처럼 만났는데 무엇을 대접할까 고민하다가 민물새우매운탕을 주문했다. 몇 마디를 나누려는데 민물새우탕이 올라왔다.

 “주방에서 초벌 끓여 나오긴 했지만, 그래도 조금 더 끓여야 깊은 맛이 나요.”

라며, 써빙아줌마가 친절까지 베풀었다. 전주음식이라면 말할 것 없지만 그래도 당숙모 눈치를 살폈다. 민물새우도 탱글탱글하고 시래기와 어울려 국물 맛이 엄청 개운했다. 당숙 내외는 이런 맛은 처음이라며 극구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당숙은 운전대를 잡아야했기에 당숙모와 같이 소주를 곁들였다. 다행히도 당숙모의 주량은 분위기가 맞으면 한 병 술이라고 했다. 당숙모와 둘이서 매운탕을 안주 삼아 각 일병씩을 마셨다. 참으로 의미 있는 자리였다. 그런데 문제는 다음이었다. 음식 값을 치르려는데 당숙모가 내겠다며 막무가내였다. 이럴 수는 없다며 떼를 써보았지만 하는 수 없이 내가 양보할 수 밖에 없었다.

 아중호수는 자연이 살아 숨 쉬는 생태공원이다. 전주에 터를 두고 있는 사람은 두말할 것 없지만, 전주를 찾아오는 손님들에게 적극적으로 알리고 싶은 곳이 아중호수다. 사계절 내내 아늑하고, 쾌적하고, 아름다움을 선사하는 곳이 바로 아중호수다. 전주 아중호수는 누구나 한 번쯤은 찾아 볼 곳이다.

                                                                  (2019. 9.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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