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을 사랑한 왕 이야기

2020.02.23 17:13

김효순 조회 수:1

황금을 사랑한 왕 이야기

     신아문예대학 수필창작 수요반 김효순

 

 

 

 

 오늘도 신문을 펼쳤다. 스마트폰을 열면 세계 각지에서 일어나는 사건들이 실시간으로 전달되는 세상에 살면서 굳이 종이로 만든 신문이 무용하다는 주장에 공감할 때도 있다. 하지만 수십 년 이어온 습관을 쉽게 버릴 수도 없다. 스마트폰이 없던 시절보다 지면이 꼼꼼하게 읽히지는 않지만 ‘2월은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가는 징검다리 같은 달’이라는 표현을 발견하는 수확이 있었다.

 또 하나, 이명박 전 대통령에 대한 기사가 눈길을 붙들었다. 지난해 보석으로 풀려나 자기 집에 머물면서 재판을 받아왔는데 몇 달 만에 법정 구속이 되어 다시 감옥에 수감되었다고 한다. 처음 판결에서보다 벌금도 추가된 모양이다. 그는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17년간 감옥살이를 해야 된다. 지금 팔순을 바라보고 있는 그가 감당하기에는 참으로 가혹한 운명이다.

 평사원으로 현대그룹에 입사했던 그가 온갖 어려움을 극복하고 현대건설 사장이 되었다는 이력만 갖고도 성공 신화를 그려낸 드라마의 주인공이 되어 주말이면 국민들을 TV앞에 불러 앉힌 적이 있다. 한때 문화체육부장관을 지내기도 했던 탤런트 유인촌이 그 역을 맡아서 열연했던 그 드라마를 나도 재미있게 보았었다. 그 뒤로 그는 더욱 출세가도를 달렸다. 서울특별시장이 되었고, 마침내 대한민국의 대통령이 되었다. 그가 일으킨 현대건설의 신화를 이번에는 대한민국의 경제를 위해 다시 창작해 낼 것이라는 국민들의 순진한 기대감 덕이었다.

 대부분의 영웅 스토리가 그렇듯이 그는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났고, 야간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일류대학에 진학할 만큼 영리한 사람이었다. 현대그룹에 입사한 뒤에도 그가 얼마나 성실한 사람이었는가는 창업주인 정주영씨와 맺은 인연으로 능히 증명되고도 남는다. 산전수전 다 겪은 고() 정주영 회장의 오른 팔로 회자되었던 사람이 아닌가. 그가 지녔던 출중한 능력과 그렇게 비범하게 살기 위해 그가 기울였을 노력의 무게를, 마른자리만 골라가면서 살아온 나로서는 짐작할 수도 없다. 그렇게 한평생 자신만을 위해 쌓고 또 쌓은 그의 모래기둥이 위태로워 보인다. 반쯤 쏟아진 모래더미에 눌려있는 그가 지르는 신음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재판장의 선고가 내려지자 그는 혼비백산해진 얼굴이 된 채 한참 동안이나 자리를 뜨지 못했다 한다.

 ‘옛날 옛날에 황금을 몹시 사랑하던 왕이 있었다.’로 시작되는 동화가 생각난다. 그의 손이 닿기만 하면 어떤 것이든지 황금으로 변하게 해주겠다는 신의 제안을 축복으로 알고 받아들였단다. 그는 온 방 안에 있는 물건들을 황금으로 바꾸고 나서는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환희롭게 해 주던 그 손이 재앙을 불러 오는 손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사랑하는 딸이 차디찬 황금으로 바뀌고 심지어 입안으로 들어가던 음식마저 딱딱한 황금덩어리가 되어버리니. 견디다 못한 그가 다시는 그런 탐욕을 안 부리겠다고 신에게 싹싹 빌었다던가?

황금을 사랑하다가 불행을 자초한 왕의 이야기는 그때도 그랬고 지금도 코미디로 읽히는데, 이명박 대통령 이야기는 왠지 다르다. 가슴 한구석이 먹먹해지는 느낌도 든다. 결말이 유쾌하지 않은 영화를 보고 극장 문을 나설 때처럼 씁쓸하기도 하다.

 지금껏, 대통령이었던 그에게 애정을 느껴본 적은 거의 없고 오히려 적대감마저 들게 하던 그 사람이 맞이한 사필귀정의 이 상황이 시원하지만은 않다. 그 이유는 아마 나도 같은 욕심 많은 인간이기 때문이 아닐까? 네가 원하면 무엇이든지 황금으로 변신시켜 주겠다는 신의 제안을 거부할 수 있는 지혜가 과연 내 안에는 담겨 있는가? 자문해 보지만 쉽게 답이 나오지 않는다. 겨울도 아니고 봄도 아닌 2월이 얼른 지나가고 산뜻한 3월이 오기를 기다린다. 그가 머물고 있을 어두운 방 안에도 따스한 봄볕이 찾아갔으면 좋겠다.           

                                                               (2020. 2.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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