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뚝을 태우는 남자들

2020.02.12 12:42

홍성조 조회 수:50

굴뚝을 태우는 남자들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홍성조

 

 

 

   새하얀 연기가 빌빌 꼬이면서 하늘로  흩어졌다. 공기 속으로 흔적 없이 사라진다. 한 남자가 멀리 퍼져버린 연기를 보며 못내 아쉬워하고 있다. 사람들의 눈총을 무시한 채, 그 남자는 한마디로 덫에 치인 범이요, 그물에 걸린 고기가 되어버렸다.

 

   시외터미널 앞에서 한 남자가 입으로 연신 '푸우!' 하면서 어항 속의 금붕어가 뾰족한 입으로 숨 쉬는 것처럼 연신 품어 댔다. 주위 사람들은 그 남자를 힐끗힐끗 쳐다 보고, 속으로 혀를 차면서 “이 불쌍한 사람아!”하며 눈치를 주었지만 그 남자는 주위사람들의 시선은  개의치 않고  연신 담배를 빨고 있었다. 나는 그 남자의 표정을 유심히 봤다. 미안하지만 별 수 없다는 표정이다. 낯이 두꺼운 얼굴처럼 보였다. 그 옆 벽면에는 금연구역이라는 흰 종이바탕에 동그란 원 안에 모락모락 연기가  타오르는 담배그림이 있고,  빨강 줄로 경고 사선을 친 것이 보였다. 그리고 파랑글씨로 적발 시에는 10만 원이하의 과태료를 부과한다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내가 1980년대 S고등학교에 취직이 되어 가보니 교무실 책상마다 재떨이가 놓여 있었고, 여학생 급사가 쉬는 시간마다 각 테이블에 있는 담뱃재를 쓰레기통에 버리는 게 일과가 되었다. 교무실에는 뿌연 담배연기가 드리워져 있고, 교무실 벽은 담배냄새로 찌들어 갔다. 그 당시에는 여교사를 제외하고, 80%의 남자교사들이 흡연을 했다. 1시간 수업을 하고 나면, 피로제라 하여 한 개비의 담배를 물고  동그라미 원형을 그려 위로 뿜어대는 장면이 멋스럽게 보였다. 그 때는 흡연이 당연시 되었고, 남자라면 응당 그렇게 하는 줄 알았다. 그 와중에서 나는 부친의 훈계 탓에 담배를 배우지 못해 동물원 안의 원숭이 꼴이 되었다.

 

  그 뒤 6개월이 지날 무렵, 직원조회 시 교장선생님이, 오늘은 이사장님이 특별히 이곳에 참석하시어 선생님들께 당부말씀이 있으시겠다면서 전원 경청하기 바란다고 했다. 직원조회의 안건을 다 마친 다음, 이사장님의 말씀 차례가 되었다. 우리 교사들은 무슨 내용일까 궁금하면서 이사장님의 말씀에 귀를 쫑긋했다.

 

  “우리 학교에 병폐 하나가 있는데, 그것은 선생님들이 교무실에서 흡연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태로 가면, 학생부에서 어떻게 학생들의 흡연을 지도하겠습니까? 선생님부터 솔선수범 해야지요.

 

  그러면서 오늘부터 금연을 하시는 선생님들께서 서약서를 내시면, 누구나 이사장님께서  10만원의 위로금을 주시겠다고 선언하셨다. 1980년대의 10만원의 가치는 지금으로 치면 100만원의 가치가 되는 돈이었다. 그런데 서약하고, 만일에 학교 안에서 다시 흡연을 하다 적발되면, 위로금의 3배인 30만원을 범칙금으로 물리게 하신다는 말씀도 덧붙였다. 이 위로금의 종자돈을 위해 이사장님이 직접 개인구좌에서 그 당시 300만원을 친화회에 직접 기탁하셨다. 그리고 교사 중에서 복지회장을 선발하여 자율적으로 운영하도록 하셨다. 매달 복지회장은 결산하여 남은 이익금을 직원회의에 보고하고 그 돈을 교사 복지를 위해 사용하도록 하셨다. 처음에는 선생님들이 금연한다는데, 큰 부담감을 느껴 그 당시 50명 교직원 중 10명 정도가 서약서를 냈다. 서약서를 내면서 직접 10만원이 든 봉투를 수령하는 모습을 전교사가 보도록 직원회의에서 주셨다. 그리고 금연으로부터 탈피하고 교사들의 체력단련을 위해 학교 뒷쪽 휴게실 지하에 교사 전용 헬스실을 마련해주셨다.

