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2020.01.01 22:28

김성은 조회 수:2

2019년 우리집 10대 뉴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김성은

 

 

 

 

 역동적인 1년이었다. 담임업무와 부장보직을 받아 분주한 봄이 갔고, 부모님의 땀방울로 영근 꿀수박을 수확한 여름이었다. 가을 앓이로 마음고생을 하며 긴 터널을 통과한 11월이었고, 유주의 빛나는 성장에 감사하는 겨울밤이다.

 

1. 전북 극동방송의 전파 선교사가 되다

 

 새학기를 앞두고 담임업무와 부장보직을 받았다. 경력에 비해 뒤늦은 임명이었지만 야심이 없는 내게 소위 승진은 부담 그 자체였다. 공무에 대한 책임이 솔직히 썩 달갑지 않았다. 예배당에서 불안한 마음으로 기도를 올리는데 마침 전북에 개국한 극동방송 전파선교사를 모집한다는 광고가 나왔다. 경제적으로 넉넉한 형편은 못되었지만 기쁘게 자동이체 신청서를 썼다.

 

2. 은유작가를 만나다

 

 서울 은평구의 한 도서관에서 토요일 오후에 진행된 북토크였다. ‘다가오는 말들’을 쓴 은유작가의 책을 점자도서관에 의뢰해 놓고 들은 강연이었다. ‘쓰기의 말들, 싸울 때마다 투명해진다’를 읽고 은유작가의 필력에 반했다.

 작은 유리병에 종이거북을 담아 떨리는 가슴으로 선물했다. 나의 조악한 수필 세 편을 출력하여 용감하게 첨삭지도를 청했다. 거의 뗑깡 수준에 가까운 무례한 부탁이었음에도 그 은유작가는 친절하고 날카로운 조언을 보내주었다.

 

3. 표현문학 ''호로 등단하다

 

 내가 이제껏 소속되어 있던 이익단체는 ‘대한안마사협회’가 유일했다. 시각장애인이라서 타의적으로 들어야 하는 의무였기에 건조하게 회비를 납부하는 무심한 회원이었다. 하지만 ‘전북문인협회’는 달랐다. 수필가로 등단한 뒤 입회원서를 쓰고, 적지 않은 회비를 납부하는 행위가 대학 1학년 때의 짜릿한 성취를 복기시켰다. 어엿한 문인의 자격을 갖춘 것 같아서 기분이 썩 즐거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열등감에 젖어 비틀대는 한 시각장애인을 어엿한 작가로 키워주신 나의 인생 스승, 김학 교수님께 존경과 감사를 올린다.

 

4. 세 자매 일본 여행을 떠나다

 

  남편이 마련해 준 시간이었다. 세 자매만의 오붓한 첫 해외여행이었다. 영선이가 일어를 전공해서였을까? 처음 밟아보는 일본 땅이 낯설지 않았다. 물리적으로 가까운 이웃 나라였지만 내가 학창 시절에 읽었던 ‘조정래의 아리랑, 한수산의 까마귀(후에 구남도로 재출간되었다.), 문순태의 타오르는 강’ 등에서 배웠던 일본은 역사적으로 대한민국 민초들에게 극명한 가해자였다.

 2020년 새해가 밝은 현 시점까지도 일본과 대한민국은 복잡한 정치·경제적 갈등을 매듭짓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하지만 일본인 개개인을 섣불리 판단하거나 단언할 수 있는 사안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무엇보다 소음이 없어서 내 두 귀가 편안한 나라였다. 내가 열렬히 사모하는 일본작가 ‘오쿠다 히데요’가 부산에 왔다가 쓴 기행문에서 나는 정확히 내 느낌과 꼭 반대되는 문장을 읽었다.

 '한국 사람들은 고막이 무지 튼튼한가보다.' 귀로 사는 내게, 그래서 일본은 친절한 나라로 각인되었다. 검소한 생활 태도, 엄격한 준법 정신, 철저한 개인주의, 넘치는 전통 사랑이 내 가슴에 오랜 여운으로 남았다.

