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은 안 통해도

2019.11.01 16:21

변명옥 조회 수:8

말은 안 통해도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변명옥

 

 

  도서실 복도에 까만 물잠자리가 갇혀서 날아다니고 있었다. 밖으로 내 보내고 싶지만 날개를 갖고 있는 잠자리니 함부로 잡을 수가 없다. 잘못해서 날개라도 부러져 버리면 생명을 잃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잠자리채도 없어 그냥 도서실로 들어가 환기를 시켰다. 에어컨이 돌아가는 도서실에서 복도로 나오면 더운 기운이 ‘확’ 달려든다. 마치 시원한 천당과 불지옥을 연달아 경험하는 듯하다.

 퇴근하려는데도 잠자리는 도서실 문 앞에서 계속 날아다닌다. ‘어이구, 아직도 출구를 못 찾았구나!’ 하며 바라보니 날개에 힘도 빠졌는지 자꾸 창틀에 앉는다. 내 앞으로 바짝 왔다가 손을 뻗으면 높이 날아오르니 키가 작은 나로서는 살려 줄 방법이 없었다. 아래 창문을 열어 놓고 잠자리를 몰았지만 겁이 난 잠자리는 엉뚱한 벽 쪽으로만 빙빙 돌고 있었다. 어쩌지? 함부로  잡을 수도 없고 애만 태웠다.

 “잠자리야, 이쪽으로 와, 너 살려주고 싶어서 그래. 내가 그냥 가면 일주일 동안 갇혀 굶어죽어.

하며 손을 뻗어보지만 잠자리는 그저 이쪽저쪽으로 날기만 한다. 그런데 높이 날지도 못한다. 헛손질을 대여섯 번 하다가 운 좋게 잡아서 얼른 창밖으로 손을 폈더니 기분 좋게 날아간다.

 “휴, 다행이다.

 마음이 가벼워졌다.

 

 내가 밥을 주는 길고양이 새끼 세 마리가 우리 마당에서 산다. 가까이 가면 기분 나쁘다는 듯이 날카로운 이를 드러내며 ‘크르릉’ 하며 화단 속으로 몸을 숨긴다. 어리지만 뾰족한 이빨을 보면 겁이 난다. 밥그릇을 나한테서 2m쯤 멀리 놓았다가 1그 다음에 50c, 30cm씩 줄여나갔다. 처음에는 도망가더니 배가 고프까 그냥 먹었다. 아침저녁 두 번 주는데, “오도독 오도독” 소리를 내며 먹는 모습이 예뻐서 10여 분씩 지켜본다. 그런데 세 마리 중 검정얼룩이는 가장 예민하고 절대 가까이오지 않는다. 그 놈이 밥 먹으러 올 때는 마치 사자가 살아 있는 먹이에게 들키지 않게 다가가듯이 자세를 낮게 엎드리고 천천히 주위를 살피며 온다. 온몸에 노랑털이 있는 노랑이와 발과 배 부분에 흰털이 있는 흰발이는 한 놈이 먹고 있으면 배가 고파도 입맛을 다시며 기다리는데, 검정얼룩이는 가장 늦게 식사에 끼어들어도 내버려둔다. 왜 그러냐고 물어보고 싶어도 알 수가 없다. 밥 먹는 속도도 검정 얼룩이가 가장 빠르다. 씹지도 않고 삼키는 것 같다. 어미를 가장 많이 닮았다. 어미는 옥상 위에 앉아서 새끼들이 먹고 남기면 먹으려고 내려다보고 앉아있다. “네 새끼를 왜 내가 키우게 해?” 묻고 싶지만 어미는 모르는 체 시선을 돌린다.

 고양이 밥그릇에 사료를 부어 놓으면 세 마리가 쪼르르 달려와 내 눈만 바라보고 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기만 바라는데 나는 먹는 모습이 귀여워 먹기를 기다린다. ‘괜찮아, 어서 먹어.’ 눈짓으로 이야기하면 23분 지나 노랑이가 제일 먼저 오고 흰발이가 다음에 맨 나중에 검정얼룩이가 조심스럽게 다가 와 먹는다. 하루라도 보이지 않으면 궁금하다. 교통사고를 당했나, 아니면 상한 음식을 먹다 죽었나? 하고 걱정된다. 요 며칠 동안은 어미가 새끼들 밥 먹는 모습을 지켜보지 않는다. 아주 새끼들을 떠났나 보다.

