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자마을이 된 내 고향

2020.01.16 13:04

정성려 조회 수:52

부자마을이 된 내 고향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정성려

고향땅을 밟으면 어머니의 품처럼 포근하다. 나이 예순을 넘기며 이제야 가슴에 다가오는 느낌이다. 부모님은 돌아가셨지만 고향을 찾을 때마다 따뜻한 정겨움을 느낀다. 자동차에 몸을 싣고 고향으로 달려갈 때면 어릴 적 그때처럼 마냥 기분이 좋다. 태어나고 자란 곳을 고향이라고 한다. 결혼하기 전에는 잠시도 고향을 떠나 살아 본 적이 없기에 고향에 대한 많은 추억들이 양파 속처럼 겹겹이 가슴에 쌓여있었다.

부지런하고 인정이 넘치는 부자마을이라고 소문이 난 내 고향은 완주군 소양면 죽절리다. 마을에서 대나무를 본 적은 없다. 그런데 오랜 옛날, 마을 뒷산에 대나무가 많아 죽절리라고 했다는 유래가 있다. 또 지긋지긋하게 가난하여 죽만 먹고 살았다고 해서 마을 이름을 ‘죽절리’라고 불렀다고도 했다. 마을이름의 유래를 들으면 조상들의 고단했던 삶이 알만하다. 얼마나 가난했으면 마을이름을 그렇게 불렀을까? 하지만 1970년도 새마을운동 이후로 고향마을도 차츰차츰 잘 사는 마을로 변해갔다. 가난을 잊은 지 오래다. 지금은 부자마을로 손꼽힌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뒤, 큰동생이 친정집에서 산다. 그래서 가끔 들른다. 그럴 때마다 마을 어귀에 있는 경로당에서 마을 어르신들을 만난다. 고향을 지켜오신 어르신들이 많이 돌아가셨지만 몇 분이 계셔서 부모님을 뵙는 것 같다. 경로당 마당은 유모차로 즐비하다. 유모차 주차장이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누구라고 할 것 없이 다리는 안짱다리로 변했고, 허리도 굽어 유모차가 아니면 조금도 걷기 힘든 모습들이다. 어느 한 분도 반듯한 몸매를 유지하고 계신 어르신이 없다. 늙으면 몸매는 당연히 흐트러지지만 특히 내 고향 어르신들은 더 심하다. 유모차에 의지하여 걸으면서도 뒤뚱뒤뚱 오리처럼 힘들게 걷는다. 유모차가 효자라고 하신다. 논밭에 2모작이 아닌 4모작, 5모작까지 농사를 지으시며 수확한 농산물을 시장에 내다 팔아 많은 자식들을 키우고 가르치시느라 고생하신 증거다. 몸이 망가지는 줄도 모르고 농한기도 없이 사계절 일만 하셨다. 하루라도 쉬면 큰일이 나는 줄 알고 비가 오는 날에도 쉬지 않던 분들이다. 잠시 안부를 묻고 마을 첫 들머리에 있는 동생집으로 간다. 담장 너머로 우뚝 솟은 감나무에 주홍빛으로 변한 감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어머니는 감을 무척이나 좋아하셨다. 그렇게 좋아하면서도 홍시 하나를 뚝 따서 못 드시고 좋은 것은 시장에 내다 파셨다. 육남매 자식들을 뒷바라지하느라 까치가 콕콕 쪼아 팔지 못할 것만 드시고 성한 것 하나 당신 입에 넣지 못하셨다. 친정에는 지금도 부모님의 손때 묻은 농기구며 농기계들이 녹슨 체 남아 있다. 녹슨 농기구는 세월의 흔적이다. 동생은 부모님이 쓰시던 농기계로 휴일을 이용해서 교사가 아닌 농부로 변하여 부업으로 농사를 짓는다. 주말이면 내려와 부모님을 돕곤 했었다.. 그때 부모님을 도우며 배운 농시기술이다.

100세를 넘기신 어머니를 모시고 산다며 고향에 새집을 지어 이사를 온 친구네 집들이에 여러 친구들과 함께 초대받았다. 푸짐하게 차려낸 밥상을 마주하고 앉아 옛날 얘기를 하며 방안 가득 웃음꽃을 피웠다. 입도 마음도 즐거운 시간이었다. 식사를 마치고 고향을 한 바퀴 돌아볼 요량으로 서들어 일어났다.