 

5. 꿀수박을 수확하다

 

 삼겹살을 구우면 가장 먼저 내 밥그릇에 잘 익은 고기를 올려주시는 친정부모님께서 이번에는 유주에게 특별한 감격을 선물해 주셨다. 작년에 이어 두 번째 수박 농사였다. 단 두 개의 열매가 달린 귀한 성과였다. 수박이 잘 익기를 기다렸다가 가장 적절한 타이밍에 아이가 직접 줄기에서 수박을 따낼 수 있도록 만전을 기했다. 드디어 여름 방학을 맞은 손녀를 의기양양 밭으로 데리고 나가셨다. 작렬하는 태양 아래 수박 한 덩이는 뜨겁게 달구어진 채 작은 밭에서 실신한 듯 누워 있었다. 줄기에서 수박을 따냈다. 그 한 순간을 위해 할머니, 할아버지가 얼마나 애쓰셨는지 알 턱 없는 아홉 살 손녀는 덥다며 심드렁하게 뜨거운 수박을 품에 안았다.

 

6.. 해운대로 가족 피서를 다녀오다

 

 우리 세 식구의 여행은 사실 남편의 노동을 담보로 한다. 낯선 공간에 가면 행동 반경에 제약이 생기고마는 내가 집에서처럼 유주를 살필 수 없기 때문이다. 두 여자의 보호자로 팽팽한 긴장을 늦출 수 없는 남편은 혼자서 운전하고 안내하고 정리하고 인솔하느라 정신이 없었다. 뜨거운 해운대에는 열정과 함성이 가득했다. 단연 파이어 아트가 으뜸이었다. 가만히 있어도 땀이 흐르는 한여름에 불쇼를 하는 청년들이 있었고, 고운 음성으로 노래하며 공연하는 벤드들이 모래사장의 열기를 더했다.

 

7. 밀알복지제단 공모전에서 수상하다

 

 학기 중에 업무가 너무 바빠서 충분히 퇴고하지 못했다. 유주와 나의 이야기를 담은 수필 한 편을 응모했는데 좋은 소식이 있었다.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지 못해서 영선이가 대리 수상했다. 상금 70만원을 친정 아버지 틀니하시는데 보탰다. 험지에서 뉴스타파를 진행하던 최승호 PD가 사장이 된 'MBC사장상'이라서 내게는 더 의미가 있었다.

 

8. 친정 식구들과 가을을 감각하다

 

 올 가을은 유독 남편의 외출이 잦았다. 동료들과 무창포철도수련원도 다녀오고, 제주 혼행도 다녀왔으며, 열광하는 여자배구경기가 있는 곳이면 전국 어디든 달려갔다. 젊은 여자 동료들과 어울리며 찍은 사진을 카톡 프로필에 올리며 진짜 웃음을 되찾은 중년 남자의 생기가 보기 싫었다. 34일 제주여행을 계획하며 휴대폰 컬러링으로 ‘제주도 푸른밤’을 선택한 가벼움에 화가 났다. 머리로는 남편의 휴가를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그럴 수 없어 괴로웠다. 청명한 가을 아침이면 기계처럼 출근하는 내 신세가 괜스레 슬펐다.

 맹인으로서도 아내로서도 남편의 거침없는 질주가 못마땅했다. 내가 갖지 못한 자유에 대한 질투심이었을까? 그런 내 마음을 헤아린 동생들이 주말마다 익산까지 내려와 내 손에 가을을 쥐어 주었다. 부여로, 무주로 주말마다 바쁘게 나와 유주를 데리고 다녔다. 영선이는 유주의 태권도대회까지 함께 동행하며 피곤한 주말을 헌사했다. 내 동생들 덕분에 나는 인생의 고비고비를 무사히 넘어간다. 이모 덕에 익산시장배태권도대회에서 금메달을 목에 건 유주도 조카들과 어울리며 넓은 세상을 경험한다.

 

9. 연구수업을 하다

 

 우리 학교에서는 전 교사가 격년제로 연구수업을 해야 한다. 교생실습 때 했던 첫 연구수업을 아직도 잊지 못한다. 무려 17년이 지난 지금인데도 남들 앞에 선보이는 연구수업은 만만치가 않다. 경력을 생각하고 연륜을 감안하면 스스로가 견딜 수 없을 것 같아서 그냥 편하게 주제를 잡았다. 직업교과 10개 과목 중 올 해 내가 가르치고 있는 침구과를 선택했다.  

  '이제마의 사상체질'이라는 주제를 정해 놓고 최근 논문과 동양을 검색했다. 파워포인트 자료를 만들고 모과와 율무차도 샀다. 시각적으로 제약이 있는 학생들인지라 오감 만족 수업을 진행해 보고 싶었다. 갓 지어낸 고슬고슬한 밥같은 수업을 고수하지만 매번 교탁 앞에 설 때마다 부끄럽다. 평가회에서 가차없이 철퇴를 맞았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멀었음을 통감했다.

