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 죄송해요

2020.02.23 14:11

신효선 조회 수:1

어머니, 죄송해요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금요반 신효선

 

 

 

 

 

  나의 어머니는 열네 살에 아버지와 결혼하여 가난한 집에서 많은 고생을 하며 작은아버지 두 분을 분가시켰다. 몸이 약한 어머니는 해마다 염소를 키워 겨울이면 약을 지어서 옹기그릇에 담아놓고 보약으로 먹었다. 내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약을 입에 달고 살았다.

  어머니는 자식 10명을 낳았는데 언니 둘은 다 커서 하늘나라로 가고, 둘은 유산을 했다. 어머니가 내 아래 여동생을 임신해 해산달이 지났는데도 아이를 낳지 못하다가 어렵게 출산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무렵 아버지는 근검절약하여 토지를 사들여 우리 집은 전답이 자꾸 늘어나고 있었다.

  아버지는 아들을 굉장히 좋아해 어머니가 낳은 두 아들로는 욕심이 차지 않았다. 주위 사람들이 어머니는 살 가망이 없으니 부인을 새로 맞이하라고 했다. 아버지는 어머니가 살아 계신데 둘째어머니를 맞이했다.

  다섯 째 딸을 낳고 모두가 살아날 전망이 없다던 어머니의 건강은 조금씩 좋아졌다. 아버지는 아들을 너무 좋아해서 딸을 많이 낳은 어머니보다 둘째어머니를 가까이했다. 그런데 몇 년이 되어도 둘째어머니는 아이를 갖지 못했다. 딸 다섯에 아들 둘을 둔 어머니는 아들을 적게 낳은 게 아버지한테 미안했던지, 둘째어머니가 아들 낳기를 바랐다. 돌아가신다던 어머니는 조금씩 몸이 회복되어 아이를 다시 갖게 되었는데 또 딸을 낳았다.

  농촌은 추수 때가 되면 굉장히 바쁘다. 대농인 우리 집은 동네 아주머니 몇 십 명이 홀테로 타작을 했다. 타작이 끝나면 일꾼들과 아버지는 나락을 풍구에 돌려 쭉정이와 알곡을 가려서 가마니에 담아 곡간에 쟁였다.

  이때 어머니는 일꾼을 시켜 몇 가마는 아버지 몰래 장독 빈 항아리에 부어 돈을 마련했다. 그 돈으로 둘째어머니가 아들을 낳으라고 약을 지어주었다. 그래서인지 둘째어머니는 아들 둘을 낳아 아버지의 사랑을 받았다. 망부석도 돌아앉는다는데, 어머니의 깊은 심중을 누구인들 헤아릴 수 있겠는가?

  나의 어머니는 마음이 여리고 고왔다. 대농인 우리 집은 추수 때가 되면 많은 인부들의 식사를 준비했다. 부엌에서는 어머니, 둘째어머니, 큰올케, 아주머니가 모두 나서 준비를 해도 바빴다. 어머니가 밥을 할 때면 일하러 오신 아주머니들이 굉장히 좋아했다. 어머니가 밥을 하면 넉넉하게 해서 일 온 아주머니 몇 집은 집에 있는 식구들 밥까지 가져가게 해주었다. 60여 년 전에는 양식이 귀해 끼니조차 해결하지 못하는 농가가 많았다.

 

  우리는 이복동생이 중·고등학교에 다닐 때까지 한 집에 살았다. 어머니는 배다른 남동생들에 대한 사랑이 유별났다. 어디에서 색다른 음식이 들어오면 일단 남동생 둘이 먼저 먹고 나야 우리 딸들의 차례가 왔다. 가끔은 어머니의 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남자로 태어나지 못해 그러려니 넘겼다. 남동생들도 어머니를 친어머니보다 더 따랐다. 우리 6남매는 둘째어머니와 사이가 좋았다. 어쩜 그래서 가정의 평화를 유지했는지도 모른다. 주위 사람들도 그러한 우리 형제를 칭찬했다.

  세월이 흐른 요즈음 생각하니 어머니한테 난 너무나 불효한 것 같다. 어머니는 어느 땐 술에 취해 누워 계실 때도 있었다. 얼마나 가슴이 아프면 술로 마음을 달래려 했겠는가? 가족의 소중함을 지키기 위한 어머니의 마음을 그때 나는 깨닫지 못했다. 이제 조금은 이해할 것 같은데 어머니는 계시지 않는다. 잘못을 깨치고, 후회하며 울어 보아도 다시는 볼 수 없는 어머니. 어머니의 끝없는 희생과 사랑을 가슴에 담고 그리워할 뿐이다.

  어머니는 마음이 아프면 가끔 나한테 하소연을 했다. 나는 어머니를 이해하려 하지 않고 설득을 시키려 했다. 참으로 매정한 딸이었다. 어느 땐 어머니는 너는 누가 낳았는지 모르겠다며 푸념을 했다. 나는 어머니보다 둘째어머니를 이해하려 했다. 그래야 집안이 화목할 것으로 생각한 것이다. 여고 시절 친구들과 이야기를 하다 보면 의외로 둘째어머니가 있는 애들이 많았다. 그 애들은 아버지와 둘째어머니를 아주 심하게 원망하면서 둘째어머니와 이복동생과 잘 지낸다는 나를 이상하다고 했다.

  우리 집 형제들은 배다른 동생들과 지금도 잘 지내고 있다. 생각해보면, 어머니의 배려가 집안 식구들한테 많은 영향을 준 듯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30여 년이 지났는데 돌이켜 보니, 철없이 어머니의 마음을 너무 헤아리지 못한 내가 얼마나 미운지 모르겠다.

  가끔 어머니를 생각할 때면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앞을 가린다. 하루만이라도 살아 돌아와 주신다면 어머니의 푸념도 실컷 들어주고, 어머니 편이 되어 철없어 마음 아프게 한 잘못을 용서해 달라고 빌 텐데…. 자식들을 위해 묵묵히 사셨던 어머니가 무척이나 보고 싶다.

  "어머니, 사랑합니다. 죄송해요."

 

(2020. 1.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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