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하던 날

2020.02.10 13:16

김창임 조회 수:5

이사하는 날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김창임

 

 

 

  우리 가족은 계획대로 28일 토요일 영무 예다음 3차 아파트로 이사를 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 날씨부터 보았다. 날씨는 맑지 않고 비만 몇 방울 내린다. 하느님께서 나를 놀라게 해주시려고 그런 것 같다.

  "하느님, 아침에 내리는 비는 한양 떠난다고 했습니다. 걱정할 필요가 없지요?"

  남편이 틈나는 대로 조금씩 조금씩 버릴 것은 버리고 씻을 것은 씻어놓았다. 그렇지만 내가 할 일은 따로 기다리고 있었다. 더러운 것은 남에게 조금도 보이기 싫어한 나는 얼른 변기에 욕실용 세제를 뿌렸다. 얼마 뒤 다시 솔로 쓱싹 쓱싹 닦았다. 나쁜 냄새가 사라졌다. 욕실에 있는 하수구까지 깨끗하게 닦고 싶었다. 이러다가 내가 과로하면 안 되겠다 싶어 꾹 참았다. 양쪽 욕실에 화장지를 끼워놓았다. 과일 나무에 까치밥을 남겨 놓은 것처럼 몇 개 놓았다. 이 집으로 오신 분들이 쓰도록 배려해 놓으니 마음이 편안했다.    재직 시절에 3월이면 새 학기가 시작된다. 다른 교실로 이사해야 한다. 그럴 때도 나는 프린터기에 A4 용지 100매 정도를 넣어둔다. 간단한 필기도구도 책상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그 누군가는 새 교실에 가보니 그렇게 많던 종이를 찾을 수 없고 쓰레기만 가득 했다. 한참 동안 멍하니 생각했다. 이렇게 남을 배려하지 않아도 되는지 알 수가 없었다.

 

  조금 있으니 우리 큰아들이 천안에서 헐레벌떡 달려왔다.

  “오늘은 절대로 과로하지 마세요.

  “그러세요. 어머니.

이삿짐센터에서 안전하게 빠르게 잘 해주었다. 남자 네 분과 여자 한 분이 왔다.

 

  나는 이웃들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싶었다. 그러나 부담을 줄가 봐 생략했다. 점심은 배달시켜 대접했다. 시간이 지루했다. 이때다 싶어 신문을 읽었다. 마치 내가 찾고 싶은 글감이 있었다. 옳지, 이것을 써야지 하면서 코로나 바이러스 기사를 읽었다. 그분들은 짐을 대충 정리한다. 새집이어서 우리 물건들이 더 산뜻해 보였다. 똑같은 사람이라도 지위가 높은 자리에 있으면 더 돋보인다고 하더니 그 말이 맞다. 샌트럴 아파트에서는 짐을 내리느라고, 영무 예다음 아파트에서는 짐을 올리느라, 온고을이 반나절 동안 시끌벅적했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와장창’ 하는 소리에 우리는 깜짝 놀랐다. 장식장 왼편의 유리가 전부 산산조각이 났다. 오래 쓰지도 않았는데 아까웠다. 그렇지만 우리가 그분들한테 사달라고 할 수도 없는 일이 아닌가?

 

  오늘이 정월 대보름이 아닌가? 달은 유난히 밝아야 맞다. 그러나 날씨가 흐려서 보이지 않으니 서운했다. 오곡밥을 요사이는 매일 해 먹으니 명절이라는 기분이 나지 않는다. 나물도 마찬가지. 브럼을 깨먹어야 되는데 그것 마져도 매일 먹는다. 오늘은 이사하느라 바빠서 브럼을 따로 못 먹었다. 그것은 액운을 쫓아낸다는 옛말이 떠올랐다. 브럼을 깨서 먹으면 그 해의 나쁜 운을 다 없애준다고 했었다. 올해의 액운은 장식장 유리 깨진 것으로 대신했다. 그것은 축구공만한 호도일 것이다. 소리도 요란하여 그 주위의 악귀는 모조리 물러갔을 것이다. 우리는 아무 걱정 없이 살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인가? 2020년에는 나쁜 것은 모두 물러가고 행복한 일만 찾아오리라 믿는다.

                                                         (2020. 2.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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