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적

2020.02.22 01:10

전용창 조회 수:11

흔적

꽃밭정이수필문학회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목요야간반 전 용 창

 

 

 “여보, ‘장롱’ 옷걸이가 망가졌는데 고칠 수 있어요?

 건넛방에서 아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언제부터인지 아내가 나에게 허드렛일을 부탁하면 기분이 좋았다. 아마도 그럴 때 나의 존재를 알아주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냉큼 가봤다. 어머니가 쓰시던 장롱 옷걸이가 바닥에 놓여 있었다. 15년 전만 해도 그 자리에는 어머니의 고운 한복이 걸려 있었다. 철제봉은 그대로인데 양쪽에서 고정하는 플라스틱이 떨어져 나갔다. 봉을 제자리에 갖다 대었다. 봉의 양 끝은 여유가 있어 다행이었으나 위치가 다소 높았다. 어머니가 그곳에 옷을 걸기에는 힘들었지 싶었다. 생전에 어머니가 옷을 걸고 내릴 때 도와드렸으면 얼마나 기뻐하셨을까?

 

 어머니의 철제봉을 들고 인근 철물점으로 갔다. 철물점 주인에게 용도를 말해 주었다. 주인은 철제봉이 너무 낡았다며 스테인리스 봉을 보여주었다. 나는 어머니 손때 묻은 지금의 봉이 좋다고 했다. 주인은 “그래요?” 하며 나를 힐끗 쳐다보며 웃었다. 봉에 맞는 고정 철물을 구하여 돌아왔다. 걸레를 빨아 먼저 옷장 내부를 깨끗이 닦았다. 그리고는 봉을 닦으려다가 잠시 머뭇거렸다. 이 봉에 어머니 흔적이 많이 남아 있을 텐데 지우면 어안 되지 하면서 봉을 오른손으로 쓰다듬었다.

 

 “어머니, 제가 불효를 많이 했지요? 두 딸을 출가시키고 보니 이제야 어머니 마음을 알 것 같아요. 싫어도 싫다는 표정을 안 하시고, 힘들어도 힘들다는 내색을 안 하신 이유를 말이지요.

손으로는 봉을 만지고 있었지만, 마음속으로는 혼잣말을 하고 있었다.

 

  사람은 누구나 흔적을 가지고 있다. 남기고 싶은 흔적이 있는가 하면 지워야 할 흔적도 많다. ‘이순신 장군’이나 ‘세종대왕’처럼 나라와 백성을 위하여 흔적을 남긴 사람도 있고, 자신을 위하여 국고를 축내서 옥고를 치르는 전직 대통령들도 있다. 내가 살아 온 흔적은 무엇일까? 단지 나만을 위한 삶이 아니었던가? 남은 생애는 어떤 흔적을 남길 수 있을까? 어머니의 흔적 중 날마다 바라볼 수 있는 게 손때 묻은 장롱이다. 그런 장롱을 오래오래 간직하는 아내가 고맙다. 아내가 외출에서 돌아왔다.

 

 “옷걸이가 너무 예쁘네요. 당신은 솜씨가 좋아 가구점을 채려도 될 것 같아요.

 “아, 그래요?

 아내도 나도 웃었다.

 

 어머니의 장롱에는 반짝이는 자개로 수놓은 백장미와 꽃사슴 가족, 그리고 비둘기가 나를 반기고 있었다.

                                                               (2020. 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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