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개떡이다

2019.11.02 12:53

한성덕 조회 수:39

나는 개떡이다

한성덕

 

 

 

 

  나는 개떡입니다. 보릿겨로 만든 개떡, 거칠며 거무데데하게 생긴 떡, 그게 목구멍에서 따끔거린다나? 그러면 좀 어때요? 사람들은 날 먹으면서 투덜거립니다. ‘쓰면 뱉고 달면 삼킨다.’더니, 인간들의 못된 근성인가요? 안 먹으면 그만인 것을 입에 넣으면서 자꾸 씨부렁거려요. 입 닥치라고 소리치지만 소용없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자가 복이란 것을 알면 좋겠어요.

  사고력은 동식물계에서 인간들만 갖고 있잖아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데 따른 어마어마한 축복입니다. 그 사고력을 십분 발휘해서 이왕에 날 먹는 거 고맙게 여기면 안 되나요? ‘누이 좋고 매부 좋다’는 말을 인간들은 모르나 봐요. 그저 깡그리 뭉개버립니다. ‘사촌이 논을 사면 배가 아프다’더니 시기심이 참 대단해요. 열길 우물 속은 알겠는데, 인간의 주먹만한 심장 속은 알쏭달쏭해요. 물론, 인간들이 다 그런 것은 아니겠지만 떨떠름합니다.  

  요즈음에 와서 참 재밌는 일이 있어요. 많은 사람들이 애완견을 기릅니다. 특히, 견을 좋아하는 젊은이들 중 나를 모르는 경우가 많아요. 이해가 됩니다마는 ‘개떡’이다 보니까, 날 보고 ‘개가 먹는 떡이냐?’고 물어요. 난 그만 깔깔대며 자지러지게 웃었습니다. 인간이 먹는 떡을 개가 먹는 떡이냐고 물으니 기가 막힙니다. 개가 먹는 떡이 있겠습니다마는 그걸 말하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아무리 날 모른다 해도 어이가 없습니다. 나 참, 세상을 오래 살다보니 별스러운 소리를 다 듣네요. 웃음을 꾹꾹 참는데도 자꾸 터져요. 분별력에서 멀어진 친구들이 날 먹는 자들을 비아냥대거나, 설마 사람과 개를 비교해서 그러는 것은 아니겠지요? 비교 그 자체가 인간을 무시하는 거잖아요.?

  내가 비록 개떡이지만, 우리주인이 자라나던 1950년대 이후, 적어도 1980년대 초반까지는 몹시 총애를 받았어요. 먼 길을 떠날 때 괴나리봇짐 속에, 나무하려고 산에 오르는 나무꾼 지게에, 공장으로 출근하는 아가씨 가방 안에, 논밭으로 김매러가는 농부의 손에, 고즈넉한 촌락의 긴긴 겨울밤 간식에, 그리고 학생들의 도시락에 당연히 존재했었지요. 그 지난(至難)하던 시절, 거저 구하다시피해서 날 만들어 먹었으니 인기 짱이었어요. 지금은 예전과 많이 다릅니다. 인기로 치자면 바닥을 박박 기고 있어 참 섭섭합니다. 그저 시대적인 흐름정도로 파악하고 살지요. 스트레스를 털어내는 비결이기도 하고요. 인간들이 시대의 변화에 적응하고, 그 환경에 따라 살듯이 말이죠. 그래도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 꾸준히 있어 세상살 맛은 납니다.

  나는, 그 많은 인기 덕으로 여전히 건재합니다. 인간들이 땅에서 존재하는 한 사라지지 않을 거 같아요. 때로는 대단했던 인기를 등에 업고, 거만과 도도함이 하늘을 찌르지 않았나 싶어 후회가 될 때도 있습니다. 기나긴 인간역사에서도, 교만한 사람이나 가정이나 국가는 망했습니다. 이집트의 바로 왕이나 삼손이나 그들의 가정 등, 국가적으로는 로마나 바벨론이나 그 밖의 여러 나라들을 보세요. ‘교만의 결과’여서 마음이 저미기도 합니다.      

 

  나는, 경기지역 강화도지방의 향토음식으로 인기가 높습니다. 보리가 여물어 갈 때쯤 이삭을 잘라서 방아에 찧습니다. 그 찧은 보릿가루에 파와 간장과 참기름을 넣고 반죽하여 절구에 다시 찧습니다. 잘 찧어 차지게 한 뒤 솥에 겅그레를 놓고 넓적하게 펴서 찐 것이 개떡입니다. 그 정도의 나라고하면 최상의 떡이지요. 그토록 값지고 고급스러운 면에서는 지금도 극진한 대접을 받습니다. 그런데 우리 주인은 워낙 가난해서 순수 보릿겨로 날 만들어 먹었으니 좋은 감정은 없을 거예요. 그 시절의 우리 주인을 생각하면 퍽 안타깝고 측은해 보입니다. 실은, 주인과의 만남이 악연인 듯싶으나 결코 원망하진 않아요. 누가 뭐라고 해도 우리 주인만큼은 나를 극진히 아끼고 사랑했거든요. 그 마음은 지금도 여전하리라고 확신합니다.            

  사람들이 나를 개떡이라고 한 게 궁금해요. 나도 개떡은 듣기 싫고 거북합니다. 어느 날, 한 할아버지가 귀뜸해 주셨어요. 보릿겨로 떡을 만들어 먹던 시절, 사람들은 내가 겨에서 나왔다고 ‘겨떡, 겨떡’ 하다가 ‘개떡’이 되었다고 말입니다. 말이 된다 싶으면서도, 나를 ‘찰떡, 찰떡했으면 영원한 찰떡이 됐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커요. 그래도 서민이 먹는 개떡이 좋습니다.    

  그런데 인간들은 한 줄 빠지거나 덜 떨어진 자, 엉뚱하고 망나니짓을 하는 사람, 또는 있으나마나하거나 별 볼 일 없는 사람을 나와 빗대어 ‘에이, 개떡 같은 사람’ 그래요. 나를 인간과 비교하나 싶어서 기분 나쁘진 않지만, 왜 하필이면 으지짠한 사람과 비교합니까? 그래도 눈치로 얼른 알아차리고, ‘맞아 난, 개떡이지’하고 맙니다. 세상이 다 그렇잖아요?

  끝으로, 사람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뭐라고 호칭하지? 그냥 친구처럼 말하지 뭐, ‘인간들아, 네 꼬락서니를 알면 안 되겠냐?’ 말이 좀 거칠고 건방지대요. 개떡이 소리치니까 자존심이 팍 상하고 상실감이 큰가 봅니다. 실제로, 자기스스로를 개떡이라고 생각할 때는 허리가 구부정하고 상당히 겸손해 보였어요. 그런데 찰떡이라고 생각하는 순간부터 허리가 뻣뻣해지면서 거만하더라고요. 뭔가 손에 잡혔다는 거 아닙니까? 온갖 교만과 탐욕이 극치를 이루죠. 결국은 꼴불견이 돼 폭삭 망하는 것을 봐서 그래요.  

  나는 본디 개떡이니까 그냥 개떡으로 살면 그만이듯, 당신도 나처럼 개떡으로 살면 안 될까요? 맛은 까칠해도 착하고 겸손한 면이 있잖아요?

                                                (2019. 11.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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