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미안하고 고맙소

2019.12.05 12:41

백남인 조회 수:10

 여보, 미안하고 고맙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백남인

 

 

 

 

  여보, 며칠 있으면 우리가 결혼한 지 쉰일곱 해가 되는가보구려. 20대 청춘시절 처녀였던 당신과 총각이었던 나 사이엔 커다란 인연이 닿아 백년가약을 맺게 되지 않았던가요? 당신은 정읍시 입암면 천원리 장흥고씨 43녀 중 장녀로 태어나 다복한 생활을 하고 있었지요. 나는 그 때 그 마을에 있는 입암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했는데, 학교에서 가까운 집에서 하숙을 했었지요.

  사람의 인연은 참으로 묘한 것 같아요. 하루는 내가 학교에서 운동하다가 발뒤꿈치를 다쳤는데, 때마침 학교에 볼 일이 있어서 들른 당신의 큰오빠가 내 발을 보고는 자기 오토바이에 나를 태우고 자기 집으로 가는 게 아니겠오?

  집에 가자마자 내 발을 이리저리 만져보고는 소독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로 감아 치료를 해주었소. 치료를 받은 나는 조심조심 일어나 걸으면서 잘 가꿔진 꽃밭을 한참 구경하고 난 뒤 학교로 돌아왔었지요. 그 때까지는 당신의 가정 사정이나 가족에 대하여 전혀 모르는 채 치료를 몇 번 더 받은 적이 있었소. 그 뒤 동료교사 중 한 분이 당신을 소개하여 관심을 갖고 자주 만나고 마음을 주고받으면서 점점 가까워져 연분을 맺게 된 거지요.  

  신혼살림은 입암에서 시작하여 첫아이를 낳을 때까지 셋방살이를 하면서 고생이 많았소. 그 뒤 정읍시내 학교로 직장을 옮긴 뒤로도 한 동안 전세살이를 했었죠. 아이들이 더 태어나 전세를 얻는 것도 힘들어서 조그마한 집을 장만했는데, 그리 넓지 못하여 참 힘들었지요. 그 좁다란 집에도 전세를 구하는 직장인들에게 네 차례나 방을 내 주어 친척처럼 다정하게 살았던 때도 있었지요.

  무엇보다도 미안한 건 내가 한 동안 산골학교로 자리를 옮겼을 때였소. 류마치즈 관절염으로 고생을 하면서 나와 학교 다니는 아이들을 위해 새벽밥을 지어 먹이고 도시락을 싸 보내기까지 온갖 고생을 한 당신에게 너무 미안했었소. 그렇게 몇 년이 지나면서 교감으로, 또 교장으로 승진한 뒤에도 새벽밥을 해 주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소?

  교장발령을 먼 곳으로 받으면 자가용차가 필요할 것 같다고 했더니 그거야 당연하지 않느냐면서 힘을 실어준 당신에게 참으로 고마웠소. 그 때 장만한 차를 이용하여 10여 년간 긴요하게 썼지요. 기동력이 있다 보니 부부가 함께 참가하는 모임에는 빠짐없이 참석할 수 있었고, 모임 후에 이동문제로 어려움을 겪는 친지들에게 편리를 제공함으로써 상부상조의 계기가 마련되고 친화의 기회가 많아졌지요. 그렇게 편리하게 사용하던 차가 낡아 유지관리에 애로가 많아지자 차를 교체하는 데 당신이 적극적으로 힘을 보태주었지요. 참으로 고마웠소.

  또 아이들 결혼문제로도 마음이 편안할 짬이 없었던 것 같소. 자녀들의 결혼 문제까지도 부모로서는 마음 편안할 날이 없었던 것 같구려. 자식들의 의견을 존중하여 자기들의 문제는 자기들이 해결해 나가도록 해주었지요. 잘 한 거지요. 어려운 일을 만날 때마다 항상 내색을 하지 않으며, 우리보다 못한 사람도 얼마나 많으냐고 오히려 나를 위로해주는 고운 심성을 가진 당신, 정말 고마워요. 모든 게 뜻대로 되지 않더라도 그걸 가지고 스트레스를 받지 않고 마음을 편히 가지도록 해 주었던 것이 우리의 건강을 해치지 않게 했다고 생각하오.

  서울까지 손녀를 돌봐 주러 다니며 얼마나 고생하였소? 그런 것들도 전혀 고생으로 생각지 않고 즐거워했던 일이 엊그제 같구려. 그 아이가 벌써 커서 지금 대학을 다니고 있으니 꿈만 같지요?

  내가 퇴직하고 나서 아파트로 이사 가자고 했을 때 당신이 기뻐하던 모습이 눈에 선하오. 2001년 이곳으로 이사 오게 되자 아주 편하다면서 좋아하는 당신의 모습을 보았을 때 나도 기뻤소. 과연 아파트가 편하긴 편한 것 같더이다.

  그 동안 직장생활 때문에 함께 할 수 없었던 해외여행을 하면서 행복해 하던 당신의 모습이 새롭구려. 금강산 만물상과 구룡연을 함께 디녀 왔고, 오스트레일리아와 뉴질랜드, 중국, 일본을 다녀오며 추억을 만들기도 했었지요.

   국내 여행을 함께 하면서도 좋은 추억을 많이 만들었네요. 경주, 거제도, 인천, 서울, 태안 천리포, 해남 땅끝마을, 제주도, 수원, 전주, 광주, 무주, 부산과 양산을 함께 다녀왔는데 앞으로도 기회를 만들어 국내 여행은 더 자주 가볼까 하는데 당신도 좋지요?  

  부부동반 모임도 해마다 종친회 연말연회를 비롯하여 매월 탁구 월례회, 각종 기념회나 공연회를 함께 하면서 문화예술을 흡수하려고 해왔지요. 탁구경기에 함께 출전하면서는 아산대회, 서울대회 등 전국 곳곳을 같이 가기도 하면서 추억을 만들고 돌아오기도 했었지요.

  2008년 부영노인대학을 운영할 때도 당신은 80,90대 고령 학생들을 위해 솔선하여 배우는 일에 본을 보여주고 봉사하여 더욱 효과적으로 운영했었지요. 우리는 아직 건강상 큰 문제는 없으니 앞으로도 즐거운 일을 만들어가고 이웃에게도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면서 보람 있는 나날을 보냅시다.

  여보 고마워요. 사랑하오.

                                                       2019123

                                         당신의 사랑하는 당신, 백 남 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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