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학통지서

2020.01.15 12:15

이진숙 조회 수:32

취학통지서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이진숙

 

 

 

 

 딸이 핀란드로 가기 전에 식구들 주소를 이곳 전주 집으로 옮겨놓고 갔다.

 “지은아, 루나 취학 통지서가 나왔네!

 “그것 그냥 무시하세요!

 “그러면 엄마가 경찰서에 가야 된다는데?

이렇게 무식한 모녀의 대화가 오고 갔다.

 부랴부랴 지정된 초등학교로 갔다. 몇 십 년 만에 들어가 본 초등학교는 우리 아이들이 다닐 때와는 하늘과 땅 만큼이나 많이 달라져 있었다. 먼저 엘리베이터가 눈에 띄고 바닥은 모두 시멘트로 되어 있었다. 옛날에 나무로 된 바닥에 아이들이 앉아 양초를 바르고 걸레로 문질렀던 시대는 까마득한 이야기였다.

 주민 센터에 전화를 했을 때 먼저 배정된 초등학교에 가야 된다고 해서 찾아 왔는데, 담당 선생님은 주민센터에서 ‘취학통지서’를 받아 와야 된다고 알려 주었다. 그리고 준비해야 될 서류가 많았다. ‘거주사실증명서’ ‘재원증명서’ ‘출입국사실증명서’ 등 서류들을 금년이 가기 전에 준비해서 제출해야 된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나라가 크리스마스와 신년 연휴가 막 시작되었던 때다. 이것저것 필요한 서류를 메모지에 적어 주어 받아 들고 나왔다. 딸에게 전화하니 그렇게 많은 것이 필요하냐며 놀란다. 그런데 서류를 반드시 영어나 한국어로 만들어야 된다는 말을 덧붙였다. 그 말에 딸은 그런 서류들은 파일로 보내면 어떨까 해서 학교에 문의 하니, 반드시 원문으로 서류를 만들어야 된다는 연락이 왔다. 첨단 IT회사에 다니는 딸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하겠다고 했지만 우리나라 방침이 그렇다는데 어쩔 수 없다며 연휴가 끝나면 바로 준비해서 보내겠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의무교육은 초등학교 6, 중학교 3년 이렇게 9년이다. 어느 선진국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 그럼에도 간혹 초등학교 취학통지서가 나와 학교에서 예비소집을 하면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 어린이가 있다고 한다. 그런 아이들에 대한 조사를 시작하게 되었고, 그 아이들 대부분이 아동학대 또는 가난 때문에 오지 않는 것으로 밝혀졌다. 그 아이들의 보호자에게 무거운 책임을 묻게 된 것이다. 그런 것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없이 있었으니 그 일을 담당하는 학교 선생님이나, 주민센터 직원들이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딸이 살고 있는 곳은 1220일경부터 다음해 16일까지가 연휴이고 그 기간에는 모든 업무도 더불어 휴식에 들어간다고 한다. 다행히 이곳 학교에서도 유럽의 긴 연휴에 대해 알고 있는지라 담당 선생님이 할머니와 상담해서 내용을 알고 있으니 걱정 말라고 나를 안심 시켰다.

 딸에게 들은 핀란드의 일상생활은 우리와는 많이 달랐다. ‘우편배달부들'이 임금이 적다고 파업을 해도, 그곳 사람들은 그들에게 불평하지 않고, 버스기사들이 동조 파업을 한시적으로 하기도 한단다. 또 집수리를 할 때도 전문업체가 광고를 하고 가게를 운영하기보다 수리할 사람이 인터넷에 올리면 여러 곳에서 연락을 하고 그들을 상대로 입찰을 해서 일을 시작할 수 있단다. 직장에서는 아이들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언제 어느 때나 아이를 돌 볼 수가 있고, 그 날들은 휴가 기간과는 관계가 없는 날들이라고 한다. 학교에서 부모와 상담을 할 때도 언어를 선택해서 미리 연락을 하면 부모가 원하는 언어로 상담을 할 수가 있다니 참 바람직한 일이고 부럽기도 하다. 그렇다고 무든 것이 편리하고 좋은 것만은 아니다. 겨울은 아침 8시가 되어도 마치 깜깜한 밤 같이 어둡고 오후 서너 시만 되면 이미 해가 떨어져 온 동네가 밤이 찾아온다. 어둡고 춥고 긴 겨울을 보내느라 술 소비가 많아서 술로 인한 사고가 많다고 한다. 옛날에 우리나라가 담배나 인삼 같은 것들을 전매 사업으로 했듯이 술이 국가가 관리하는 전매사업이기도 하다.

 

 드디어 긴 연휴가 끝나고 서류를 준비하여 보냈다는 연락을 받고 나는 바로 주민 센터로 갔다. ‘출입국사실증명서’를 떼기 위해서, 몇 가지 적어야 될 것들을 쓰고 나니 주민등록상에 나와 있는 취학아동의 어머니가 와야 된다고 한다. 속으로는 어이가 없었지만 ‘존중해 주세요.’라는 팻말을 보고 이미 엄마도 핀란드로 갔는데 어떻게 하느냐는 말에, 직원이 망설이더니 그러면 할머니가 직접 서류를 떼어가는 것으로 하겠단다. 원리 원칙도 좋지만 때에 따라서는 현실에 맞게 업무를 처리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어렵게 뗀 서류와 ‘취학통지서’를 가지고 초등학교로 갔다. 방학 중인데도 많은 아이들이 학교에 나와 놀고 있었다. 교무실로 올라가니 우리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며 ‘ㅇㅇ할머니 아니세요?’ 했다. 반갑고 기분이 좋았다. 간혹 TV에서 한국에 여행을 온 외국인들이 한국 사람들의 친절함에 대해 아주 감동 받았다는 말을 하는 것을 본다. 비록 말은 통하지 않아도 그들이 알고자 하는 것에 대해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서 많은 외국인들이 한국을 친절한 나라라고 기억하고 있다.

 학교에서도 주민센터 등 어느 곳을 가나 요즈음은 참 친절하다. 오랜 시간에 걸쳐 서류만 만들어 갔는데도 아이 이름을 기억하며 반갑게 맞이해 주는 선생님에게 아이들이 학교에서 존중 받으며 생활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나의 손녀가 이 초등학교에 다닐 수는 없지만 그곳에 다니는 많은 어린이들이 행복한 학교생활을 하기 바라며 가뿐한 마음으로 교문을 나섰다. 

                                                            (2020. 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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