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5일 시장

2019.10.31 13:22

박제철 조회 수:1

추억의 5일시장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제철

 

 

 

 

 

 호랑이 눈썹만 빼놓고 다 있다는 삼례시장엘 갔다. 매년 초가을이면 민간요법으로 내려오는 감기예방식품인 호박즙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호박즙의 재료는 잘 익은 호박과 도라지, 생강, 수세미, 은행, 대추 등이 들어간다. 따지고 보면 모두가 감기에 좋다는 것들이다. 시장을 돌아다니며 구입을 했는데 수세미가 없었다. 호랑이 눈썹만 빼놓고 다 있다는 시장인데 어딘가에 있겠지 하며 다시 돌아보았다.

 

 조그마한 골목길 좌판에 다른 몇 가지의 채소와 같이 한 무더기의 수세미가 있었다. 아내가 주인할머니에게 물었다.

  “이거 얼마예요?

  5,000원만 주세요.

  “너무 비싼 데요, 그리고 너무 잘아요. 큰 것은 없어요?

  할머니가 상자 안에서 큰 것 세 개를 꺼내 놓았다.

  “이거 다 합쳐 만원에 주세요!

  “안돼요,15000원은 주어야 돼요.

  그 광경을 지켜보던 할아버지께서,

  “그 돈 받고 필요한 분에게 드려.

  그리곤 뒤로 돌아서면서 들릴 듯 말 듯한 말로

  “내가 심심해서 노는 땅에 심었는데 시장 가면 돈 된다더니 참말로 사가는 사람도 있긴 있네.

  할머니의 장사하는 것을 보니 처음으로 집에서 기르는 채소들을 가지고 나와 좌판을 벌인 성싶었다.

 

 내가 어린 시절에 보았던 고향마을 5일시장의 풍경이 스쳐 지나갔다. 내가 살던 고향마을은 토끼가 발맞춘다는 두메산골이었다.그래도 행정구역상 면소재지였다. 학교도 있고 면사무소는 물론 지서, 우체국, 보건소도 있었으니 있을 것은 다 있는 셈이었다. 학용품가게, 이발소와 신발가게, 어른들이 좋아하는 주막도 있었으며, 하루에 두 번 다니는 버스를 위한 정류소도 있었다. 소재지 부근에는 여러 개 마을이 있었으나 가게들은 소재지에만 있었다. 두메산골이라고는 하지만 학생수나 주민수도 상당히 많았다.

 

 두메산골이다 보니 어린 우리에겐 불편이 없었지만 어른들은 불편이 많았다. 주산물인 고추나 잡곡 등을 팔려면 콩나물시루 같은 버스를 이용해야했다. 명절 때 아들딸 고무신이라도 한 켤레 사주려면 전주나 임실까지 버스를 타고 나가야 하는 어려움도 참아야했다. 명절이나 집안에 애경사가 있을 때는 백리 먼 길을 아예 지게를 짊어지고 다니며 장보기 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런 어려움 속에서도 이웃 간의 정은 훈훈하여 어머니들은 울타리너머로 음식이나 채소 등을 나누기도 했다. 마을도로를 보수하거나 농수로를 보수할 때도 내 일처럼 열심히 했다. 사정이 있어 동참하지 못한 사람들은 막걸리나 국수를 삶아내 놓는 등 화합도 잘되었다.

 

 그러던 시골마을에 큰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5일시장이 마을 앞에 들어선다는 것이었다. 마을 어른들은 찬성과 반대하는 사람들로 나뉘었다. 찬성하는 사람들은, 생활용품은 시장에서 직접 사면 되고 생산한 농산물은 상인들에게 팔면 얼마나 좋은가라는 논리를 앞세웠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이웃 간의 훈훈한 정도 사라지고 마을 화합도 깨질 것이라는 것이다. 이웃끼리 나누어 먹던 채소도 시장으로 들고 나가면 돈이 되니 나눔도 없을 것이며, 농산물을 판매한다 해도 제값을 받지 못하거나 시장 물건에 현혹되어 소비가 많을 거란 이유를 내세웠다.

