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성문 쓰는 아버지

2020.01.22 13:51

김학 조회 수:16

반성문 쓰는 아버지/김학

  • 전민일보

나는 2남1녀의 아버지다. 그 아이들의 나이는 어느새 40대에 접어들었다. 마흔일곱 살인 큰아들과 마흔여섯 살인 작은아들은 1남1녀의 아버지요, 마흔네 살인 고명딸은 두 아들의 엄마다.

나는 2남1녀의 자녀들에게 내가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지 못해 미안하다는 생각을 한다.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방송국 프로듀서로서 직장 일에 바빠 아이들과 놀아줄 시간을 내지 못했다. 할머니나 엄마에게 맡기고 나는 밖으로 나돌았다. 또 문학을 한답시고 글벗들과 어울려 밖에서 시간을 보내는 게 당연한 것으로 여겼다.

그런데도 아이들은 불평불만 없이 무럭무럭 자라주었다. 그러면 되는 것으로 여겼다. 그 아이들이 학교에 들어간 뒤 성적이 상위그룹에서 오락가락 하니 내가 특별히 관심을 갖지 않아도 되었다. 그렇게 키우면 되는 것으로 알았다.

사실 나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랐다. 그게 정확한 표현이다. 아버지 역할을 배울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내 나이 일곱 살 때 서른한 살에 돌아가셨다. 아버지 상여가 나갈 때 어머니는 큰아들인 나에게 상여 뒤를 따라가라며 삼베옷을 입히고 대나무 지팡이를 들려 주셨다.

나는 부끄럽다며 그 상복을 입지 않으려고 버둥거려 어머니의 마음을 아프게 해 드렸다. 그런데 그 때는 그것이 불효인 줄도 몰랐다.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셨기에 나는 아버지 노릇을 어떻게 하는 게 좋은지 배울 기회가 없었다. 아버지가 외아들이셨기 때문에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도 계시지 않았으니, 곁눈질로 배울 수도 없었다.

내 아들 형제가 아버지 노릇을 잘 하는 걸 보면서 나 스스로 반성하곤 한다. 두 아들은 바쁜 직장생활을 하면서도 아이들과 잘 놀아준다. 어릴 때는 목마도 태워 주고, 야구장에도 데리고 다니며, 함께 등산도 다니고, 수영장에도 간다. 식구들과 외식도 자주 하고, 야유회도 가며, 외국나들이도 한다.

두 아들이 아버지 노릇을 잘 하니, 손자들은 할아버지인 내가 제 아빠에게 아버지 노릇을 잘했으리라 생각할지도 모른다.

내가 아버지 노릇을 잘못했기에, 두 아들이 아버지 노릇을 제대로 하는지 많은 관심을 쏟는다. 며칠 전에는 백승종의 『조선의 아버지들』이란 책을 세 권 사서 아들과 사위에게 우송해 주기도 했다. 그 책에는 조선시대의 이름난 아버지 12명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책을 읽고 나한테서 배우지 못한 성공적인 아버지 노릇을 본받았으면 좋겠다.

조선시대에 청렴결백한 정갑손이란 대쪽영감이 있었다. 개인적으로는 다정다감하고 겸손하며 친절한 사람이지만, 공적인 일에는 서릿발처럼 엄격해서 인정이 끼어들지 못하게 했던 분이다.

부하들에게도 경계의 끈을 놓지 않았다고 한다. 자신은 조상대대로 초가집에 살며, 무명 이불을 덮었고, 부들자리를 깔고 살았다고 한다.

정갑손이 함길도감사로 근무하는 도중 출장을 갔다. 그때 향시(鄕試)가 열려 그의 장남 정오가 장원을 차지했단다. 출장에서 돌아온 정갑손은 향시 합격자 명단을 확인하다가 아들의 이름을 발견하고 합격을 취소해 버렸다.

그러자 그 아들은 외가가 있는 경상도로 내려가 다시 향시에 응시하여 장원을 하고, 한양에서 치른 과거에서도 장원급제를 했다고 한다. 실력이 뛰어나 장원을 했는데도 오해를 살까봐 그렇게 경계했다니, 얼마나 결백한 사람인가? 오늘의 공직자들이 꼭 본받아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나는 어려서부터 ‘아버지’란 말을 잊고 살았다. 그 호칭을 사용할 기회가 없었기 때문이다. 큰아버지나 작은아버지가 계셨더라면 그 ‘아버지’란 호칭을 사용했을 텐데 그런 기회도 나에겐 주어지지 않았다.

그 ‘아버지’ 대신 ‘어머니’란 호칭은 다른 사람보다 배 이상 많이 사용했을 것이다.

전남 강진에서 18년이나 유배생활을 했던 다산 정약용은 아내가 보내 준 붉은 치마에 편지를 써서 책을 만들어 아들에게 보냈다. 그것이 이른바 유명한 『하피첩』이다.

나는 내 아이들에게 비록 『하피첩』을 만들어 줄 수는 없어도 이렇게 수필로서 내 마음을 전하고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또 아들딸이나 손자손녀들에게 밥상머리에서 가르칠 수 없는 것이 안타까워서 [밥상머리교육-유언(1~49)]을 시리즈로 써서 아이들에게 카톡으로 보내주고 있다. 나의 아이들이 나의 이 뜻을 마음에 깊이 새겨주면 좋겠다.

나는 팔순을 바라보는 이 나이에 아들딸에게 아버지로서 때늦은 반성문을 쓰고 있다.

김학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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