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인파동 단상

2019.11.01 01:54

이준구 조회 수:4

직인파동 단상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해광 이준구

 

 

 

 

 지방대학의 총장 직인파동으로 한반도에 몰아친 광풍은 오천만 국민을 혼란 속으로 몰아넣었다. 계속되는 혼란을 야기한 표창장에 대하여 생각해 본 아침이다. 반세기 전만해도 각급 학교의 표창장은 우등상과 백일장 대회 상장 그리고 효부, 열녀상 등 기관장 명의로 발행되던 극소수 상장이 거의 전부였다.

 

 표창이 남발되기 시작한 것은 쿠테타를 통한 전두환 군사정부시기가 절정이었다. 당시 군대생활을 했던 모든 군인과 경찰 등 백만에 이른 사람들에게 국난극복기장을 나누어 주었다. 청동 구리로 제작된 별 모양의 주물과 곤색 케이스에 칼라 인쇄물을 나도 받았다. 이때 사용한 거대한 비용은 대기업에서 걷은 돈인지, 청와대의 비밀금고에서 나온 돈인지, 아무도 모른다. 여하튼 사용한 비용은 <국민의 혈세> 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으리라.

 

 사상초유의 대통령이 탄핵되는 단초가 되었던 사건의 발단을 기억한다. 2016년 옥새파동의 여파가 아직도 정치권에서 정리되지 않은 채, 서로 남의 탓만 하고 있다. 대통령은 자기의 뜻에 따라 집권여당의 지역구에 출마하는 국회의원 다섯 곳의 공천대상자를 자기 뜻대로 바꾸었다. 당시 새누리당 대표가 대통령 추천 공천자에 대한 반발로 2016년 봄, 날인을 거부한 사건이 있었다. 총선 후보등록 마감일을 앞두고 자신의 지역구인 부산 영도로 내려간 당대표의 옥새파동은 촛불탄핵으로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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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촛불혁명으로 새로 탄생한 법무부장관의 자녀에 대한 표창장에 찍힌 직인의 위조 여부를 두고 국내여론이 엇갈렸다. 어찌된 영문인지 직인 때문에 여러 국민들의 심기를 혼란하게 한 이슈가 특정지역부터 시작되었다. 단군 이래 최대 국책사업인 4대강사업에 22조 원이 투입되었다. 가장 실패한 사업에 표창장을 받은 인사가 1,152명이란다. 당초 22조 원에서 33조원으로 늘어났다. 혈세가 투입된 잘못을 반성하는 사람도, 잘못된 표창을 바로잡는 언론도, 수사소식도 없다.

 

 최근에는 학교와 사회단체, 행정관청에서도 표창장이 남발되고 있다. 칭찬과 표창이 사회통합과 발전에 기여하는 순기능도 있다. 그러나 정치인들이 남발하는 상장은 예전과 달리 명예롭지 않은 시한폭탄이라는 여론도 있다. 국회에서 고위직에 대한 범죄 수사를 위한 공수처 설치에 앞서 본 말 전도된 지방 사립대의 위조 직인에 대한 수사만 하고 있다.  경천동지할 표창수사는 물론 국회의원들의 자녀에 대한 대학입학 전수조사도 말만 남기고 흐지부지 되는 상황이다. 정치적 목적과 고위직 자녀들의 스펙 쌓기에 품앗이 형태로 사사로이 전달된 표창보다 국가 정책에 대한 큰 잘못을 따져야 할 것이다.

 

  법조 삼성의 본향 전라북도에는 '삼인대'라는 목숨을 건 직인 사용에 대한 유적이 남아있다. 단풍이 아름다운 순창 강천산 계곡에 관료 세 사람이 직인을 걸어두고 결의한 장소가 있다. 조선 왕조에서 최단기간(7) 왕비였던 단경왕후 신씨 (1487- 1557) 1499년 연산군의 이복동생 중종과 결혼했던 유학자 신수근의 딸이었다. 중종반정에 참여하지 않았던 신수근은 반정에 참여한 박원종 일파에게 죽임을 당했다. 스무 살에 왕비로 옹립되었다가 폐위된 중종의 첫 부인 신씨는 비운의 왕비였다. 폐위된 자리에 장경왕후 윤씨가 자리를 차지했다. 장경왕후는 왕자 인종을 출산하고 6일 만에 죽게 되었다. 사라진 왕비자리에 왕자를 키울 적임자로 비참하게 물러난 단경왕후 신씨의 복권을 위한 현감들이 회동한 장소가 바로 '삼인대'. 순창군수 김정, 담양부사 박상, 무안현감 유옥은 폐비 신씨 복위를 위해 직인을 걸고 맹세했다.

 

 관직과 목숨을 건 비장한 각오로 각자의 관인을 소나무에 걸어두고 맹세한 뒤 1515년 8월 8일 탄원서에 날인하던 비장함이 느껴진다. 내용은 역경과 시경을 인용한 문구로 유교적 명분에 따른 상소문이었다. 폐비 신씨의 복위와 함께 폐비를 주동한 자들에 대한 단죄를 요구한 목숨을 건 결의문이 아니었던가? 세분의 관료 모두 천수를 다하지 못하였지만 호남지역 유림들의 기개를 조선반도에 떨친 결기였다. 폐비 신씨는 경남 거창신씨 명문가 신승선의 손녀였다. 따지고 보면 신승선의 아들 신수근은 정몽주보다 더 불사이군 충절을 지킨 조선 왕조의 2인자였다. 역적 신수근의 복권을 주장한 전라도 관료들은 불의를 보고 직언을 했다. '삼인대'에 걸었던 것은 직인과 목숨이었다.

 

 국민들을 탄압하려했던 정치인과 군인들이 책임을 회피하는 것은 비겁하다.

 

 임진왜란의 영웅, 동래부사 송상헌, 충무공 이순신. 최경희 장군은 정읍에 있는 남고서원 출신이라고 한다. 남고서원을 설립한 유학자 이항 제자 중 의병장 154명은 임진왜란 당시 목숨을 걸고 나선 호남지역 서생들이다. 무성서원과 남고서원의 사상적 기반은 '삼인대' 결의부터 임진왜란과 동학혁명까지 이어진 셈이다. 평화로운 촛불집회를 무력으로 진압하려했던 쿠테타 문건이 공개 되었다. 광주민주화를 부르짖던 국민들을 탱크와 총칼로 도륙했던 미발표된 영상이 조만간 나타날 모양이다. 국가와 국민을 보호해야할 군인들이 국난극복이 아니라 국론분열을 조장했다. 가뜩이나 어렵고 변화무쌍한 열강의 틈새에서 국론 분열을 획책하는 정치인과 언론은 분명 매국노가 아닐 수 없다. 지금도 정치적 목적과 소속 집단의 이익을 위해 국민은 안중에도 없는 정치인과 관료, 언론을 그대로 두어서는 안 된다. 온 국민이 나서서 혼쭐을 내주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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