 

  허나 여기에 허점이 있었다. 학교 밖에서는 예외를 둔 조항이었다. , 학교 밖에서는 흡연이 허락된 것이다. 한마디로 갑자기 흡연을  금지하면 금단효과가 발생하여 오히려 역효과가 나올 것을 이사장님은 예상하셨던 것이다. 그래서  학교 밖에서 만은 예외를 두어 숨통을 터 준 것 같았다.  그러다 보니 과끼리 여러 모임을 조성하여 방과 후에는 흡연을 위해 전주시내 음식점들을 매일 방문하는 기현상이 일어났다. 결국 개구리낯짝에 물 붓기 현상이 되었다.

 

  시행 한 달 후, 양심상 교사끼리 적발하는 사례는 없었는데, 본인이 흡연하고 양심이 꺼려 자진 신고하는 사례는 있었다. 어느 교사는 그 대용품으로 껌을 자주 씹거나 물을 자주 마시는 경우도 생겼다. 금연하는 선생님들이 각다분하여 금단효과를 막으려는 처절한 모습이 정말 안쓰러웠다. 어떤 교사는 아예 범칙금 30만원을 내고, 편안히 흡연을 하는 특별한 예외도 있었다. 하지만 흡연은 마른나무에 좀먹듯이, 건강을 해친다는 것을 이미 이사장님은 알고 계셨기 때문에, 이런 정책을 시행하신 것 같다. 나무는 큰 나무 덕을 못 보아도, 사람은 큰 사람의 덕을 본다더니 이사장님의 금연작전은 대 성공이었다. 그 뒤 교무실 책상위의 재떨이는 치워지고, 지하별관에서는 방과 후 교사들이 헬스기구를 이용하여 운동하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리고 흡연으로 적발되는 학생 수가 줄어들었다. 교육이라는 것은 한 사람의 의지가 얼마나 중요한가를 여실히 보여주는 사례였다.

 

  시외터미널에서 흡연하는 남자도 흡연하면서 본인은 그래서는 안 되지라는 마음속의 갈등을 무척 느꼈을 것이다. 금단효과의 억제를 자신의 의지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것도 알았을 것이다. 가족, 친지, 친구 등이 주위에서 협조를 해야 한다.

 

  오늘도 우리아파트에서  방송으로, “화장실에서 흡연연기가  배수구를 통해 이웃으로 번진다고 관리사무실로 신고가 들어오니, 제발 금연해 주십시오.”하는 간곡한 방송이 흘러 나왔다. 나는 씁쓸한 기분이 들었다.

 

  흡연자의 새해 아침 기원은, 올해는 반드시  금연하겠다는 점이다. 이것이 작심 3일이 되지 않도록 주위에서 끊임없는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대부분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고 싶을 때는 화장실에서, 식사 후에, 잠자기 직전, 술 마실 때라고 한다. 그러니 이런 환경이 조성되는 것을 없애야 할 것이다. 비 흡연자들도 흡연자만을 탓하지 말고 금단현상이 일어날 수 있는 흡연자의 처지를 십분 위로하는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철저한 금연으로 인해, 이 지구에 굴뚝을 태우는 남자들이  사라지  그날을, 오늘도 나는 손꼽아 기대해 본다.                                                                                 (2020.0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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