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합시다

2020.01.11 12:44

박용덕 조회 수:3

데이트합시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박 용 덕

 

 

 

 

 눈이 내린다. 결혼 후 마흔일곱 번째 첫 눈이다. 보이지 않는 높고 높은 곳에서 내던져도 눈은 부서지지 않고 제 모습을 간직한 채 너울너울 춤을 추며 사뿐히 내려앉는다. 외력(外力), 기온, 주변 환경 등의 작용이 없으면 그 자리에 누워있는 듯 그대로 있다. 그래서 <누운>  준말로 눈이라고 했을까? 눈은 그 자리에 머물다 결국에는 물로 변신하여 우리에게 가르침을 준다.

 

 지극히 착한 것은 마치 물과 같다는 뜻으로 상선약수(上善若水)라는 말도 있다. 또한 가장 아름다운 인생은 물처럼 사는 것과 같다는 뜻으로 쓰인다. 이처럼 물은 이 세상에서 으뜸가는 선한 것의 표본으로 삼아 왔다. 그렇지만 폭우, 홍수, 용오름. 허리케인, 산사태, 파도, 우박, 벼락 등은 소리만 들어도, 무서움을 느끼는 게 물이기도 하다.

 

 물은 같은 위치에서 공평하다. 그리고 막히면 돌아가고 역행하는 일 없이 항상 순리대로 흐른다. 흐르는 물은 다투거나 경쟁하지 않고 더불어 흐른다. 빨리 간다하며 뽐내지 않고, 늦게 간다고 안타까워하지도 않는다. 만물을 길러주지만 공을 내 세우지 않으며, 받는 만큼 나누고  나눈 만큼 욕심 없이 받는 것이 물이다. 만약 물이 없다면 사람을 포함하여 동물이나 식물의 생명을 이어갈 수 없을 것이다.

 

 매년 첫눈이 오면 생각나는 것이 있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있었던 일이다, 발목이 빠질 정도(20센티미터)로 첫눈이 많이 와서 동네 또래들끼리 편을 짜서 눈싸움을 했다. 그런데 상대편이 던진 눈뭉치가 내 이마를 명중시켰는데 나는 그만 졸도하고 말았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보건소였다. 이마에서는 피가 흐르고... 알고 보니 눈 뭉치 속에 돌멩이를 넣어 던졌던 것이다. 하마터면 큰 사고가 날 뻔한 사건이었다. 요즘 이러한 사고가 났다면 아무리 친한 사이라 하더라도 문병 정도는 다녀 갈만도 한데 일언반구(一言半句) 미안하다는 사과 한마디도 없었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동네 청년이 강제로 그네에 태웠는데 떨어져 대퇴부 복합골절로 6개월을 누워서 지낼 정도로 중상을 입었을 때도 모른 척 했던 일도 있었다. 이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너나 할 것 없이 가난했고, 서로 잘 아는 사이로 인정은 많고, 애들 놀다가 일어난 사고로서 생명에 지장이 없으니 그냥 무시해 버린 것이 아닐는지? 나도 부모님으로부터 가해자 측을 원망하거나 야속하다고 말씀하신 것을 한 번도 들은 적이 없었다.

 

  이제 고희를 넘긴지도 4년이 되었다. 어느 모임이고 빠지지 않는 이야기의 주제는 건강이다. 100세임에도 아주 건강한 K 교수님은 65세에서 75세까지가 가장 즐거웠다고 말하지만, 주변 환경, 직업, 성별 등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나의 경우는 젊은 시절(30~40)이 좋았던 것으로 기억된다. 단 하나, 격식에 구애 받지 않고 자유스럽게 활동할 수 있는 것은 노년이 낫겠지만 역시 언행, 품위유지 등에 유의해야 하므로  어르신 대접받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지금도 창밖에는 눈이 내리고 있다. 내린 눈이 녹으면 내()를 이루고  냇물이 흘러 강을 이루어 결국은 바다에서 만났다가 다시 하늘로 올라가 비와 눈이 되어 다시 우리 곁으로 찾아온다. 첫눈이 왔으니 46년 전 신혼 때 약속한대로 아내에게 데이트 신청을 해야겠다.

 “해영 씨, 데이트합시다!

                                                          (2019. 12.  .첫 눈 오던 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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