내 고향은 아래뜸과 윗 뜸 그리고 친정집이 자리 잡고 있는 새터가 있다. 마을 사람들끼리 부르는 명칭이다. 윗뜸과 아래뜸에서 한 집, 두 집, 내려와 집을 짓고 살다보니 새로운 터가 이루어져 새터라고 불렀다. 옛 추억들이 마을 곳곳에서 새롭게 떠오른다. 기억에 남아 있는 풍경은 변해 흔적도 남아 있지 않은 게 많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해가 중천에 오를 쯤 아낙네들이 빨래를 대야에 담아 머리에 이고 빨래터에 모여 수다를 떨며 빨래를 하던 공동 빨래터는 잡초가 무성해 흔적뿐이다. 집집마다 세탁기가 있기 때문에 공동빨래터는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리고 무더웠던 한여름 밤이면 이곳은 여자들의 공동목욕탕으로 변했다. 한 사람씩 돌아가며 망을 보고 목욕을 하던 마을선녀목욕탕이었다. 지금은 생각지도 못할 일이지만 선녀가 목욕을 하러 내려 왔다는 그런 전설의 호수만큼이나 우리에게는 신선한 곳이었다.


아래뜸과 새터 사이에는 꽤 넓은 냇가가 있었응데 사람들이 건널 수 있는 외나무다리가 있었다. 아주 오래 전에는 큰 돌을 놓아 만든 징검다리가 있었다. 그런데 비가 많이 올 때는 무거운 돌도 큰물에 휩쓸려 떠내려가면 발이 묶이고 냇가를 건널 수 없게 되어 한동안 비가 그치고 큰물이 잦아질 때까지 기다려야 했다고 한다. 그 뒤로 큰 나무로 기둥을 세우고 긴 통나무 2개를 묶어 다리를 놓았다. 우리 마을에서는 그 다리를 외나무다리라고 했다. 아주 어릴 적이지만 내 기억에도 외나무다리의 형태가 생생하다. 통나무 위에는 지금의 콘크리트처럼 진흙을 발라서 위험하지 않게 해놓았지만 비가 자주 올 때면 흙이 빗물에 씻겨 진흙이 떠내려가 통나무 사이에 구멍이 송송 나 있었다. 우리 밭도 아래뜸에 있어서 어머니와 할머니가 밭에서 일을 하시는 날에는 한 살 많은 삼촌과 손을 잡고 어머니가 일하는 밭으로 외나무다리를 건너가곤 했었다. 부모님의 얘기를 들어 알고 있다. 내가 네 살이고 삼촌이 다섯 살 때라고 했다. 구멍 난 다리를 어린 삼촌은 무서워하며 건너지 못하면 한 살 어린 내가 손을 잡고 앞장서서 삼촌을 이끌어 건넜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내가 삼촌보다 겁이 없었나 보다. 그 뒤로 사람과 농기계가 겨우 지날 수 있는 다리를 놓아 건너 다녔는데 지금은 다리를 넓게 놓아 자동차들이 씽씽 다니고 있다.

누런 황금벌판으로 변한 가을날, 고향의 논밭은 단풍으로 울긋불긋 화려하다. 가난했던 고향마을이 부자마을이 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벼를 심어야 할 논에 조경에 좋은 나무들을 심어 농가 소득을 높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되기까지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역할이 컸다. 아버지는 농사를 천직으로 알고 살면서 새마을지도자와 마을이장을 맡아 했고 마을 발전에 많은 노력을 하며 사셨다. 농촌지도소에서 농사기술과 농가소득을 높일 수 있는 특수작물 교육을 이수하고 마을 주민들에게 농업기술을 보급해주면서부터 차츰차츰 소득이 높아지고 부자마을로 변해갔다. 고향마을 주민들은 예나 지금이나 엄청 부지런하다. 농한기가 없이 일을 하니 소득이 많을 수밖에 없다. 3년 전에는 소양면 주민센터가 고향마을 앞으로 멋지게 신축 이전했다. 둘째남동생이 면장으로 있으면서 많은 노력을 한 결과다. 남동생도 소양면민을 위해 최선을 다해 노력했고 주민들에게 인정을 받았다. 논두렁 밭두렁으로 찾아다니며 땀을 흘리고 일하는 농민들에게 피로회복제를 드리고 위로하고 다녀 박카스면장이라는 호칭까지 붙을 정도다. 아버지의 아들인데 오죽하랴. 동생이 면장을 하면서 부모님이 비록 농사를 짓고 사셨지만 훌륭하신 분이란 걸 알았다고 한다. 가는 곳마다 부모님 칭찬에 힘이 되었다는 동생은 부모님께 누가 되지 않게 더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요즘은 마을 주민들도 주민센터가 가까워져서 여러 가지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문화의 혜택을 받고 있다. 열심히 노력하고 일한 뒤에 얻는 보람일 것이다.

(202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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