 

 저녁 무렵 고양이 사료를 주고 현관 계단에 앉아 먹는 모습을 지켜보는데 한참 먹던 노랑이가 갑자기 내 다리 쪽으로 오더니 온 몸으로 슬쩍 스치듯이 지나는 게 아닌가? 부드러운 새끼고양이 털의 부드러움이 고스란히 전해왔다. 나는 감전된 것처럼 가만히 있었더니 두 번 세 번 몸을 비비는데 말할 수 없는 감동이 밀려왔다.

 다음 날 아침은 용기를 내어 밥 먹는 노랑이의 머리를 만졌더니 그르렁 거리며 몸을 곧추 세우고 가만히 있었다. 보기만 해도 도망치던 노랑이가 만지거나말거나 밥을 먹었다. 길고양이도 밥을 주면 길들여지는구나 싶어 이젠 사랑스럽다. 흰발이와 검정얼룩이는 아직도 가까이 가면 숨는다.

 작년에는 다른 고양이가 새끼 세 마리를 낳아 키우다가 이사를 하는데 한 마리씩 입으로 물어 날랐다. 두 마리를 나르고 더운 날씨에 지쳤는지 한 마리만 남겨 놓았다. 태어나 일주일도 안 된 고양이가 “야아옹, 야~아 ~옹”어찌나 구슬프게 울어대는지 견딜 수가 없었다. 날도 더운데 저렇게 울다가 죽을 것 같아 땀을 흘리며 우유를 사다가 고양이 새끼 입을 벌리고 억지로 조금씩 흘려 넣었다. 우느라고 지쳐 그런지 가만히 있었다. ‘인정머리 없는 어미 같으니 새끼가 이렇게 우는데도 데리러 오지 않다니.’ 중얼거리며 먹이다 보니 목털에 우유가 묻었다. 그대로 두면 우유가 굳어 딱딱해 질까봐 물로 씻겼다. 먹인 다음에 고양이가 사는 집(빈 개집)에 넣어 놓지 않고 마당에 그냥 두었다. 새끼고양이는 더 구슬프게 울었다. 사람이 있으면 어미가 안 데려 갈까봐 방에 들어와 있다가 조용해서 나가 보니 어미가 새끼를 물고 마당을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안도의 한숨이 절로 나왔다.

 

  남편이 낚시로 아주 큰 가물치를 잡아다가 마당의 고무 물통에 담아 놓았다. 가물치는 물통에서 별로 움직이지도 않고 열흘정도 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안됐던지 잡은 곳에 놓아주려고 가물치를 잡으려는 순간 달려들어 손가락을 물어서 피가 철철 났다. ‘너, 살려주려고 하는데 나를 물다니!’ 남편은 아픈 마음에 물통에 죽게 그냥 두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고 한다. 가물치 입장에서 보면 병 주고 약주는 것이다. 잡아다 놓고 ‘열흘씩 쫄쫄 굶기더니 인심 쓰듯이 살려준다고?’ 하며 달려들었을 것이다. 만약 가물치를 물통에서 꺼내기 전에 “가물치야, 미안하다. 너를 살려주려고 하니 가만히 있어라.” 라고 말을 했다면 달려들어 물지 않았을 게 아닌가? 글쎄 모르겠다. 하여튼 잘했다고 말해주었다.

 

 나는 원래 고양이를 싫어했다. 시골에 살 때 집고양이를 키웠는데 꼭 아랫목으로 파고들고 밥상 밑으로 지나가서 미워했다. 내가 멸치를 손에 쥐고 불러도 와서 먹지 않았다. 집에 들른 딸이 “엄마가 어떻게 고양이 꼴을 봐?” 하고 놀렸다. “그러게 말이지. 그런데 어쩌니? 어미길고양이가 자꾸 새끼를 낳고 가버려 밥을 주다 보니 나도 모르게 정이 들었어.

 

 밥을 주면 남의 집 쓰레기 봉지를 찢거나 훔쳐 먹지 않아도 되니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을 것 같아 먹이를 주게 된다. 이제는 회식자리에 가도 생선이 남으면 염치불고하고 싸온다. 지금은 먹으며 그르렁거리는 고양이 소리도 사랑스럽다. 

                                                             (2019.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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