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사람

2020.01.20 23:08

김창임 조회 수:16

못난 사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에이, 못난 놈아!  에이, 못난 놈아!

 남편이 청소를 하면서 본인한테 두런두런하는 소리다. 그이는 어렸을 적부터 절약이 몸에 밴 성격이다. 그래서 그런지 일회용 걸레를 산더미처럼 쌓아놓고도 아까워서 몇 번을 빨아서 사용한다. 그 조각들이 여기저기 널려 있으면 지저분하다. 손님들이 오는 날이면 나는 남편 모르게 쓰레기통에 버리기 일쑤다. 남편은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고 그걸 찾는다. 나는 엊저녁에 생쥐가 먹으려고 가져갔나 보다고 한다. 그걸 또 사용하려 했는데 버렸다고 투덜댄다. 그러면서도 가장 비싼 장롱이나 냉장고는 미련 없이 버리는 것을 보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나 역시도 종이컵이나 은박 접시는 두었다가 재활용한다. 입지 않은 옷이 있어서 쓰레기통에 버렸다가도, 다시 가져와 오랫동안 요긴하게 입는 경우도 가끔 있었다내년 초쯤 바로 옆에 있는 ‘영무 예다음 3차 아파트’로 이사할 계획이다. 한사코 많이 버려야 되겠는데 그게 잘 안 된다. 그래서 나는 모르게 버려야 할 것이 있으면 버려버리라고 했다.

  냉장고는 숲속에서 산다는 남동생이 가져가고, 피아노와 반신 욕조는 우리 큰아들이 가져가기로 했다. 제일 아까운 것은 장롱이다.  어떻게 할까 고민인데 마치 둘째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들이 ‘당근 마켓’을 알려주어 바로 그 사이트에 올렸다. 그랬더니 당장에 에어컨 구매할 사람이 생겨나서 적은 돈이라도 받고 팔았다. 그 다음날에는 장롱 살 사람이 나타나서 또 팔게 되었다. 도자기는 여태껏 우리와 함께 사랑을 나누며 지냈지만, 이제는 그것을 관리하는 것도 귀찮다. 지금까지 우리 집을 빛내주고도 사들일 때의 가격을 받았다. 그곳에 가서도 그 누군가의 거실을 빛내줄 것이다. 우리는 생각도 못 하던 것을 아들이 알려 주었다젊은 사람들에게 애로 사항을 이야기하면 해결될 것 같다. 사용하지 않는 그릇이나 옷과 침구도 과감하게 버리기로 했다. 잘 읽지 않는 책은 마을 도서관에 기증하기로 했다.

 

  구입할 때는 귀한 돈으로 사놓고 버리려니 왜 그렇게 어려울까?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란다. 마음 같아서는 어렵게 사는 아프리카 주민들에게 주면 아주 요긴하게 쓸 수 있을 텐데…. 그것을 만들려고 귀한 재료와 많은 사람들의 피나는 노력이 그 속에 숨어있지 않은가? 버리게 되면 그것을 태우느라 심한 공해에 시달릴 것이다.

  그러다가 화분 있는 쪽을 바라보니 자기들도 주인님이 가져갈지 안 가져갈지 눈치만 보고 걱정하는 듯 보였다. 어지간하면 화분은 가져가서 여기저기에 두면 공기 정화에 도움이 되리라. 그것들의 주인님은 남편 몫이어서 남편 생각에 맡기기로 했다.

  내가 살면서 제일 이해가 안 되는 것은 새집으로 이사 간다며 쓸 수 있는 것조차 전부 바꾸는 풍조다. 남편은 그렇게 해야 우리 경제도 살아난다고 한다. 한편 생각하면 우리나라가 경제적으로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오늘 아침 식사 후 남편은 이사 준비를 본격적으로 하려고 정리정돈에 나섰다. 예년 같으면 내가 말없이 조금씩 조금씩 하는 성격이다. 그런데 그이는 나의 말대로 나 모르게 버리려고 정리·정돈을 하고 있다.

  라파엘라 씨, 혹시 모르니까 이쪽으로 와서 이 상황을 보라고 한다. 가보니 내가 봄에 입을 얇은 점퍼가 눈에 띈다. 깜짝 놀라 얼른 주워서 가져오려고 하니,

  “언제는 버릴 수 있는 권한을 주어 놓고 불도저 같이 뭐하는 겁니까?” 

돈이 문제가 아니라 그걸 사는 일조차 나는 버겁다. 장롱 한쪽에 내가 결혼할 때 사 온 예쁜 진분홍빛 이불이 쏙 내다보면서
"아줌마,
나는 어찌하렵니까?

"너는 요사이 실내가 따뜻해서 두 채로 나누어 쓸 사람에게 보내줄게." 

 재활용함에 두자마자 관리하는 여직원이 얼른 가져갔다. 내 신혼의 추억이 듬뿍 담긴 이불인데 참 아쉽다. 어지간하면 버리고 공간이 넓은 집이 되게 할 것인가. 아니면 버리지 말고 어떻게 재활용하는 쪽으로 할 것인가. 갈등이 생긴다. 못 버리고 짊어지고 이사하면 못난 사람이 될까?

                                            (2019. 11.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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