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안에게

2020.01.09 23:34

최윤 조회 수:45

이안에게

    최윤

 

 

 여덟 살이 되니  궁금한 것이 한보따리인 우리 딸 이안아, 요즘 자기 전 엄마에게 궁금한 것들을 묻다가 잠드는 이안이가 책은 왜 읽어야 하는지, 엄마는 행복한 적이 있었는지, 쌍둥이가 태어나서 얼마나 힘들었고, 기뻤는지 물었지? 그러면 엄마는 생각나는 대로 대답해 주다가 잠들기도 하고, 뭐라고 대답해야할지 몰라 얼버무리기도 했었던 것 같아.

 특히, 책은 왜 읽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엄마도 생각해 보지않았던 것 같아. 그냥 책을 좋아하는 부모님에게서 태어나 책이 많았던 환경에서 자랐고, 활동적인 성격이 아니었기에 나가 노는 것보다는 책을 읽는 것이 즐거웠어. 그 습관이 계속되어서 시간이 날 때마다 책을 읽었지. 그래서, 너희가 태어나니 동화책으로 집안을 채워두었고, 그 분위기 때문인지 너희도 자연스럽게 책을 읽기 시작했어. 기지도 못하고 앉아만 있을때부터 그림책을 들고 놀았었지. 그런데 엄마는 책을 읽는 건 너무 쉽고 자연스러운 일이라서,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어.

 

 이안이에게 질문을 받기 전까지만 해도 왜 책을 읽는 걸까? 그냥 책을 읽으면 살아가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데 왜 그런 말을 할까 했지. 왜냐하면 엄마는 책을 읽고 상상력이 많아지면서 현실세계와 맞지 않는다고 생각했거든. 학교에 다니든, 직장에 다니든, 현실적이지 못한 엄마의 성격이 잘 맞지 않았어. 사물에 감정을 많이 두고, 많은 생각을 해서 참 마음이 복잡해지는 일이 많았거든. 그래서 책을 읽으면 좋다고 하더니 더 살기 힘들어졌다고 생각했었지.

 그러나 엄마는 이제야 책을 왜 읽어야 하는지 알게 되었어. 물론 생각이 많으면 머리가 복잡할 수도 있어. 하지만 한 가지 일을 겪더라도 많은 생각을 하면서 길을 찾아낼 수도 있고, 창의적인 생각으로 생활이 더욱 풍부해질 수도 있어. 다른 사람보다 더 생각할 수 있다는 것은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몰라. 영화를 봐도, 뮤지컬을 봐도, 음악회를 가도 그냥 보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무언가를 느끼게 될 거야. 그러한 힘이 자꾸 무언가 보고 싶다는 생각을 경험해 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지. 그것만으로도 너의 내면 세계는 행복감과 풍요로움이 생길지도 몰라.

 

「빨간머리 앤」에 나오는 앤을 봐. 고아여서 많은 고생을 했지만 책을 좋아하고 상상력으로 그 힘든 시간을 이겨내고 결국엔 긍정적인 마음으로 좋은 양부모를 만나 아름답게 성장해 가잖아?

 

 책을 읽으면, 상상할 수 있는 힘을 길러. 책을 읽고, 인물의 생김새와 옷차림을 상상해보고 그림을 그려보면, 지안이 언니와는 다르잖아? 그리고 동화책에 나오는 도도새란 무엇일까? 딸기파이는 어떻게 생겼을까? 러시아 동화를 읽으면 왜 식사때마다 포도주를 곁들이는지 궁금해지고, 러시아란 나라에 대해 공부해보기도 하잖아? 그러면서 러시아에 가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고, 가게 되었을 때 날씨가 추우니 포도주를 조금씩 먹어야 몸이 따뜻해졌겠구나 하며 동화를 회상하겠지. 러시아에 가도 단순히 관광하는 것 말고도 이안이는 많은 생각을 하게 되는 거지. 엄마와 읽었던 그 동화도 떠올려보기도 하고, 엄마 생각도 날거고 그 감상을 글로써 표현할 수도 있어. 그 글을 읽게 되는 사람들에게 여행을 하고 싶다는 동기와 감동을 주게 되기도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고 즐거움을 주게 된다면 그것은 다이아몬드를 얻는 것 보다 더 큰 행복을 경험할 수 있을거야. 큰이모를 봐. 여행을 다녀와서 책을 내고, 그 책을 읽고서 많은 힘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듣잖아? 청소년 소설을 쓰면서 청소년들에게 힘과 꿈을 주기도 하고. 둘째이모는 동화책을 연극으로 꾸며서 아이들에게 기쁨을 주는 일을 하고 있고.

 

 엄마는 이제야 알았어. 행복이란 자신의 내면이 부자여야 진짜 행복이라는 것을. 물론, 살아가는데 돈과 명예는 참 중요해. 하지만 삶은 길어. 돈과 명예는 사는데 편리함을 주지만 결국엔 자신만의 세계가 있고 생각이 있는 사람이 행복한 것 같아. 젊은 시절엔 부지런히 또는 치열하게도 살아야 하지만 휴식도 필요해. 가만히 쉬고 있다고 자책하지 않아야 돼. 때로는 가만히 앉아서 하늘에 떠가는 구름을 볼 수 있는 시간을 가지고 감동을 느낄 수 있다면 그렇게 쉬어야하고, 나이가 들어서는 마음의 풍요에 귀를 기울이고, 혼자만의 시간을 잘 보낼 수 있어야해. 그래야 하루하루가 바쁘게 가거든.

 

 구름이 흘러간다고 감동을 하려고 애쓰라는 말이 아니야. 그냥 책을 읽고 생각하다보면 어느덧 구름을 보고도 감동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거야. 예를 들어, 엄마는 요즘 너희들과 여행을 하면서 이건 여행이 아니고 노동이 아닐까 하고 생각하곤 했어. 하지만 틈틈이 주변을 보면서 과거의 기억을 더듬기도 하고, 그리고 지금 현재를 생각해 보고, 앞으로의 일도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면서, 몸은 힘들지만 힐링이 되는 기분을 느꼈단다.

 

  이안아.

 책을 읽게 되면 다른 사람의 마음도 살펴볼 수 있고 내 맘도 잘 살펴서 다른 사람을 괴롭히는 일도 덜하게 돼. 지안, 이안이도 다른 친구들이 슬퍼하면 슬프고, 어디 놀러갔다 와도 못가는 친구들이 부러워할까봐 자랑할 수 없었다고 했지? 책을 읽으면 다른 사람들도 생각하게 되고, 책을 읽고 교훈을 얻기도 해서 살아가는데 많은 도움이 되고, 어떻게 살고 싶다는 생각도 하게 되지.

 

 엄마는 이안이의 질문 때문에 왜 책을 읽는가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어. 책을 읽어서 글을 쓰고 싶었고, 힘들 때도, 기쁜 일이 생겨도 글을 쓸 수 있게 되었어. 이렇게 수필로 이안이에게 글로 남길 수도 있고, 수필반 문우들과 교수님을 만나서 행복하며, 지안, 이안이가 다 자라서 엄마 손이 필요 없을 때 엄마는 마음껏 글도 쓰고 읽고 싶은 꿈도 있어. 이렇듯 책을 읽으니 좋은 일이 많네. 이 글을 읽고 이안이의 질문의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그럼 이만 줄일게, 건강하게 잘 지내, 이안아.

 

                                          (2020. 1. 9.)

                                              엄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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