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라만상을 두루 적시는 남고모종

2020.03.26 13:26

김정길 조회 수: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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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수필] 삼라만상을 두루 적시는  남고 모종

김정길


<남고모종>은 천년 고찰 남고사의 범종소리가 조선시대에 전주부성의 저녁노을을 갈라 울리며 삼라만상을 두루 적셨던 전주 10경의 하나였다. 기린봉 위로 휘영청 솟아오른 달, 전주천과 어우러진 한벽당의 정취, 저녁연기 피어오를 무렵 남고사에서 울려 퍼지는 철고소리는 옛 전주부성의 맥박처럼 느껴지는 풍취였다.

조선 선비들은 서녘하늘에 붉게 물든 낙조를 바라보며 남고사의 저녁종소리를 듣는 아름다운 승경을 즐겼다고 한다. 여기에 남고산의 어머니 산으로 일컫는 고덕산에 머물던 구름이 돌아온다ㄹ하여 고달귀운(高達貴雲)으로 묘사를 했다. 남고사는 창건 당시 고구려 연개소문이 도교를 도입한데 반발하여 명덕화상이 전주에 남고사를 세웠다 하여 남고연국사(남(南高燕國寺)로 불렸다.

그 뒤 남고사는 전주부성의 4대 비보사찰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다. 견훤은 완산주(전주)에 후백제 도읍을 세운 뒤 도읍의 수호를 위해 동서남북에 동고진, 서고진, 남고진, 북고진을 두었다. 여기에 각 진마다 사방을 지키는 동고사, 서고사, 남고사, 북고사를 두어 외침을 막고자 노심초사하였다.

남고산성에 들면 탁 트인 전주시가지가 눈앞을 가득 채우고, 천경대, 억경대, 만경대가 버선발로 뛰어나온다. 만경대 남쪽바위 벼랑에는 고려 말 충신 정몽주가 쇠퇴해 가는 고려를 걱정하며 읊었다는 시가 새겨져 있다. 그 시에는 고려 말 이성계가 황산전투에서 왜구를 무찌르고 전주 오목대에서 전주 이 씨 종친들을 초청해서 잔치를 베풀면서 장차 고려를 뒤엎고 조선 창건 뜻을 은근슬쩍 내비쳤다. 그 때 종사관으로 따라왔던 정몽주가 우국충정의 시를 읊었다.

천리바위머리 돌길 돌고 돌아/홀로 다다르니 가슴에 메는 시름이여/청산에 깊이깊이 잠겨 맹세된 부여국은/누른 잎 휘휘 날려 백제성에 쌓였 도다/9월 바람은 나그네 시름 짙고/백년의 호탕한 기상 서생은 그릇 쳤네/하늘가 해는 기울고 든 구름 마주치는데/열없이 고개 돌려 옥경만 바라본다.

언제 봐도 남고산성의 서문을 지키고 있는 남고진사적비가 듬직하게 여겨진다. 그 비문은 1846년 조선 현종 때 최영일이 글을 짓고 조선 후기의 명필이었던 창암 이삼만이 일필휘지했다. 남고산성은 <세종지리지>에 고덕산성, 임진왜란 당시 <선조실록>에는 만경산성으로 기록되어 있다. 남고산성 축성을 완성한 전라관찰사 박윤수가 쓴 <만익주신건기>에는 남고산성과 동고산성이 서로 맞서서 돌부리가 솟아 만마동 40리 골짜기를 안고 있다는 기록도 보인다. 남고산성의 이름은 그 때 붙여진 것으로 여겨진다.

임진왜란 때 이정란 장군이 남고산성을 보수하여 왜적을 물리치기도 했다. 조선시대에는 남고사의 전방에 남장대, 후방에 북장대, 남장대 아래 서쪽 골짜기에 진창(진(鎭倉), 군기고, 화약고 등을 설치하여 1,500명의 병사들로 하여금 지키게 했던 군사적 요충지였다.

남고사를 품은 남고산성은 후백제의 얼이 살아 숨 쉬는 문화유적의 보고다. 백제의 얼을 계승하려고 고심했던 견훤이 백제의 옛 땅 완산주(전주)에 후백제를 창업하고 전주부성의 수호를 위해 쌓았던 유서 깊은 유적이다. 그런데 전주에 살면서도 남고산성을 모르는 사람들이 많다. 전주에 산재한 역사문화유산을 많이 찾고 사랑하는 것이 전주 사랑의 지름길이 아닐까? 그러기 위해서 남고산성을 더욱 아끼고 보존하며 사랑한다면 얼마나 좋을까?



* 김정길 수필가는 전주상공회의소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영호남수필문학협회장으로 있다. 후백제 천년의 역사와 문화를 재조명하고 있으며 <어머니의 가슴앓이> 등 다수의 수필집을 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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