 

10. 성탄축하 뮤직컬에서 유주가 주인공으로 출연

 

 ‘기쁨을 나눠요’라는 제목의 뮤직컬이었다. 유치부부터 찬양대로 활동하고 있는 유주에게 귀한 기회가 허락됐다. 주인공이라는 얘기를 듣고 부랴부랴 대본을 출력했다. 저녁마다 대본을 함께 읽으며 연습했다. 학급 발표회에서도 깜찍한 율동을 선보인 유주는 교회에서도 시선을 끌었다.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가 다름 아닌 찬양과 율동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해주시려고 유주를 무대에 세우신 것 같았다.

 대사가 있는 뮤직컬은 객석에 있는 내게 무대에 선 유주를 소리로 감각하게 해주었다. 율동하는 유주 모습을 아프게 그리며 눈물을 삼켰던 내 상처를 하나님이 아시고, 아이 목소리를 들을 수 있게 손을 써 주신 것 같았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무대에 서서 연기하고 율동하는 유주 모습에 남편도 어린 아이처럼 기뻐했다. 아직 신앙이 없는 남편이 유주를 통해 구원 받을 수 있으면 좋겠다. 유주는 진정 축복의 통로다. 엄마 아빠의 심장 배터리를 충전시켜 주는 유일한 사랑의 증거다.

 이 밖에도 2019년도에는 우리 부부를 제외한 모든 가족이 '제주 보름 살기'를 달성했다. 다음 번에는 더 길게 다녀오자고 입을 모았다. 유주도 외가식구들과 어울려 잠수함을 타고 물놀이를 하고 흑돼지를 먹으면서 멋진 추억을 만들었다. 유주가 제 아빠에게 선물한 소주병 모양 병따개를 보고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했다. 깜찍한 발상에 웃음이 났지만 건강을 생각해서 음주는 자제해야겠다고 반성했다.

 

 1227일 유주와 내가 함께 겨울방학을 했다. 우리 모녀의 방학을 기다렸다는 듯 남편은 해너미 여행을 준비했다. 안동 시댁에 가서 유주의 우쿨렐레 솜씨를 자랑하고, 영덕에 가서 맛있는 대게를 먹었다. 게딱지에 담긴 게장밥까지 달게 비우는 유주의 성장이 대견했다. 경주에서 이틀을 묵었다. 뽀로로 워터파크에도 가고, 불국사 구경도 했다. 동영상 촬영에 흠뻑 빠진 유주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꿈꾸며 차돌TV영상 촬영에 열을 올렸다.

 구독자를 모집하는 귀여운 초딩이 제 친구들과 카톡도 하고 전화 통화를 하며 약속을 잡는다. 많이 컸다. 유주는 내게 기적이요, 마법이다. 이따금 내 볼을 꼬집어 ‘지금, 여기’를 피부로 확인하게 만드는 꿈같은 존재다.

 2020 경자년이 밝았다. 올해에는 꼭 내 수필집을 출간하고 싶다. 어느새 내 나이가 마흔두 살이 되었다. 건강과 건필로 나의 2020년을 꽉 채우고 싶다.

                                                                                           (2020.1.2.)

 

댓글 0

파일 첨부

여기에 파일을 끌어 놓거나 파일 첨부 버튼을 클릭하세요.

파일 크기 제한 : 0MB (허용 확장자 : *.*)

0개 첨부 됨 ( / )
 
목록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1127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구연식 2020.01.05 8
1126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하광호 2020.01.04 1
1125 무주 사람 김세명 2020.01.04 7
1124 도산 안창호 선생의 교훈 오귀례 2020.01.03 8
1123 인생은 물처럼 두루미 2020.01.02 4
1122 손자 사랑(1) 이환권 2020.01.02 3
1121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김용권 2020.01.02 0
1120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이우철 2020.01.02 2
1119 나쁜 것은 짧게, 좋은 것은 길게 가지세요 두루미 2020.01.02 2
1118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정성려 2020.01.02 0
1117 보조개 사과 한성덕 2020.01.02 1
1116 비빔밥 두루미 2020.01.02 0
1115 콩나물시루 구연식 2020.01.01 56
»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김성은 2020.01.01 2
1113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임두환 2020.01.01 3
1112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정석곤 2020.01.01 1
1111 작은 행복 이진숙 2020.01.01 1
1110 2019년 우리 집 10대 뉴스 이진숙 2020.01.01 1
1109 온가족이 무탈했던 기해년 이윤상 2019.12.31 6
1108 잔고마비의 계절 김용권 2019.12.31 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