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새움

2020.02.23 16:42

한성덕 조회 수:4

시새움

                                                          한성덕

 

 

 

  사람들은 격언이나 명언을 즐겨 찾는다. 그 글귀가 자기 인생을 좌우한다고 믿기 때문이다. 내게도 진즉부터 자리매김한 두 문장이 있다. 그야말로 좌우명(左右銘)이다. 항상 우측을 먼저 하는 버릇이 있으니 우명(右銘)이다.

  “성실, 여기 또 하루 푸른 하늘의 아침은 밝았다. 생각하라. 그리고 행동하라. 너는 그것을 헛되이 보내려 하는가?

  고등학교 때부터 줄곧 책상머리에 붙여 두었던 글이다. 그 글을 머리에 담은 채 성실한 인생을 살자고 몸부림쳐온 세월이다. 울릉도에 있을 때는 바닷가에서 주운 몽돌에 새겨두었다.(1977.7.~1978.1.) 니스를 칠했더니 변하지도 않고 지금도 책상머리에 얌전히 있다. 의자에 앉기만 하면 살포시 미소를 짓는다. 자기를 오랜 세월 동안 잘 간직해줘서 고맙다나? 오늘도 그걸 보면서 성실의 길을 걷는다. 그리고 좌명(左銘)은 참으라는 문구다.

 “인내는 쓰나 그 열매는 달다.

  어지간히도 가난한 시절을 살았다. 제대로 먹지 못해서 허기지고, 입지 못해서 서글프고, 육성회비 때문에 창피를 당했다. 그러면 동심에서는 날개를 펴고 훨훨 날아다니기라도 했나? 무슨, 책보를 풀어놓기가 무섭게 일의 노예가 되어 끙끙거렸다. ‘어린애가 무슨 일이냐고?’ 수박, 참외, 토마토를 재배하느라고 일손이 이만저만 부족한 게 아니었다. 어린 것이 일에 찌들어 우울한 나머지, 아무데나 퍼질러 앉아 엉엉 울었던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 버팀목이 바로 ‘인내’였다. ‘내일은 나아지겠지!’하는 기대감속에 참는 것 외에 뾰족한 수가 없었다. 좌우지간 이 두 문구가 좌우명이 되어 나를 든든히 세워주었다.

  실은, 거장으로 우뚝 선 영화의 봉준호 감독이야기를 더하고 싶었다. 수필가로서, 한 사람에 대하여 ‘두 번 이상 글을 쓰지 않는다.’는 나름의 소신을 갖고 있다. 그 원칙(?)을 무시하면서까지 글을 또 쓰고 싶은 이유는, 그가 한 말이 귀에 쟁쟁거려서 떠나지 않기 때문이다.

  2020210, 봉준호 감독의 영화 '기생충'이 제92회 아카데미상을 4개나 거머쥐었다. 작품상, 감독상, 각본상, 국제장편영화상이다. 오스카상을 싹쓸이하다시피 했으니, 한국 영화사상 이토록 가슴 뭉클한 적이 있었던가? 거대한 미국 땅에서 벌어진 일이 아직도 생생하다. 하늘이 놀라고 사람들은 탄복했다. 미국은 아쉬워하고 전 세계는 열광했다. 감독은 어리벙벙하고 출연자들은 눈물이 그렁그렁했다. 그 멋지고 감동적인 장면을 언제 어디서 또 본단 말인가?

  시상식에서 더 빛난 것은 봉준호 감독의 수상 소감이었다. 어렸을 때 영화를 공부하면서 항상 가슴에 새겼던 말이라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고 했다. 그 말을 하면서 머리가 허연 노신사 한 분을 가리키며, 바로 저분 ‘마틴 스콜세지’의 말이라고 했다. 그는, 잠시 겸연쩍어했지만 가슴 뿌듯함이 역력했다. 감독으로서는 거장이었으나, 그 날의 수상과 전혀 상관없이 앉아 있었다. 그 자리에 있는 것만으로도 수상자에게 큰 영광이 아니겠는가? 노장의 중량감으로 볼 때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인물로 보였다.

 

  그의 말에서, ‘가장 개인적인 것’의 ‘개인’은 이기적이거나 독불장군이 아니라, 오히려 그 뒤의 ‘창의적’이라는 말에 방점이 있다고 본다. 따라서 무엇이든지 창의력만 있으면 못 뚫을 벽이 없다는 말로 들렸다. 그때부터 ‘가장 개인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라는 말이 떠날 줄 모르고 귀에서 쟁쟁거렸다. 내 인생길에 좌우명언이 있음을 밝혔다. 봉 감독의 말이 그것을 시새움했나? 그 말이 내게 깊숙히 파고 들었으니 말이다.

                                             (2020. 2. 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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