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앗을 심는 마음

2019.11.15 12:41

김학 조회 수: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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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을 심는 마음
김 학



 3월이다. 만세의 달 3월이요, 입학의 달 3월이다. 농부는 3월이면 풍성한 가을걷이를 꿈꾸며 땅속에 씨앗을 묻는다. 죽은 듯 꿈쩍도 하지 않던 씨앗은 농부의 따사로운 손길을 만나 변신을 꿈꾸며 환호작약할지도 모른다. 
 시골 농가의 처마 밑에 걸린 강냉이와 서숙, 수수 등 식용식물의 씨앗을 보라. 그 씨앗들의 알맹이 하나하나를 보고 누가 살아있는 생명체라 생각하겠는가? 그런 씨앗도 농부가 정성껏 땅에 묻으면 언젠가 싹이 트고, 습기와 영양과 햇볕의 도움으로 점점 자라서 나중에는 주렁주렁 열매를 매달아 깊어가는 가을과 함께 익어간다. 씨앗은 농부에게 흥겨운 가을걷이의 기쁨을 선사하게 될 것이다.
 무릇 모든 씨앗은 스스로 움직이지도 않고 침묵으로 일관한다. 어떤 이상한 기운도 느끼게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씨앗에는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없는 강력한 생명력이 들어 있다. 그 씨앗에는 분명 생명력이 있는데도 무생물인 돌멩이와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생명을 잉태한 씨앗들은 마치 날짐승들이 낳은 알과도 흡사하다. 씨앗은 알의 역할이나 기능과 비슷하다. 씨앗이 식물의 모태라면 알은 동물들의 모태다. 참으로 신기하기 짝이 없다. 씨앗과 알의 모습은 다르다. 또 씨앗들도 그 종류에 따라 생김새가 저마다 다르다. 그런데도 같은 임무를 수행한다.
 씨앗과는 달리 알속에는 흰자와 노른자가 있고, 그 한쪽 구석에는 생명의 씨가 숨어 있다. 어미닭이 계란들을 21일쯤 품고나면 병아리가 태어난다. 모든 씨앗과 알은 그렇게 대를 이어갈 2세를 낳는다. 종족번식이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한다. 그 어미닭의 헌신적인 자식사랑의 의미를 사람들이 깊이 생각해 볼 일이다.
 죽은 것 같은 씨앗을 살리는 것은 농부의 손길이다. 농부의 손만이 씨앗의 생명을 부활시킬 수 있다. 땅을 부드럽게 만들고, 씨앗의 갈증도 풀어주면서, 씨앗이 싹을 틔우고 잘 자랄 수 있도록 환경을 만드는 일도 농부의 몫이다.
 나는 농부는 아니지만 봄이면 씨앗 뿌리기를 좋아한다. 농부가 부러워서 흉내를 내 보는 것이다. 지난해 봄에도 아파트 화단에 해바라기와 호박씨를 심었고, 코스모스 씨앗도 뿌렸다. 그런데 어인 일인지 그 씨앗들이 하나도 싹을 틔우지 않았다. 몹시 안타까웠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까닭을 알 수가 없었다. 땅이 척박하다는 것도 한 가지 이유겠지만, 더 중요한 것은 농부와 같은 정성이 모자란 것도 큰 이유였던 것 같다. 날짐승이나 들쥐 같은 존재들이 돌아다니며 씨앗을 먹어치우기도 했을 테니 말이다.
 씨앗을 심는 일은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려는 숭고한 의식이다. 그것은 신의 섭리, 신의 영역일 것 같다. 나는 꽃을 보고 싶은 욕심과 우리 아파트를 아름답게 가꾸고 싶다는 꿈에 부풀어 아까운 씨앗의 목숨을 낭비한 꼴이 되고 말았다. 욕심이 앞서면 성공이 아니라 실패를 가져오기 쉽다는 깨달음 한 가지를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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