 

 찬성과 반대 속에서도 마을 앞에는 시장건물이 들어섰다. 매달 4일과 9일이면 외지의 상인들이 들어와 물건을 진열하여 시장은 호화스럽고 갖가지 물건이 다 등장하게 되었다. 속담에 갓 쓰고 남이 장에 가니 망건 쓰고 따라간다는 말이 있다. 남들은 생활필수품도 사고 팔기 위해서 5일장에 가는데 아무 생각 없이 덩달아 딸아 간다는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오든 저렇게 오든 5일시장은 항상 북적댔다. 친구들끼리 만나는 만남의 광장노릇도 했었다. 시장을 돌아다니다 보면 갖고 싶은 것도 많고 먹고 싶은 것도 많았다. 그중에서도 나의 눈길을 끄는 것은 검은 솥에서 막 쩌낸 찐빵이었다.

 

 한때는 풍성했던 운암5일장은 교통의 발달과 도시로의 쏠림에 버티지 못하고 지금은 흔적도 없고 기억속에서 추억으로만 남아있다. 50여 년 전에는 훈훈한 정이 사라질 것이라며 반대하던 시골마을 5일시장이 지금은 온기가 있고 사람냄새 나는 시장이라고 한다. 장보기가 편리하다는 현대식 마트나 백화점, 체인점 등에 비하여 그래도 사람냄새가 나서 그럴까? 각 지방자치단체마다 5일시장 살리기에 많은 노력을 하고 있으나 젊은이들은 별로 없다.  

 

 그럼에도 삼례시장은 활기가 넘치며 옛 추억을 곱씹어볼 수 있다. 전주시의 근교라는 이점과 전주시민이 많이 가는 시장이기 때문인 성싶다. 그곳에 가면 옛날 운암시장에서 먹어보았던 도너스도 있고 순대국밥도 있다. 찐빵가게 앞을 지날 때면 그냥 지나치기가 어렵다. 에누리도 하고 덤으로 더 받기도 하다 보니 사람 냄새가 물씬 나는 시장임에는 틀림없다. 내 고향 운암시장이 서서히 사라져버렸듯 삼례시장은 사라지지 말았으면 좋겠다. 언제나 사람냄새가 물씬 나는 시장으로 계속 발전하기를 바란다.

                                                                         (2019. 10. 28.)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 추억의 5일 시장 박제철 2019.10.31 1
1006 k를 만나는 행복 한성덕 2019.10.30 6
1005 활기찬 새만금 개발 이윤상 2019.10.30 7
1004 큰언니와 형부의 희수여행 최인혜 2019.10.30 22
1003 내 사랑 '해피' 최인혜 2019.10.29 2
1002 포천 구절초 백승훈 2019.10.29 5
1001 공감 토크 '결' 정아람 2019.10.28 14
1000 콩깍지 김세명 2019.10.28 5
999 가을 나들이 곽창선 2019.10.27 6
998 글감은 당신과 가까운 곳에 있다 송준호 2019.10.25 9
997 호박꽃은 아름답다 김학철 2019.10.24 9
996 당신이 곁에 있어 행복합니다 임두환 2019.10.24 13
995 부모님의 맑은 영혼이 깃든 '나의 서재' 은종삼 2019.10.23 9
994 바람처럼 스쳐간 인연 소종숙 2019.10.22 19
993 메리골드 백승훈 2019.10.22 7
992 KBS전주 초대석 '공감토크 결' 정아람 2019.10.22 15
991 선생님과 어투 김성은 2019.10.20 10
990 얼굴 하광호 2019.10.20 7
989 책 표지 모음 양봉선 2019.10.20 901
988 하모니카를 배우면서 최동민 2019.10.20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